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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마 떠난 지 열흘... 그의 짐을 나누어 지려 합니다

오늘도 그의 잔소리가 들린다 "형,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세요, 바꿀 수 있다니까요"

19.08.31 11:29최종업데이트19.08.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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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 지난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이 열리고 있다. ⓒ 이정민


2017년 12월, 복막암과 힘겹게 싸우던 이용마 기자가 리영희상을 수상했다. 간신히 휠체어에 의지해 수상식에 참석한 이용마는 쌍둥이 어린 아들들의 부축을 받고 힘겹게 일어나 소감을 밝혔다.

"저는 제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 자기들이 즐기는 일을 하면서도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안타깝게도 아직 그런 사회가 되기에는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넘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사회,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다시 한 번 꿈꿔봅니다."

진지한 눈빛으로 또박또박 힘주어 내뱉는 그의 말을 들으며 미소가 절로 났다. 자유, 평등,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사회라니... 촌스러울 만치 이상적인 꿈 아닌가. 누가 요즘 이런 희망을 이야기할까. 30여 년 전, 대학 교정에서 열린 집회에서 마이크 잡고 사회 보던 선배들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야말로 이용마다운, 오직 이용마만이 가질 수 있는 꿈이었다.

며칠 뒤 그가 병상에서 쓴 책을 집으로 보내왔다. 쌍둥이에게 나중에 읽어보라고 쓴 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읽다보니 어린 자식에게 남기는 아빠의 자전적 일기라고 하기엔 내용의 무게감이 상당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구절구절 '강철같은 신념과 의지'가 손에 잡힐 듯 그려졌다. 이용마는 진짜로 이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뭉개버리고 싶었던 거다. 그리하여 '자유, 평등,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사회'로 만들고 싶었던 거다. 오죽하면 책 제목을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로 지었을까.

일개 방송사 기자가 과연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바꾸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실천하는 것. 이용마는 두 가지 모두를 온몸으로 보여준 언론인이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수습기자 이용마
 

▲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 지난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고인을 모신 차량이 장지로 향하고 있다. ⓒ 이정민


1996년 겨울, 이용마가 MBC 보도국에 갓 입사했을 때 나는 만 3년이 넘은 사회부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 매사에 심드렁한 사건기자였다. 하루라도 빨리 후배들을 받아서 사회부를 탈출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내게 이용마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솔직히 약간은 시건방져 보였다.

술자리에서 특종 영웅담을 자랑하며 폭탄주를 따라주던 선배들에게 그는 자주 따져 물었다. 특종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그러면서 우리 뉴스가 갈 길이 멀다고 자신의 언론관을 펼치곤 했다. 희한한 수습기자였다. 입사 동기들에 따르면 이용마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기자들은 힘센 놈 앞에선 조용하고 서민들은 가르치려 들잖아. 우리가 할 일은 힘없는 사람들의 말을 열심히 듣고 그들을 대신해 힘센 놈들에게 당당히 질문하는 거 아닌가?"

기자라면 누구나 금과옥조로 삼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고리타분한 원칙. 그것을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강의하듯 설파하던 수습기자가 이용마였다.

"기사 한 줄이라도 더 배워야 할 수습이 뭘 안다고 건방지게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윽박지른 선배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배들의 눈총에 주눅 들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늘 입바른 소리를 했다. 기자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언제나 좌충우돌, 간부들에게 까칠하게 굴면서 사사건건 부조리에 맞서는 주인공이 꼭 등장하지 않는가. 이용마는 바로 그런 기자였다.

