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체제' 끝내자는 일본… 한국의 대응은?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 - 주장] 냉정하게 큰 틀에서 대응하되 국론 분열 삼가야

등록 2019.08.02 21:20수정 2019.08.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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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당초 7월 1일 발표했던 바대로 오늘(8월 2일) 드디어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관리 체제상의 화이트리스트(우대조치 대상 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각의 결정했다. 일본 내각이 결정했다는 뜻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헌법상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수상이 아니다. 내각이다. 대통령제 국가의 문법으로 내각제 국가를 읽으면 안 된다. 실질적으로 수상이 집권여당인 자민당 당수이기 때문에 내각에 대한 인사권을 사실상 집행하고 있을 뿐, 헌법상으로는 일본 내각의 구성원들은 모두 평등하며 총리대신은 그 중 첫 번째일 뿐이다. 일본 헌법상 행정 권력의 최고 결정기구는 내각이다.

따라서 각의 결정은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일본 헌법상 정부 정책의 최고 결정기구가 이제 수출관리상 한국을 어떻게 대우할지 공식 방침을 밝혔다는 것이 된다. 이제 한국에 대한 우대 조치는 없다.

흔들리는 '1965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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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월 24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20년 도쿄 올림픽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UPI


다가오는 한일 간 거대한 국제적 갈등을 앞두고 유념할 점이 있다.

우선 장기적으로 일본에서 수입하던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를 추진하여 한국경제의 자주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단기적으로 달성이 쉽지 않은 목표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안보협력 및 경제협력 구조 차원에서 이번 싸움이 갖는 의미를 깊이 인식하는 것이다.

일본이 이번에 단행한 조치, 즉 우대 부여의 철회 조치가 갖는 안보·경제적 의미는 이제 1965년 한일 기본조약으로 성립된 '1965년 체제'를 일본은 더 이상 유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한미일 삼각 틀의 구조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싶다는 것이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은 비단 한일 양자 국교의 회복이라는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다 거대한 차원에서 당시 소련과 냉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국의 대전략 속에 우리가 한미일이라는 삼각 하위 구조를 통해 안보적·경제적으로 편입된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 구조 속에서 우리가 나라의 안전을 유지하고 고속 경제성장을 달성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그러한 큰 틀에서 일본이 한국을 밀어내겠다고 한다면,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향후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 일본과 협의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1965년 체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대안을 분명히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의 중요 기초를 이루던 1965년 체제가 수명을 다해 간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진지한 고민과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타국의 전략가들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본다

다음으로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국민적 차원에서 과잉대응하거나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일부 인터넷상의 게시판들을 보면 '죽창'이니 '한국식 가미카제'니 말들이 많은 것 같다. 과도한 대응이다. 사실 말만으로는 일본에 대해서 별 효과가 없다. 내가 외교 현장에서 만났던 일본 외교관들은 부지런하고 치밀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 냉정했다. 타국의 전략가들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일본의 조치에 대해 우리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면 된다. 국제무대에서 외교전이 벌어질 경우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싸움의 기술'이 있다. 물론 이 기술들이 요술 방망이는 아니고 다 각각의 한계가 있다. 주어진 환경에 맞춰 개별 전술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승리의 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한다(이와 관련 아래 필자의 글 참고).

[참고]
한일 갈등에 맞설 싸움의 기술(1부) http://bitly.kr/e3QmyD
한일 갈등에 맞설 싸움의 기술 2부 http://bitly.kr/ITDNFL

진짜 싸움이 시작되면 오히려 목청은 잦아든다. 프로 권투선수들도 계체량 때는 제스처도 취하고 소리도 높이고 하면서 팬들의 투지를 다지고 흥행성을 높이곤 하지만, 막상 링에 올라가면 건조하다. 냉기만 남는다. 지금은 군살, 기름 싹 발라내고 뼈다귀로, 그것도 제일 단단한 부분으로 상대의 가장 약한 부분을 쳐야 할 때이다. 목청만 높일 때가 아니다.

우리는 이번에도 또 활로를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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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는 일본이 이날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한 데 따른 조치다. ⓒ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외부적으로 커다란 위기가 도래했다고 해서 내부적으로 총질하거나 매카시즘으로 빠져들어 국론을 분열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커다란 외부 위기가 닥치는 경우 종종 국내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이 위기에 처하곤 한다.

1950년대 소련과 중국의 공산진영이 미국을 압박하자 미국 국내에서는 매카시즘 선풍이 불었다. '빨갱이'(reds)라고 지목당한 지식인과 공무원들은 대중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했다. 매카시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빼앗긴 채 국가권력에 짓밟혔다. 일부는 결국 조국을 등지고 떠났다.

1960년대 베트남전이 수렁에 빠져들고 전쟁이 확전을 거듭하며 10년을 끌자 미국 국내적으로 인종갈등에다 계급투쟁까지 겹쳐 극심한 혼란상을 보였다. 결국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미국도 국력의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치욕 속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울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외부적 위기가 닥칠수록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굳게 지키려는 각오가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은 복잡하지 않다. 언론과 학문의 자유, 타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 다른 시민의 양식(良識, good sense)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 품격있는 토론의 자세이다.

외부에 대한 증오 혹은 외부로부터의 공포에 흔들리면 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 무너질 수 있다. 애국을 위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명, 재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나라가 있는 것이다. 어려운 위기가 닥칠수록 우리가 우리 민주 공화 정치체제의 기초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재삼 다져야 한다(이와 관련 아래 필자의 글 참고).

[참고] "일본 가는 한국인이 못마땅한 분들께" http://bitly.kr/41KXNU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도 어려워 할 필요도 없다. 세계 정치경제의 구조가 변동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우리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홍역일지도 모른다.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이 점점 더 격화되어 나가는 가운데 이제 앞으로 우리나라에는 이보다 더 어려운 난관, 더 어려운 선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지난 70여 년간 우리는 수많은 난관을 거쳐 왔다. 김일성을 필두로 한 공산 진영이 공산주의 기치 하에 조선을 통일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우리는 조선인 220만 명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견뎌냈다. 군부 통치가 30년을 가고 수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결국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1990년대 말에는 소위 'IMF 위기'로 수천, 수만의 기업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속출했지만, 이 역시 결국 이겨냈다.

위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에도 또 활로를 찾아낼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그래 왔듯이.
덧붙이는 글 장부승 교수는 15년간의 한국 외교관 생활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이후 미국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 세계 최대 국방 연구소인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원 생활을 거쳐 현재 일본 오사카 소재 관서외국어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일본의보복조치 #위기에임하는우리자세 #냉정한대응 #큰틀의대응 #어려울수록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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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스탠포드대학교 쇼렌스틴 펠로우, 랜드연구소 스탠턴 펠로우를 거쳐 현재는 일본 오사카 소재 관서외국어대 교수 재직중. 일본 및 미국, 유럽,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을 상대로 정치학을 강의하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booseung.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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