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애국가 부르지 말고, 국민 프로듀서로 바꾸자"

[인터뷰] 문화운동가 임진택 명창의 제안... "올림픽에서 아리랑 부를 수도 있어"

등록 2019.08.15 18:41수정 2019.08.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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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운동가이자 판소리 명창인 임진택 씨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창작판소리연구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 행위를 지적하며 반애국자의 곡이 더 이상 애국가로 불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유성호


안익태의 애국가에 대한 '보이콧'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안익태가 친일을 넘어 친나치 활동을 했고,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해 작곡했으니 그의 애국가를 부르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안익태 애국가 보이콧' 주장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사가 길다. 지난 1964년, 불가리아계 미국인 지휘자가 처음 표절을 주장했고, 이후 55년간 꾸준히 제기됐다. 최근에는 2006년, 안익태가 '에키타이 안(Ekitai Ahn)'이란 이름으로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했는데, 이때 친일·친나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안익태 애국가'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커졌다. 게다가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면서 이런 거부 운동은 더욱더 확대됐다.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한순간 차갑게 식기도 했다. '안익태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란 주장은 제기됐으나 별다른 묘책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런 목소리는 시나브로 사그라들었다. 뾰족한 대안이 없는 주장에 여론도 시들시들해졌다.

하지만 지난 8일, 국회에서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과 표절 문제가 다시 공론화되면서 '안익태 애국가 보이콧'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경색된 한일 관계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안익태 애국가'를 대체할 제안도 제기되면서 이전보다 더 견고해진 모양새다.

지난 13일 문화운동가이자 판소리 명창인 임진택(69)씨는 아주 특별한 제안을 했다. 국민 프로듀서가 애국가를 선정하자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 창작판소리연구원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사무실 한가운데 탁자 위에는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을 파헤친 자료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임진택 판소리 명창 “안익태 곡조 애국가는 이제 그만” 문화운동가이자 판소리 명창인 임진택씨가 13일 자신의 창작판소리연구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 행위를 지적하며 반애국자의 곡이 더 이상 애국가로 불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유성호


- 안익태 애국가를 부르면 안 되는 이유는?
"안익태 애국가에 얽혀 있는 두 가지 진실과 한 가지 전도된 사실 때문이다. 은폐된 진실 첫 번째는 안익태가 친일을 넘어 친나치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안익태 애국가가 불가리아의 민요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전도된 사실은 애국가 작사와 관련된 진실이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안익태의 친일 행적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친나치 행적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지난 2006년 안익태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그를 기념하고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업적을 찾았다. 이런 사람 중 독일에서 음악학을 공부하던 유학생 송병욱씨가 있었다.

송병욱씨가 지난 2006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Bundesarchiv) 산하 영상기록보관소(Filmarchiv)에서 7분짜리 '안익태 영상'을 발견했다. 1942년, 옛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지휘하는 동영상이었다. 영상에 담긴 장면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콘서트홀 중앙에 대형 일장기가 걸려 있고, 안익태가 '만주 환상곡'을 지휘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안익태가 옛 독일 필하모니에서 '한국 환상곡'을 지휘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에키타이 안(Ekitai Ahn)'이란 이름을 쓰며, 친일 음악을 지휘한 거였다(관련 기사: 안익태 동영상 보고 정말 큰 충격, 친일파 낙인-애국가 재검토는 너무 성급")."


만주국은 지난 1932년, 일본이 중국에 세운 괴뢰정부다. 당시 일본은 괴뢰정부를 세우면서 무장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나라 독립군을 살상했으며, 이 과정에서 만주에 만들어진 독립군 기지가 파괴되기도 했다. 안익태는 '만주환상곡'을 지휘하고, 1938년 일왕 찬양곡으로 불리는 '에텐라쿠(월천악)'를 작곡해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임 판소리명창은 '안익태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했다는 주장도 자세히 소개했다.

"지난 1964년, 불가리아계 미국인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가 '안익태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했다는 주장을 처음 제기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 이렇다.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다음 해(196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를 기념하고자 제1회 국제 음악제를 열었는데, 안익태가 1회 때부터 총감독을 맡았다.

피터 니콜로프는 1964년 제3회 국제음악회가 열릴 때 한국에 왔다. 이때 푸대접을 받아 여기에 불만을 품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가 안익태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했다고 처음 고발했다. 이후 당시 <코리아타임즈>의 제임스 웨이드 기자가 표절 논란이 된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오 도브루자의 땅이여)' 악보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표절'을 확인했다. 이후 많은 음악 연구가들이 재차, 삼차 표절을 확인했다."
 

임 명창이 말한 피터 니콜로프의 표절 주장은 1977년 6월 14일, 경향신문에 실린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해마다 개최해온 국제음악제에 대한 일부 음악인들의 미묘한 작용은 잘 알려진 일이거니와 64년의 제3회 때는 뜻밖의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안익태의 애국가와 '코리아판타지(한국 환상곡)'는 적성 국가 불가리아민요와 너무나 닮았다고 어느 음악인이 미국인 지휘자를 충동질하여 공격한 것이다"
 
지난 8일, 김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안익태 애국가와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김 교수는 두 곡의 '유사도(일치도)가 72%'라며 표절을 주장했다(관련 기사: "안익태는 친일 넘어 친나치...애국가는 표절, 부르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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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애국가와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의 선율를 비교, 분석한 모습 ⓒ 김정희 제공






