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이 본 설국열차, 6년 전 미공개 인터뷰

[노회찬 1주기] '남궁민수의 세계'를 품었던 사람, 그를 기억하며

등록 2019.07.25 07:42수정 2019.07.2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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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 빈소에 이어지는 조문행렬지난 2018년 7월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의 1주기가 빨리도 왔다. 1주기여서 그 의미가 어느 때보다 크지만 조용하게 그를 기억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용하게 그를 기억하고 싶다'는 기자의 바람을 날려버린 '축복'이 며칠 전 생겨났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2013년'이 소환됐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첫해였던 그해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설국열차>가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9월). 어느 평론가는 이 영화가 "역사의 동력은 바깥을 향한 무모한 열정임을 역설"했다고 평했다. 그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 등 거의 평생을 '바깥을 향한 무모한 열정'으로 살아왔던 이였다.

게다가 봉준호 감독과 그는 오래된 사이였다. 봉 감독은 지난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 당원이 됐다. 그가 운영했던 마들연구소 명사 초청 특강에 와서는 영화 <설국열차>를 찍을 거라고 미리 알려줬다. 그러니 더욱더 그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설국열차>의 관객 1000만 명 돌파를 코앞에 둔 지난 2013년 8월 28일 오후 5시 서울시청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바깥을 향한 무모한 열정

영화 <설국열차>에는 네 개의 세계가 있다. 열차의 설계자인 '윌포드의 세계', 열차 반란을 주도하는 '커티스의 세계', 윌포드와 공조해온 원로 지도자 '길리엄의 세계',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남궁민수의 세계'가 그것이다. 그는 자신이 '남궁민수의 세계'에 가깝다고 했다.

"열차 안에 모순과 갈등이 있지만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달라져도 크게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변화는 남궁민수의 발상과 지향에서 시작된다. 즉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그 길이 맞지 않나 싶다."

"열차 안의 사람들이 그동안 벽으로 봐왔던 것이 사실은 문이었다. 그래서 그 문을 부수는 것이 새로운 발상이다. 그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고, 남궁민수만이 했던 발상의 전환이다."

"재미있는 지점은 창문이 앞칸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가야 그 창문도 깰 수 있었다. 앞으로 가는 것과 문을 깨고 열차 밖으로 나가는 것은 다른 노선이지만, 앞으로 가야 문을 깨고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두 노선의 연관성을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나간 것이 정치적 민주화라면, 문을 깨고 열차 밖으로 나가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그는 "열차 바깥으로 나가자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라고 영화 <설국열차>를 평했다. '불가능하다'는 선동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도 그는 남궁민수가 했던 것처럼 수없이 '열차 바깥으로 나가자'고 소리쳤다. 생명을 다한 '운동권적 진보'라는 궤도를 벗어나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무모했던 목소리 덕분에 진보정당은 시민권을 얻었고, 세상은 한걸음 전진할 수 있었다.

빨리도 와버린 그의 1주기에 무모했던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그립다. 이것이 영화 <기생충> 관객 1000만 명 돌파를 계기로 6년 전 진행했던 '미공개 인터뷰'를 공개하는 이유다.  

혁명이냐 개량이냐
 

2013년 인터뷰 당시 노회찬 전 의원. ⓒ 비아북 제공


- 관객동원 1000만 명을 눈앞에 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를 봤나?
"개봉한 첫날 봤다. 봉 감독이 몇 년 전에 제 지역구에 와서 <설국열차> 얘기를 했다. 그때 영화 <마더> 직후에 와서 <마더>를 어떻게 해서 찍게 됐는지를 얘기한 뒤에 <설국열차> 얘기를 했다."

