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 재심사건, 공소사실 특정 못 해 재판 장기화 조짐

유족 "'잘 들어 보자' 한 마디에 내 부친 죽이고 시신 불태웠다"

등록 2019.08.20 09:19수정 2019.08.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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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재심 재판이 열리는 전남 순천지원 316호 형사법정 ⓒ 정병진


19일(월) 오후 2시 전남 순천지원 316호 형사 법정에서 여순사건 재심 3차 공판준비 심리가 열렸다. 하지만 1, 2차에 이어 이번 공판준비에서도 검찰은 피고 장환봉 씨(여순사건 희생자, 당시 29세, 철도원)에 대한 공소 사실을 특정할만한 자료를 준비 못해 공판준비를 위한 재판만 해도 올해 연말까지 장기화될 조짐이다.

재판부는 "가급적 무죄 선고를 열망하지만 형사소송법상 공소사실이 특정돼야 하고, 기록이 충분하지 못하면 공소기각을 해야 한다"며 현실적 고민이 있음을 밝혔다. 

순천지원 제1형사부 재판장(김정아 부장판사)은 "지난 7월 4일 원고측이 제출한 청원서와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란 책을 읽어봤다"며 "내용 중 장환봉씨처럼 철도원으로 일하다가 희생된 피해자도 있어 사건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하였다.

이어 7월 15일 검찰 측에서 사실조회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PPT로 그 내용을 띄워 보여줬다. 검찰이 국가기록원에 신청한 사실조회 신청 목록은 화면을 빼곡히 채울 정도 많았다. 재판장은 "검찰 측이 사실조회 신청에 대한 국가기록원의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재판부 입장은 가급적 무죄 선고를 열망하며, 각계에서 제출한 탄원서도 그러하지만 현행 법률 범위 내에서 해야기에 고민"이라 하였다. 다만 "대법원 재심 결정문의 반대 소수 의견조차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판단했기에 진실 규명을 존중하는 입장"임을 밝혔다. 하지만 "판결문조차 남아 있지 않고 재판 과정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재심을 통한 무죄 선고가 가능한지 고민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유무죄 판단을 하려면 공소 사실 특정이 필요"하고, "변호인은 이번 사건의 공소제기가 적법한지 의문이라 하였음"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경우 현행 형사소송법상 '공소기각 판결'을 하게 돼 있으나, 무죄를 통한 명예회복을 원하는 유족의 염원을 짓밟아선 안 되고 각계 의견서도 그러하다"며, "앞으로 법률적·시간적 한계 내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니 믿어 달라"고 당부했다. 

재판부는 '재심절차와 쟁점'을 간략히 설명했다. 재판부가 설명한 재심 절차에 따르면 ① 재심은 판결 대상 판결이 정당한지 판단하는 절차가 아니고, 처음부터 공소가 제기됨을 전제로 진행하며 ② 피고인에 대한 사건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판단하는 재판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다음 두 가지이다. △ 공소 사실에 대한 기록 폐기, 멸실된 경우 최대한 복구하여 판단해야 함. △ 형사소송법상 공소 사실이 특정되어야 하고 기록을 충족하지 못하면 공소 기각을 해야 함. 

재판부는 "기록 등 복구에 장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유족 고통이 클 게 틀림없으므로 기록 복구 노력을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지를 정해야한다"고 전제한 뒤, 이번 재심에서는 "장환봉 피고인에 대한 공소 사실 복원으로 심리 범위를 한정하겠다"고 하였다. 이어 또 "공소 기각 판결 가능성도 있는데 이는 무죄 판결을 받고자 하는 유족 등의 염원에 반한다는 우려가 있다"며, "공소 기각 판결 때에는 재판부의 기본 입장을 판결문에 명시적으로 밝힐 것"이라 하였다. 

변호인은 "장환봉 피고인의 부인을 증인 신청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장은 장환봉의 부인이 고령이기에 건강을 고려해 "구술 녹음으로 재생하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재판 방청을 위해 온 유족 진점순(96)씨.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남편 장환봉씨는 "착하고 예쁜 사람"이었다며, "살아 돌아올 순 없으니 무죄 판결로 명예회복이라도 시켜 달라"고 말했다. ⓒ 정병진


원고 장경자(75)씨는 발언권을 얻어 "내 아버지는 철도원으로 근무하던 도중 총으로 무장한 14연대 군인들이 모이라고 해서, '가서 (무슨 말 하는지) 잘 들어 봅시다'라고 한 마디 한 거 밖에 없다. 그랬다고 죽였다.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국가가 노력해 달라. 당시 경찰과 군인에게 붙잡힌 민간인 중 56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46명은 학살됐다. 그중 철도원만 30명이나 된다. 죽이고 난 뒤 시신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국가는 왜 반성이나 사죄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이 사람 생명 귀하게 여긴다면 무죄 선고를 바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검찰은 "장환봉 피고인 자료는 현재 명령문 외는 없다"며 앞으로 "국가기록원, 순천경찰서 등에 여순사건 당시 철도원으로 돼 있는 분들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보겠다"고 하였다. 

재판장은 "자료 제출 기간과 증거 범위 확정이 필요하다며 10월~12월 중 언제로 할 것인지 원고 측에서 의견을 제출해 달라"고 하였다. 이어 "법률 규정과 해석 범위 내에서 유족 고통 치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다음 기일을 10월 28일 오후 2시로 정하였다. 

한편,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 진압을 위해 출병 명령을 받은 여수 14연대가 "동포를 학살 할 순 없다"며 봉기해 발생했으며, 이승만 정권의 토벌 과정에서 민간인 1만 5천 여 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당시 순천 철도원으로 근무하다 희생당한 장환봉씨의 유족은 다른 두 명의 민간인 희생자 유족과 더불어 2013년 재심 신청을 하였다. 신청 6년만인 지난 3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재심을 인용함으로써 지난 4월 29일 첫 재판을 시작으로 순천지원에서 공판준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번 세 번째 재판까지 매번 법정을 가득 채울 정도 많은 방청객과 취재진이 몰려 71년 간 묻혔던 여순사건의 진실 규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여순사건 재심 #여수 순천 10.19 사건 #여순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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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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