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희는 고건 스타일일까? 황교안 스타일일까?

tvN 월화 드라마 <60일,지정 생존자>와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

등록 2019.07.09 18:57수정 2019.07.0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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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지정 생존자>. ⓒ tvN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 생존자>는 제1회 방송부터 기막힌 정치 상황을 보여줬다. 국정수행 지지율이 30%도 안 되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정책을 고집스레 추진하던 대통령 양진만(김갑수 분)이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들과 함께 국회에 나가 시정연설을 하던 중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폭탄 테러로 국회의사당이 무너지면서 연설 중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회의장·국회의원들과 국무총리도 목숨을 잃었다. 딱 1명을 제외한 국무위원 전원이 생명을 잃었다. 사법부를 제외한 입법·행정 지도부가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순식간에 증발한 것이다.

현행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라고 규정해놨다.

이 조항에 근거해 정부조직법 제12조 제2항은 국무회의 의장인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해 "부의장인 국무총리가 그 직무를 대행하고, 의장과 부의장이 모두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기획재정부장관이 겸임하는 부총리, 교육부장관이 겸임하는 부총리 및 제26조 제1항에 규정된 순서에 따라 국무위원이 그 직무를 대행한다"라고 정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관

제12조 제2항에 따라 총리-경제부총리-교육부총리의 순으로 대통령직을 대행한다. 이 셋이 없을 경우에는 제26조 제1항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외교부-통일부-법무부-국방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환경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중소벤처기업부의 장관이 차례로 대행한다.

드라마 <60일 지정 생존자>는 이중에서 환경부장관 박무진(지진희 분)만 홀로 생존해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박무진만 살아남은 것은 그가 그날 그 시각 국회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 당일 아침 박무진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로 대통령과 짧은 논쟁을 벌이다가 해임됐다. 지나친 요구를 해오는 미국에 대해 박무진은 원칙적이고 강력한 대처를, 대통령은 실용적이고 타협적인 대처를 주장했다. 그래서 '해고'됐지만, 대통령이 해임 문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무진은 권한대행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데 박무진은 대통령 대행과는 외형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다. 화학과 교수를 하다가 6개월 전에 장관이 된 그는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이다. 구두를 신는 일조차 어색해 할 정도다. 연구실에서는 슬리퍼를, 밖에서는 캐쥬얼화를 신는 생활에 익숙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중대한 정치 위기를 헤쳐나가기 힘든 사람처럼 보인다.

드라마는 이런 박무진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돼 위기 상황에 부딪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60일 지정 생존자'란 표현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는 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권한대행의 '수명'이 최장 60일로 한정된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박무진(지진희 분). ⓒ tvN


한국 현대사에 등장한 '권한대행'은 총 9건

드라마 속 박무진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등장한 사례는 총 9건(8명)이다. 전북대 법학연구소가 발행한 <법학연구> 제51권에 실린 양정윤 고려대 연구원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권한 행사범위'에 정리된 바에 따르면,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제2공화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허정(1960.4.27~6.15), 곽상훈(6.16~6.22), 허정(6.23~8.7), 백낙준(8.8~8.12)이 대통령 직무를 대행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제2공화국이 제3공화국으로 이행하는 시기에는 박정희(1962.3.23~1963.12.16)가 권한을 대행한 적이 있다. 1979년 10.26 사태로 제4공화국이 제5공화국으로 바뀌는 과도기엔 최규하(1979.10.26~12.21), 박충훈(1980.8.16~9.1)이 권한대행을 수행했다. 1987년 이후의 현행 헌법 하에서는 고건(2004.3.12~5.14)과 황교안(2016.12.9~2007.5.9)이 대행체제를 이끈 적이 있다.

미국처럼 부통령제를 둔 나라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권한대행 제도는 취약한 편이다. 이 점은 권한대행의 국정수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장관) 임명 제청권을 부여한 것을 논하면서 "내가 보기엔 대통령제에 맞지 않는 제도일 뿐 아니라 대단히 위선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국무총리가 국무위원 임명에 관여할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권한대행이 등장한 아홉 차례의 시기, 대한민국의 상태는 어땠을까?  '내우'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외환'은 없었다. 그렇게 보면 다들 무난하게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그렇다고 말하기 힘든 면도 없지 않다.