- 봉준호 감독과 진보정당이 워낙 밀접한 관계이기도 하고 노 대표도 개인적으로 잘 아니까 더욱 관심이 컸겠다.
"영화도 좋아하지만, 봉 감독도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관계다. 또 마들연구소 명사 초청 특강에 박찬욱 감독에 이어 봉 감독이 와서 강연을 해줬다. 2년 전 일이다. 그때 자기가 다음 작품으로 <설국열차>를 할 거라고 얘기했다. 자기가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만화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서 자못 궁금했는데 이번에 <설국열차>를 보고 '역시 봉준호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 <설국열차>를 본 소감은 어떤가.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느니, 기록적인 관객동원이 이뤄졌다느니, 하는 점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런 것들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재밌는 영화다.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특히 제가 정치를 하다 보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됐다. 거기도 보면 크게 두 개의 노선이 갈등한다. 그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싸워서 앞으로 나가자는 것이 주류 노선이다. 그런데 남궁민수(송강호분)는 아예 그 열차를 벗어나자고 한다. 열차를 벗어남으로써 모순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남궁민수는 계속 도는 열차 속에서 밖을 관찰한 결과 밖이 녹고 있었다. 즉 빙하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노선이다.

무력에 의존해 그 안에서 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개량노선과,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 혁명노선이 재밌게 설정된 구도였다. 점진적으로 개선할 것인가? 아니면 판을 완전히 바꿔서 이 상황을 완전히 벗어날 것인가? 이런 문제는 역사적으로 보면 '개량이냐 혁명이냐'라는 대립구도와도 연결된다. 대개 보면 혁명은 무력을 동원하고 개량은 타협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싸우지 않으면, 즉 무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개량이 안되는 상황이다. (웃음) 그래서 그렇게 무력을 써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큰 비전이 없다. 그런 구도가 참 재밌었다."

- 저도 <설국열차>를 보고 '혁명이냐 개량이냐'라는 좀 진부한 화두를 떠올렸다. (웃음) 노 대표가 그 열차에 있었다면 어느 쪽에 섰을까?
"저는 남궁민수 노선이 맞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혁명을 했지만 유토피아로 간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억압체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스웨덴이나 핀란드, 노르웨이가 인간성의 발현이나 민주주의 등의 측면에서 국가사회주의(러시아)가 도달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까지 열어가고 있다고 본다. 물론 거기에도 자본주의의 여러가지 모순이나 폐단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도식으로 보면 '혁명이냐 개량이냐'로 보이지만, 국가사회주의가 혁명적 언사로 가득 차 있기는 했지만 별로 나은 세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의 또다른 형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개량으로 폄하되었던 노선들이 지금 더 혁명적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영화에서 소수가 지배하는 부당한 압제와 평등하지 못한 열차 속에서 싸우는 것 자체는 정당하지만, 그렇게 싸우고도 그 열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그 싸움에는 한계가 있다. 바퀴벌레 대신 다른 걸 먹는다거나, 물자를 좀 더 공평하게 배분하는 정도의 상황 개선은 있을지 몰라도, 계속 도는 열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궁민수가 문을 열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 아닌가? 자본주의의 모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정당한데, 어떤 노선과 방식으로 극복할 것인가? 그와 관련해 소비에트 방식은 좋은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회조차도 가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북유럽) 노선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 영화에서 '남궁민수의 노선'이 가장 혁명적이다.
"그렇다. 열차 안에서는 그것이 혁명이다."  

문을 부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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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노회찬 당시 의원이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윤성효


- 저는 남궁민수의 대사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저게 하도 오래 닫혀 있으니까 이젠 벽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저것도 실은 문이란 말이다." 문은 누구나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건데, 아무도 그 생각을 못했다. 꼬리칸에서 황금칸까지 가는 것만 생각했지 문을 열고 나갈 생각은 전혀 안했다.
"브라질 노동자당(PT)의 룰라가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러나 다들 개인이 경쟁 속에서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가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주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는 별로 안한다. 진보정당은 늘 개인이 한 칸 한 칸 앞으로 가는 경쟁은 이기기도 힘들거니와 이겨봤자 그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진보정당이 새로운 사회로 가자, 사회 전체의 새로운 제도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자고 하는 것이 남궁민수가 말한 혁명이다. 그런데 대개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스웨덴이니까 가능했고, 인구가 500만 명밖에 안되니까 가능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불가능하다'는 선동이 많다.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이것은 결국 경쟁을 통해 나아지려는 것이다. 완전히, 크게 사회 자체를 바꾸는 발상은 하지 않았다. 열차 사람들이 그동안 벽으로 봐왔던 것이 사실은 문이었다. 그래서 그 문을 부수는 것이 새로운 발상이다. 그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고, 남궁민수만이 했던 발상의 전환이다. 그것은 사회 전체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서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자는 것과 같다."

