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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표 세종' 담은 '나랏말싸미', 메시지에 고개 끄덕였다

[리뷰] 영화 <나랏말싸미>, 한글 창제 가설과 드라마틱한 인물의 만남

19.07.24 14:16최종업데이트19.07.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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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 매가박스중앙플러스엠

 
여름 극장가는 성수기를 맞아 관객 끌어모으기 전쟁에 돌입했다. 총성 없는 전쟁의 첫 번째 주자로는 <나랏말싸미>가 신호탄을 쏘았다.

훈민정음은 완성 시점에 대한 기록만 있을 뿐,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비밀에 싸여있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건과 인물에 대해 충분한 상상이 가능한 지점이다.

한글 창제 가설, 드라마틱한 인물과의 만남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문자는 권력이다. 과거 백성이 언어를 안다는 것은 지배층의 권력을 흔드는 어떤 무기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당시 조선은 유교 숭상, 불교 배척의 나라였다. 지배층인 사대부들은 당연히 먹고살기 바쁜 백성의 편의를 생각한 쉬운 문자를 만들려는 왕이 탐탁지 않았을 거다. 누구나 읽고 쓰며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힘을 가진 자들에게 상상조차 안 될 일이다.

밖으로는 명의 눈치를 보고 안으로는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세종(송강호 분)은 새 언어를 만들어 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중전에게서 신미 스님(박해일 분)을 소개받고 그와 뜻을 같이 하려 한다. 산스크리티어(범어), 티벳어, 파스파 문자를 연구한 끝에 한글을 만들어간다. 시대의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의 만남, 가장 높은 자와 가장 천한 자의 협업이다. 실존 인물이던 신미 스님을 비롯해 당시 지배층의 역사는 그동안 가려왔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눈여겨 볼 요소들이 있다. 첫째, 명의 속국이 아닌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임금이 등판했다. 극 중 임금은 백성을 위한 책을 만들어도 서가에 쌓여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이 어려운 한자를 쓰는 한 조선은 반 쪽짜리라 생각했다. 둘째, 우리가 생각하는 한글 창제의 미스터리를 재해석했다. 세종과 유신들이 집현전에서 만들었다던 한글 창제에 스님들의 활약이 있었다는 상상으로 시작한다. 수많은 한글 창제 가설 중 참신한 시도다. 현대적 메시지와 가치를 가미해 후반부로 가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셋째, 중전의 역할도 있었다. 훗날 여자들이나 쓰는 천한 글자라는 딱지가 붙여진다 해도 그들이 있어 나라가 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새 문자 창제라는 세종의 뜻을 이해하고 널리 배포하는 일에 중전의 힘이 컸을 것이다. 태어나면 모두가 귀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쉽고 아름다운 문자는 가장 천한 사람들과의 화합으로 만들어졌다는 가설이 영화에서는 설득력 있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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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문자란 소리를 담는 그릇이다. 제작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의 독단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표준을 만든다는 이유로 일상성을 파괴하면 폭력이다. 만든 이의 표준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리성, 두루 쓰임에 맞춘 한글의 원리가 필요한 이유다. 타협과 원칙의 균형이 적절히 이루어야 한다. 유교의 나라 임금이 불교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맥을 같이한다.

억불정책을 강하게 펼치던 세종이 죽기 전 유언으로 신미 스님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 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자'란 법호를 내렸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훈민정음의 서문이 108자인 이유가 불교의 108번뇌를 뜻하는 성불을 의미한다는 추측도 가능하게 한다.

한글 창제의 비밀에 영화적 상상력 더해... '협업의 시너지' 보여주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작은 불씨가 모여 횃불이 되듯.' 이 표현은 문자를 만드는 것보다 지키고 퍼트리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서로를 이단이라 생각하고 제 밥그릇만 탐하면 곧 망하기 마련이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의 목표를 향한 의견 수립은 현대에도 요구되는 가치임에 틀림없다. 지역 간, 세대 간, 성별 간 싸움이 계속되는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모습을 영화 <나랏말싸미>는 한글을 통해 제시하는 듯하다.

영화 오프닝에서 일본 중이 찾아와 팔만대장경을 달라고 하는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이에 신미 스님은 "100년이 걸려도 직접 만들지 않으면 한낱 나무 조작에 불과하다. 스스로 만들어라, 거지처럼 구걸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이는 세종과 여러 인물이 한글을 직접 만들고자 했던 자주적 명분과 맞닿아 있다. 한글 창제의 비밀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재미와 감동은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 선, 면 연결의 힘'과도 통하는 협업의 시너지다.

적절한 웃음 코드와 후반부 묵직한 울림, 분배와 균형이 영화의 장점이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세종은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세종과는 다른, '송강호표 세종'이었다. 절대 물러나지 않는 기싸움의 상대로 박해일이 연기한 신미 스님은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는 올곧은 사람이다. 극 중에서 자신이 세운 뜻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소헌왕후를 연기한 아름다운 배우 전미선을 모습도 <나랏말싸미>를 통해 아스라이 기억된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통해 백성을 사랑한 세종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나랏말싸미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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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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