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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사' 된 안성기, "주변과 타협하면 악마가 되는 것"

[인터뷰] 영화 <사자>로 박서준과 함께 신구조화... 그의 60여 년 연기론

19.07.26 11:10최종업데이트19.07.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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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 ⓒ 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 역사의 한 축인 배우가 현재까지도 꾸준히 활동하는 경우는 배우 안성기가 거의 유일하다. 1957년 <황혼열차> 이후 62년간 큰 부침 없이 연기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그가 영화 <사자>로 관객과 곧 만날 예정이다. 

격투기 선수 출신이지 신을 부정하는 용후(박서준)와 함께 악마를 퇴치하는 안 신부 역을 맡은 그는 나름 강렬한 액션과 긴 라틴어 대사를 소화했다. 악마에 영혼을 판 검은 주교단에 맞서는 오컬트 히어로물 <사자>에서 배우 안성기는 경험과 전략을 전수하는 스승이자, 중심축이기도 하다. 마냥 무거운 캐릭터는 아니다. 간간이 대사를 통해 유머를 보이는 모습에서 특유의 여유까지 느껴진다.

의외의 액션

"생각보다 좋은 의미로 반응이 큰 것 같다. 유머야 뭐, 반갑게 받아들였다. 촬영장에서 아이디어도 꽤 냈다. 생각보다 액션 장면이 좋더라. 구마자와 처음 대면하는 장면에서 사실 혼자 액션을 생각해서 준비해가긴 했는데 첫 촬영 때 무술 감독에게 바로 무시당했다(웃음). 선배님은 하시면 안 된다고. '아, 라틴어로 액션을 표현해야겠구나' 싶었다."

용후가 강한 타격감을 선보인다면 안 신부는 라틴어 기도와 각종 도구가 주무기였다. 평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안성기에게도 라틴어 자체는 어렵게 다가왔다. "제가 무서운 영화를 잘 못봐서 어떤 예시를 찾을 수 없었다"며 "하루종일 입에 라틴어 대사를 달고 살았다고 보면 된다. 상상 이상으로 연습했다"고 말했다.  
 

<사자> 의 한 장면. 안 신부가 구마 의식을 하고 있는 모습. ⓒ 롯데엔터테인먼트

 
촬영 전까지 약 4개월간 연습한 덕일까. 안성기는 "지금 인터뷰 중인데도 라틴어 대사가 막 나온다"며 "예전에 <피아노 치는 대통령>이란 작품에선 피아노 한 곡을 실제로 쳤어야 했는데 잊으면 억울할 것 같아서 개봉한 이후에도 계속 쳤던 기억이 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라틴어 대사 외에는) 사실 영화 내에서 힘들었던 건 없다. 진짜 힘들었던 건 아역배우 정지훈과 했던 지하 촬영인데 광주교구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예전에 <화려한 휴가> 찍었던 장소가 그 근처다. 청소를 했는데도 그렇게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더라. 영화에선 보이지 않지만 먼지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찍었는데 마치고 나서 스태프의 80프로가 감기에 걸렸다."

간단명료한 설정에 철저히 상업성을 노린 오락영화. 오랜 경력의 배우 안성기 입장에선 낯설 수 있는 요소다. 최근 저예산 독립영화에 주로 모습을 드러낸 안성기 입장에서 <사자>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 "큰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예산 영화를 쭉 하다보니 그간 관객과 만남이 적었는데 큰 영화에선 확률적으로 만날 기회가 더 생기니까"라며 그는 "어쨌든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배우는 외롭기 마련"이라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연기와 영화의 본질을 생각하다
 

"큰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예산 영화를 쭉 하다보니 그간 관객과 만남이 적었는데 큰 영화에선 확률적으로 만날 기회가 더 생기니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자신의 신념을 평생 지켜온 인물 안 신부와 실제로 배우 안성기의 삶에 대한 태도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늘 감사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남을 배려하며 스스로 겸손하도록 노력한다"는 게 그의 기본적인 태도였다. 사실 말하긴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법. 안성기가 배우로서 특별한 구설수 없이 꾸준할 수 있었던 건 의지를 갖고 좋은 덕목을 실천해 온 덕일 것이다.

"스스로 큰 부침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작품 활동이 뜸할 때가 있으니 슬럼프로 보이겠지. 전 그런 시간을 오히려 좋아했다. 오랜만에 날 충전하는 시간이거든. 그 시간을 잘 보냈을 때 좋은 결과로 나타나더라. 자신을 단단하게 할 수 있다. 너무 바쁘게만 지내면 분명 소모되는 면이 있다. 따지면 최근 몇 년이 슬럼프일 수 있다.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근데 그 자체가 실망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언제든 현장에 부름받았을 때 쓸모가 있는 배우의 모습을 가지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작품을 쉬다가 감독을 만났을 때 눈이 초롱초롱해야지. <사자> 김주환 감독도 날 만났을 때 그렇게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연기했고, 당시 스타 배우들의 여러 부침을 봐서인지 배우 생활할 때 몇 가지 정답을 알고 시작했다. 많은 스타들이 큰 변화를 겪던 때였다. 왜 저 분은 그렇게 됐을까 생각하면서 인기라는 게 참 허망하다 싶었지. 가정의 단단함도 중요하더라. 애초에 인기나 그런 건 쳐다볼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현장에서 집중하는 게 중요하지. 물론 신인 때는 휘둘리기 쉽다. 주변에서 '메뚜기도 한 철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그러지 않나. 악마적 요소다. 마음 약해져서 거기에 타협하면 무너지는 거지."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안성기는 자신보다 더 오래, 그리고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는 배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버트 드니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을 들며 그는 "자기가 노력해서 준비해놓고 있으면 오래오래 연기자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후배들 언급하는 게 민망하지만 절 본보기로 삼는 사람도 있을 테니 현장에 오래 있으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배우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침체 흐름인 한국영화에 대해서 제언을 구했다. 3년여 전부터 디즈니나 소니, 폭스 등 해외 직배사 영화들이 국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는 게 요즘의 흐름이다. 잠시 생각 후 그는 "아쉬움과 두려움이 함께 있다"며 "지금 한국영화가 너무 오락적으로 가는 건 아닌가 싶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영화가 좀 더 근본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근데 이건 만드는 사람만의 책임은 아니고, 관객의 요구도 분명 있겠지. 어려운 문제다. 다만 좀 차분해졌으면 좋겠다. 현실감 없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영화 본연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로 독립영화를 좀 더 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점점 저예산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기회가 적어지는데 그 영화 중 본질을 건드리는 작품이 꽤 있다. 그런 영화들에 자본과 사람을 계속 공급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 작품에 익숙하게 하는 게 어떨지.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함께 하다 보니 아쉽게 생각되는 지점이다. 어려운 숙제지."

 

"영화가 좀 더 근본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근데 이건 만드는 사람만의 책임은 아니고, 관객의 요구도 분명 있겠지. 어려운 문제다. 다만 좀 차분해졌으면 좋겠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안성기 사자 박서준 신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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