- 그런데 "하지만 저것이 문이다"라고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마치 무상급식 등 진보정당이 선점했던 복지정책들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보수정당조차 이런 복지담론들을 흡수할 정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남궁민수였나?
"그렇다. 사실 스토리를 끌어가는 인물은 커티스였지만, 남궁민수가 영화의 의미를 살리는 핵심이다."

- <설국열차>에는 네 개의 세계가 있다. 열차의 설계자인 윌포드의 세계와 열차 반란을 주도한 커티스의 세계, 윌포드와 공조해온 원로 지도자 길리엄의 세계, 문을 부수고 열차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남궁민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노 대표는 누구의 세계에 가까운가?
"남궁민수의 세계다. 열차는 안에 모순과 갈등이 있지만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달라져도 크게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변화는 남궁민수의 발상과 지향에서 시작된다. 즉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그 길이 맞지 않나 싶다."

- 나중에 황금칸의 지도자 윌포드와 꼬리칸의 지도자였던 길리엄이 공조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인 것 같은데.
"그렇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적대적 의존'이 그것이다. 이것이 영화에서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어서 사람마다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좀 달라질 것이지만,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공조방식도 다양하다. 서로 안 만나고 공조할 수 있다. 과거에도 '남북의 적대적 공조'가 있었지 않나? 남은 북을 핑계대고, 북은 남을 핑계대면서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질서를 유지한 측면이 있다. 자신의 몸까지 내던지면서 희생했던 리더가 어떻게 앞칸에 있는 윌포드와 공조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커티스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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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 상실' 회견장 떠나는 노회찬지난 2013년 이른바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당시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모습. ⓒ 남소연


- 꼬리칸에서 서로 잡아먹다가 바퀴벌레로 만든 양갱이 주어지는데 이것이 길리엄과 윌포드가 타협하고 공조한 결과일 수 있다. 노 대표도 정치인이니까 자기 몸의 일부를 주면서도 타협할 수밖에 없는 길리엄을 이해할 수 있겠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은 있을 수 있고, 필요하면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에서 이것은 굉장히 정교하게 논리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인 구도다. 영화의 스토리에서는 궤도를 벗어나는 것과 궤도 속에서 싸워나가는 것이 대비된다. 그런 속에서 궤도를 벗어나는 적극적인 극복방안이 우리 노선에 가깝다. 또 다른 차원에서는 현실 속에서 살기 위해 타협이 불가피할 때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을 따지기 시작하면 '윌포드는 왜 1000명의 꼬리칸 사람들을 데리고 있냐? 떼내면 되는데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냐?'고 따지는데 이렇게 접근하면 안된다. 이 영화는 그렇게 따지라고 만든 영화는 아니다."

- 누구는 "왜 북극곰이 산에서 나타나냐?"고 이야기하더라. (웃음) 열차의 설계자인 윌포드는 유일하게 열차의 모든 칸을 경험한 커티스에게 기관실(엔진)을 넘겨주려고 한다. 이것을 열차가 전복하지 않을 수준에서 지배세력을 교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커티스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냥 커티스가 윌포드가 되는 것이다. 결국 커티스에게는 그것이 엄청난 변화일지 몰라도 그 안에서 허덕이는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냥 그런 것이다. 노동환경은 그대로인 채 사장이 바뀌는 것밖에 더 되겠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 옛날 운동권 용어로 하면 '지배세력 교체'에 불과하다?
"딱 그거다. 모순과 문제는 그대로인 채 인물만 교체하는 것이다."