현행 헌법에는 권한대행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가 규정돼 있지 않다. 드라마 안에서도 권한대행의 권한을 어디까지로 둬야 할까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한 헌법학계의 다수설은 '현상유지설'이다. 현상유지에 필요한 범위에서만 제한적으로 권한대행의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성낙인 서울대 교수의 <헌법학>은 "그 어떤 경우이든 간에 대통령 권한대행은 일시적 대행에 불과하며 하루 속히 정식 대통령에게 직무를 넘겨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이 정식 대통령과 동일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60일 지정 생존자> 속의 합참의장 이관묵(최재성 분) 등은 북한과의 전쟁까지 불사해야 할 것처럼 말하면서 박무진 권한대행에게 정책의 획기적 변경을 주문했다. 양무진 대통령 때의 국정운용 기조를 버리도록 요구한 것. 헌법학계의 다수설과 상반되는 주장을 드라마 속 합참의장이 펼친 셈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정치체제의 현상유지' 관점에서 본다면
 

충북 청주시 문의면의 청남대(옛 대통령 별장)에서 찍은 역대 대통령들의 동상. ⓒ 김종성

 
앞서 언급했듯이 아홉 차례의 권한대행 기간 동안에 대한민국은 무사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다들 현상유지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상유지'라는 표현의 범위를 확장해서 '정치체제의 현상유지'로 관점을 넓히면, 그들 중 몇 명이나 '현상유지'에 성공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상유지에 성공한 권한대행들이 별로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고건 때와 황교안 때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차례의 권한대행은 시민혁명이나 그에 준하는 민중 저항으로 인해 헌법상의 정치체제가 급격히 바뀌는 시기에 등장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그대로 유지됐지만 헌법상의 정치체제가 크게 변질되는 시기에 일곱 차례의 권한대행이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대혁명 3년 뒤인 1792년 제1공화국이 등장하고, 166년 뒤인 1958년이 돼서야 제5공화국이 등장했다. 국호는 그대로이지만 정치체제가 확연히 달라 완전히 동일한 국가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제1공화국·제2공화국 등으로 구분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1919년의 임시정부를 계승한 제1공화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된 지 뒤 불과 39년 만에 제6공화국 정부가 등장했다. 한국의 정치 변화가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누구를 국가지도자로 하며 국가지도자를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 하는 핵심 사안을 놓고 정치체제와 헌법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이전 체제와 다음 체제의 연속성을 인정하기 힘든 경우가 잦았다.

일례로, 유신체제로도 불리는 1972년 이후의 제4공화국 체제는 민주공화국 체제라기보다는 선출직 황제체제 같은 면이 더 짙었다. 그래서 1972년 이전의 박정희 체제를 계승했다고 보기 힘들어,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이라는 구분으로 박정희 시기를 이등분했다.

고건·황교안을 제외한 나머지 권한대행들은 다들 그런 시기에 등장했다. 정치체제가 급격히 바뀌고 헌법도 크게 개정되는 과도기 때 등장해서 이전 공화국 체제와 다음 공화국 체제를 연결하는 기능을 했던 것이다. 과거 권한대행들은 기존 체제를 지키기보다는 기존 체제를 안정적으로 '해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기존 체제를 합법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체제가 도래하도록 만드는 일을 한 것.

그러므로 그 7명의 역할은 엄밀히 말하면 '현상 유지'가 아니었다. '현상의 안정적 해체'가 그들의 역사적 임무였던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현상 유지에 필요한 범위에서만 권한을 행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시대의 현상을 종결하는 쪽으로 권한을 행사한 셈이 됐다. 이렇게 본다면, 그들 7명은 현상 유지와 무관한 일을 했으므로, 교과서적 의미의 권한대행과 거리가 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석' 권한대행은 고건... 박근혜 권한대행 황교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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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부터 같은해 5월 14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한 고건 전 국무총리(사진 왼쪽)과 2016년 12월 9일부터 2017년 5월 9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사진 오른쪽). ⓒ 오마이뉴스

 
엄밀히 말하면, 황교안 권한대행도 교과서적 권한대행과 거리가 먼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권한대행 임기가 끝난 2017년 5월 9일 이후로 제7공화국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권한대행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 현대사는 촛불혁명 이전과 촛불혁명 이후로 구분됐다. 헌법만 개정되지 않았을 뿐이지 한국의 정치적 성격은 크게 바뀌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을 동안의 고건 권한대행 체제가 가장 이상적이고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두 달 간의 대행체제가 끝난 뒤에 헌법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정치체제가 바뀌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존 대통령이 원래 자리에 복귀하기도 했다. 현상 유지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헌법 제71조에 가장 잘 부합하는 권한대행 체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 국한된 일이기는 하지만, 권한대행이 기존 정치체제나 헌법상의 근간을 지키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그런 힘든 일에 화학과 교수 출신의 학자 스타일인 박무진이 도전했다. 그가 드라마 속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매주 월·화요일 밤 9시 30분을 기대해 본다.
#60일 지정 생존자 #대통령 권한대행 #고건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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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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