유별났지만 용감했고, 매사에 적당히 넘어가지 않았다. 간부와 선배들이 껄끄러워했던 기자 이용마. 하지만 정작 후배들에게는 더없이 자상하고 늘 웃어주는 선배였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그가 사랑했던 가치, 그가 꿈꿨던 사회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기자는 겸손해야 한다고,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틈만 나면 얘기하던 사람이 후배들에게 권위적일 수 있을까. 그의 장례식장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한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돌이켜보니 이용마 선배 밑에서 2진으로 일할 때가 제 기자생활에서 제일 즐거웠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기사든지 맘대로 쓰게 해줬거든요. 제가 잘 못해서 잔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화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이용마는 산을 좋아했다. 함께 해고된 뒤 그는 정치학 시간강사를 하며 버텼고 나는 공방을 다녔다. 어느 날 공방에 놀러온 그는 답답한 곳에서 먼지만 마시면 병난다며 함께 산에 다니자고 잔소리를 해댔다. 할 수 없이 따라나선 등산길은 그가 이끌어주니 제법 다닐 만하고 재미도 있었다. 늘씬한 키에 긴 다리로 성큼성큼 산을 올라가다가도 배나온 선배가 행여 힘들어 할까봐 실없는 소리로 힘을 북돋아주곤 했다.

"형, 오늘 저기까지만 올라가면 뱃살이 2kg은 빠질 거예요."

어느 날 하산 길에 발목을 삐끗한 내가 주저앉자, 한참 떨어진 계곡까지 달려가 찬물에 적셔온 수건으로 마사지를 해주며 내게 잔소리를 했다. "그러길래 등산화는 좋은 거 신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의 부축을 받고 내려오면서 등산화와 각종 등산용품 고르는 법에 대해 또 한 번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몹쓸 병... 차분했던 이용마
 

▲ 박성제 기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박성제 기자가 헌화한 뒤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 이정민

 
느닷없이 찾아온 몹쓸 병에 대처하는 이용마의 자세는 오히려 차분했다. 보도국 선후배 수십 명이 갑자기 의학전문기자가 돼서 기적의 특효약과 새 치료법을 취재해와서 내밀었지만 그는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았다. 오로지 본인의 판단으로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조용히 시골로 내려가 몸을 다스렸다. 1년도 못 버틸 거라던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3년을 더 살았던 게 그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은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는 투병생활 중에 한 번도 좌절하거나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몸이 시들어 갈수록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그의 꿈은 더 강력해지고 구체화되어 갔던 것 같다. 내가 찾아가면 늘 국정농단에 분노하고 촛불집회 나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이렇게 말했다. "그놈의 나라 걱정 좀 그만하고 니 걱정이나 좀 해라."

이용마가 떠난 뒤에 MBC 보도국에는 이용마 기자의 자리가 다시 생겨났다. 보도국장 자리 바로 앞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건강해져 돌아왔다면 '힘센 놈 비판하고 약자의 처지를 살피라고' 기획취재팀장 같은 자리로 발령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곁에 둘 수 있는 건 그의 사진밖에 남지 않았다.

자유, 평등, 정의... 그가 품었던 꿈은 과연 이 땅의 언론인들이 감당할 수나 있는 것일까? 경쟁력 떨어진 방송들은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고, 대충대충 기사 쓰면 순식간에 까발려져 기레기라는 이름으로 조롱 당하는 세상. 게다가 이용마와 우리를 해고했던 자는 기막히게도 야당 대표의 언론특보라는 완장을 차고 돌아와 있다.

기자 이용마가 꾸었던 꿈은, 꿈이 아니라 짐일지도 모른다. 야윈 어깨에 짊어지려 했던 십자가와도 같은 무거운 짐. 그래서 오히려 감당해 내야 할 것 같다.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지만 혼자서 바꾸겠다는 얘기는 아니었을 거다. 그의 꿈을 나눠가지고 싶다. 이용마를 편하게 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는 하늘에서도 쉬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다만 걱정되는 건 우리에게 세상을 바꿀 능력이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래도 희망의 끈 한 가닥씩 가진다면 기사 쓸 때마다 조금씩 용기가 나지 않을까. 그의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형, 조금만 더 열심히 해 보세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니까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현 MBC 보도국장입니다
이용마 MBC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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