- 어느 평론가는 <설국열차>가 "역사의 동력은 바깥을 향한 무모한 열정임을 역설하다"고 평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제가 이 영화를 주제로 봉 감독과 이야기해본 적은 없지만,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을 무릅쓰고 계속 앞으로 나가는 것만 보여줬으면 권선징악과 비슷한 영화가 될 뻔했다. 하지만 열차 바깥으로 나가자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봉준호답다. 저는 원작 만화도 못봤는데, 원작과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고 들었다. 기본 설정만 같고, 디테일은 완전히 새롭게 창작됐다고 하더라. 역시 봉준호답다."

- 설국열차에서 각 칸은 계급이자 질서다. 열차의 지도부는 언제나 '각자의 자리를 지키라'고 한다. 각자의 자리(계급)를 지켜야 질서가 유지되고, 열차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차 지도부에서 계속 꼬리칸에 주입한 '각자의 자리가 있다'는 얘기를 어떻게 보나?
"전통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다. 모든 지배체제는 그 스스로도 변화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배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 지배체제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 기득권 세력들의 자기합리화다. 심지어는 과거 봉건체제에서도 그렇게 했거니와 봉건체제를 무너뜨린 부르주아들도 자본주의 체제를 그런 식으로 미화했다. 이것은 운명론이고 혁명 예방론이다. (웃음) '저항해봤자 안 달라진다, 너만 손해 본다, 모순이 없는 곳이 어디 있냐, 이 정도가 합리적이다, 그러니까 바꾸려고 하지 마라.' 이런 얘기다."

- 커티스도 앞칸만 차지하면 뭔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커티스의 한계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다. '참기 힘들다'는 점에서 공감을 많이 얻을 수 있지만, 뭐가 달라질 수 있느냐? 나쁜 지배세력을 물리치면 뭐가 달라지느냐?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와 관련한 비전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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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

- 커티스는 사라진 아이들이 열차를 움직이고 있는 하나의 부속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윌포드의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남궁민수의 노선에 손을 들어줬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것이 두 개의 노선으로 구분되긴 하나 커티스가 있었기 때문에 남궁민수의 새로운 노선도 가능한 측면이 있다."

- 그렇다. 커티스가 앞칸으로 가면서 남궁민수를 감옥에서 구출해줬으니까.
"재미있는 지점은 창문이 앞칸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가야 그 창문도 깰 수 있었다. 앞으로 가는 것과 문을 깨고 열차 밖으로 나가는 것은 다른 노선이지만, 앞으로 가야 문을 깨고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두 노선의 연관성을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그런 점에서 보면 원로 지도자였던 길리엄과 새로운 지도자였던 커티스의 역할도 인정해줄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있다. 앞으로 나간 것이 정치적 민주화라면, 문을 깨고 열차 밖으로 나가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저한테는 그렇게 보여지기도 한다."

