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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더는 없을 엉성한 좀비 영화, 왜 감동적이지

[리뷰]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19.07.27 19:46최종업데이트19.07.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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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너무나도 세밀한 부분까지 잘 만들어서 좋다. 거장이라고 불리는 감독들의 영화는 영화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내가 보아도 모든 부분을 고려한 것이 느껴져서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작은 복선까지 회수하고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배치한 영화는 최고의 만족을 준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너무 간단한 것까지 엉성하게 만들어서 싫다. 영화의 시나리오가 엉성한 것은 둘째 치고 영화의 분장이나 연출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영화를 보면 관객이 얼마나 만만하면 이렇게 만들었을까란 생각에 불쾌한 기분이 든다. 이런 영화를 본 후에는 별점을 짜게 주는 것으로 유명한 평론가의 점수를 보고 대리만족할 때도 있다.
 
이렇듯 영화의 완성도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평가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엉성하게 만들어서 재밌고, 그 점이 영화의 특징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영화의 완성도 그 자체가 영화의 중요한 제재다. 
 

카메라를멈추면안돼 ⓒ 우에다신이치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정말 독특한 일본 영화다. 나는 지인에게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말고 영화를 보라는 특명을 받고 보았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영화였다. 처음 37분, 영화는 너무나도 엉성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할 말을 잃었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나간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든다. 음료를 마시면서 영화가 끝나려면 아직도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아귀가 맞지 않는 영화를 더 봐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영화는 좀비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화를 잘 내고 폭력도 마다않는 영화감독은 배우들을 데리고 폐건물에 들어가서 좀비 영화 촬영을 시도하는데, 진짜 좀비가 나타난다. 뼈만 남은 앙상한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다 안정된 줄거리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좀비는 몹시 단순해서 달려드는 것도 이상하고 위협적이기보다는 코믹하다. 이에 놀라는 배우들도 연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일상의 연장선상에서 대화를 하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딱딱 참담한 어색함을 보인다.
 
분위기 상 작품을 이끌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영화감독은 분노 표출은 잘 하지만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갑자기 스태프도 뛰쳐나가고, 배우들이 대화를 시작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인지 평소 취미에 대해 묻는 어색한 대화를 통해서 서로 간에 긴장을 풀려는 부분을 볼 때면, 기가 차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된다. 여주인공은 우연히 주운 무기로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적을 쓰러뜨리고, 어떻게든 간신히 영화가 끝난다. 놀랍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아주 훌륭하단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의 초반 37분가량은 다음 1시간을 위한 전주곡이다. 앞의 37분이 끝나면 이 영화가 사실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영화는 앞의 37분 동안은 촬영된 영화를 보여주고, 뒤의 1시간은 그 영화를 촬영하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 촬영 과정이 진짜다.
 
영화의 뒷부분은 감독에게 제안이 들어오는 부분과 실제 촬영장면으로 나누어진다. 별다른 경력도, 당당함도 없는 소심한 영화감독에게 다른 사람들이 모두 거절한 좀비 영화 촬영 제안이 들어온다. 놀랍게도 이 좀비 영화는 원 테이크에 생방송으로 찍어야 한다. 쉽지 않은 조건 때문에 무명의 감독에게 제안이 돌아간 것이다. 배우들은 다들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고집으로 감독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도 있다. 촬영을 맡긴 이들도 대충 시간이나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켜고 다른 짓을 한다. 스태프는 장이 예민하다.
 
이런 환경에서 영화를 제대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독과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소수의 사람들'에는 좋아하는 배우를 보기 위해 감독을 따라온 감독의 가족도 포함된다. 실제 촬영장면은 예측대로 엉망이다. 이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뻗은 배우를 힘으로 끌어 옮기고, 허리가 아픈 카메라 담당 대신 조수에게 카메라를 넘기고, 여주인공이 쓸 무기를 땅에 두고 사라지고, 적당한 현장용 날림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긴다. 마지막 부분에 인력으로 장비를 대체하는 부분에서는 미소가 떠오른다.
 
엉성한 촬영 기법, 갑자기 미친 듯이 흔들려서 어지럽게 만드는 카메라, 중간 중간 전달하는 사람이 없는데 등장했던 소품, 이상한 배우의 행동, 감독이 외치는 분노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적절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영화의 짜임새는 안정적으로 변한다. 엉성함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구조가 점점 안정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덕분에 앞의 37분 동안 보았던 처참하고 엉성하고 이해도 안 되던, 도무지 왜 이런 영화가 나왔을까 싶던 놀라운 부분들이 모두 수습된다.
 
그리고 촬영 과정에서 억눌린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는 감독의 독주가 펼쳐진다. 남한테 무시당해도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이 만든 영화가 나름의 완결성을 갖길 바라고, 건방진 배우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 원 없이 펼쳐지면서 솔직한 코미디가 된다. 감독의 왕성한 행동력의 배경에는 촬영의 어려움으로 인한 고난, 가족에게 당당하게 나설 수 없는 사람의 슬픔이 자리하고 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결국, 이 영화는 뒤죽박죽에 엉망진창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운 기분으로 웃으면서 볼 수 있다. 이해가 불가능한 복선이 회수되면서 상쾌한 웃음이 퍼진다. 영상 촬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영화를 보면 얼마나 하나의 영상을 찍는 일이 어려운 일이고 감독의 책임이 무거운지 느낄 수 있다. 결과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과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엉성해 보여도 어떻게 또 나아가는 작중 영화감독의 발걸음이 아름답다.
좀비 일본 영화 가족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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