- 안익태 기념재단은 '애국가의 가사나 곡조 어디에도 친일적 요소는 없다'라며 '애국가를 부정하는 건,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안익태 애국가'의 표절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남의 나라 민요를 표절했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 쉽지 않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고, 창피한 이야기다. 그런데 안익태 찬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안익태를 애국자로 포장하고 둔갑시켜서 (표절 주장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노랫말은 안익태가 작사한 게 아니다. '미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곡을 문제 삼는 것이지 작사는 아니다. 그걸 또, 국민들을 속이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안익태도 국민을 속였다. 1936~1944년까지 유럽에서 활동한 친일·친나치 행적을 지웠다. 그러면서 1936년도 베를린 올림픽 때 입장식이 끝난 뒤에 손기정 선수 등 조선인 선수단을 만나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 흘렸다고 주장한다. 당시 우리나라 대표들은 일본 대표로 올림픽에 나갔다. 일본 코치진 등을 거치지 않고 만날 수 없다. 선수들이 있는 공간도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 이게 상식이다. 그런데 안익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녔다. 손기정 선수도 생전에 베를린에서 안익태를 만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안익태는 연주 기회 많이 잡고 싶어했을 것")."

- 애국가의 노랫말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애국가의 작사자는 '미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상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작사했다고 봐야 한다. 듣기론 장편소설 <무정>으로 잘 알려진 이광수 소설가가 직접 안창호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셨다고 한다. 물론 이걸 꼬투리 잡아 '윤치호 작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웃음의 행간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안창호 선생님의 웃음은 '동해물과 백두산...'이란 노랫말이 온전히 자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동해물과 백두산...'으로 시작되는 1절에서 4절까지의 가사는 안창호 선생이 만드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로 돼있는 후렴귀인데, 친일파 윤치호가 대한제국 시절 쓴 '황실가'에 같은 후렴이 먼저 사용되어 불리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무궁화 가사를 후렴으로 한 '무궁화'가는 그 당시 민중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민요 형식 공동창작으로 보아야 한다. 현행 애국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미 널리 불리기 시작한 자기 작사의 '무궁화가'를 작사자를 알리지 않고 임시정부 애국가로 채택하여 함께 힘차게 부르고 널리 보급한 것이다.

(관련 기사: '윤치호 애국가 작사설', 4가지 미스터리)."

- 이미 70년간 '안익태 애국가'가 널리 불렸다. 이제 와서 바꾸는 게 쉽지 않을 듯하다.
"안익태 애국가가 불리기 전,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 사인'을 '동해물과 백두산...' 가사에 맞춰 불렀다. 해방 전후해서 한 동안 이 두 곡을 함께 부르다가 정부에서 안익태 애국가를 보급하면서 바뀌었다. 국민적 합의만 있다면, 다른 애국가로 바꿀 수 있다. 애국가류를 공모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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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운동가이자 판소리 명창인 임진택 씨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창작판소리연구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 행위가 드러났다라며 반애국자의 곡이 아닌 애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민 참여 공모를 제안했다. ⓒ 유성호






 - 애국가류 공모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애국가를 공모해보자는 것이다. 요즘 인기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국민들이 애국가를 선정하는 것이다. 국민 프로듀서가 '애국가'를 투표로 뽑는 것이다. 프로듀서 '애국가 '버전 정도가 되겠다. 공모를 한다면, 좋은 가사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것이다. 작곡가들이 굉장히 좋은 곡들을 내놓을 것이다.

안익태 애국가는 법률상 국가가 아닌데도 그동안 독점돼 왔다. 국가기념일이나 정부 주도 행사, 지자체 행사 등에서 애국가를 제창하면, '안익태 애국가'만 부른다. 다른 노래는 안 부른다.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이 확인됐으니 대안이 필요하다. 애국가에도 자율권이 있어야 한다. '안익태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싶은 사람은 다른 애국가를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령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메달을 따면 '안익태 애국가'가 아니라 '아리랑'을 부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대안이다."

- 애국가를 공모하는 게 오히려 사회의 혼란을 키울 수 있다.
"애국가는 국가와 다르다. 국가는 정부가 필요하면 제정하면 된다. 특정 애국가를 국가처럼 사용하는 게 문제다.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이 애국가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킨 것이다. 사회 혼란은 '안익태 애국가'가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림은 그리워하는 것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노래는 부르고 싶은 것을 부르는 것을 말한다. 가령 '엄마', '아빠', '조국이여', '애국이여'란 말이 그렇다. 부르고 싶지 않은데도 '안익태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가. 안익태의 세계적인 음악성은 연주활동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국민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남의 민요를 베껴 만든 애국가는 부를 수 없다."

- '아리랑 애국가'는 무엇인가?
"대안을 만들어야 하니 내놓은 제안이다. 우리 민족의 기상과 한, 얼 등이 담겨 있는 노래가 있다. 아리랑이다. '동해물과 백두산...' 가사에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아리랑 곡조를 입혀서 부른다면 '아리랑 애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 옛날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 사인'에 '동해물과 백두산...' 가사를 붙여 불렀듯이 이렇게 애국가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임 명창은 '아리랑 애국가'가 부각되는 것을 껄끄럽게 여겼다. "단지 하나의 제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일각에서 임 명창이 '아리랑 애국가'로 애국가를 대신하려 한다는 엉뚱한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결론적으로 애국가를 바꾸자는 말인가?
"지금 당장은 '안익태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는 것이다. 그 다음은 내 일이 아닌 것 같다. 애국가를 바꾸는 건, 아까 말했듯이 공론화돼 국민 오디션 같은 걸 통해서 하면 된다. 그 전에 국가가 나서서 조사위원회를 꾸려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과 표절을 확인해야 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안익태 애국가를 부르면 안 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지금까지 확인된 수많은 증거가 이를 말해준다. 더는 '안익태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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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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