- 윌포드와 길리엄 두 지도자가 공조했던 것은 "자원은 유한하고 누군가는 희생해야 세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노 대표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꼬리칸에서만 고생하는 사람과 고생 없이 앞칸에서 호위호식을 누리는 사람은 신분제 사회를 묘사한 것이다. 열차에서 벗어나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일단은 그렇게 공조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다. 그 가능성까지 가는 데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거나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그 속에서 좀 더 평등하게 사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군대 의무 복무하듯이 돌아가면서 1년씩 꼬리칸에서 살게 할 수 있다. 아니면 하루에 3교대로 해서 8시간씩 교대제로. (웃음)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열차에 탄 모든 사람들이 열차를 공동운명체로 여기며 더 좋은 관계를, 더 만족스러운 관계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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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1월 심상정 당시 진보정의당 대선후보가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후보직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뒤 회견장을 나서자, 노회찬 당시 공동대표가 심 후보를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 지난 2012년 대선이 끝난 이후 <레미제라블>과 <설국열차>가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모았다. 혁명에 관한 영화들이 올 상반기와 하반기에 흥행몰이를 한 것이다.
"<레미제라블>은 그 자체로서도 굉장히 작품성이 높아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모을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나 영화는 지난 대선에서 좌절한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레미제라블>은 민중의 관점에서 보면 좌절이다. 시민혁명으로 시민들이 자유를 얻었지만 나중에 반동이 계속 나오는 과정이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졌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도 루이 보나파르트였다. 완전히 희극이 비극이 됐다. 이것이 시민혁명을 일으켜서 민주화했는데 결국에 MB정권,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것에 좌절한 상황과 같아 위로받는 것 같다.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우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 울음은 동병상련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 두 영화의 흥행에는 대중들의 어떤 열망이 투영돼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두 영화가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변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갈망,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좌절과 기쁨 등을 다루고 있다. 억압, 고통 등에서 해방되고 싶은 동병상련이 있다. 두 영화는 집단, 사회가 더 나아지려는 몸부림 속에서 겪는 한계, 좌절, 진척 등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레미제라블>을 장발장 개인의 인생사로 보는 것이 가장 협소하게 보는 것이다. 아무 의미가 없고, 사람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가 이룬 오늘의 성취도 <레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에 모인 학생들부터 민중들까지처럼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애환 속에서 나왔다.

오늘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대선 패배에서 확인했다. 제가 볼 때는 <레미제라블> 등장인물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자신과, 자신과 유사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눈물이다."

역사의 진전

-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혁명을 겪었다면 사회가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시민혁명이 없이 현대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현대가 먼저 오고, 그다음에 혁명들이 있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혁명'이라는 것도 사실은 시민들에 의한 혁명이었지만 그 과실은 소수 부르주아들이 가져갔다. 러시아를 놓고 보자면 사회주의 혁명조차도 민중혁명이었지만 또 다른 지배체제가 돼버린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4.19혁명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87년 혁명(6월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도 마찬가지다. 4.19혁명 때 싸웠지만 결국은 민주당이 약해서 다시 권력을 빼앗겼다. 또 수십 년을 싸웠다. 80년에도 그랬고, 87년에 이르기까지도 싸우면서 좌절했다. 좀 나아졌지만 충분히 해결되지는 않고 오늘까지 왔다. 그런 점에서 혁명은 끝나지도 않았고, 계속 되고 있다. 한 번의 혁명으로 모든 게 다 해결되고, 선이 권력화되는 것은 아니다."

- 소설가 조세희 선생도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혁명을 겪지 못한 점에 진한 아쉬움을 나타낸 적이 있다.
"(혁명을 겪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판단한다. 가장 컸던 원인은 분단이었다. 왜 일본 경찰들이 그대로 중용되었나? 그것은 북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다. 친일파뿐만 아니라 친독재세력까지 일단 빨갱이는 막아야 한다면서 그런 분위기를 유지시켜왔다. 좌파들을 '친북'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통제해왔다. 우리 민주주의는 굉장히 허약한 토양 위에서 자랐다."

- 맑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렇게 적었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 간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상황 속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며, 과거로부터 주어지고 전승된 상황에 직접적으로 당면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실제의 현실이 그렇다.
"그렇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맑스의 저작 가운데 가장 수준 높은 정치평론이다. 그 소재가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루이 보나파르트의 출현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정치가 수학이 아니니까 현실의 모순과 그 모순이 새로운 모순을 낳고, 그러면서 일정하게는 과거의 모순이 해소된다. 그렇게 역사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그 저작에 그려져 있다. 그것이 우리 현실과도 굉장히 유사한 대목이 많다. <레미제라블>은 루이 보나파르트 등장 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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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원내대표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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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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