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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벌어진 테러... 누나 잃은 남자에게 닥친 일

[리뷰] 다시 일어서는 힘으로 가득한 치유의 드라마 <쁘띠 아만다>

19.06.24 14:43최종업데이트19.06.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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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쁘띠 아만다> 영화 포스터 ⓒ 알토미디어


민박집을 관리하는 24살 다비드(벵상 라코스테 분)는 파리에 온 레나(스테이시 마틴 분)와 사랑에 빠진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누나 상드린(오필리아 콜브 분)이 테러 사건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7살 조카 아만다(이조르 뮐트리에 분)를 책임지게 된다.

누나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만다를 돌봐야 하는 책임감과 테러 사건으로 다쳐 고향으로 돌아간 레나의 빈자리로 다비드는 하루하루가 힘겨울 따름이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려는 아만다와 함께 지내면서 점차 마음을 다잡고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영화 <쁘띠 아만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상실감과 남겨진 이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미카엘 허스 감독은 주인공들의 삶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공원에서 벌어지는 테러 사건을 선택한다.

영화 속 테러 사건은 2015년 11월 13일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프랑스 파리 시내 6곳에서 일으킨 자살 폭탄 테러 및 대량 총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 <쁘띠 아만다> 영화의 한 장면 ⓒ 알토미디어


<쁘띠 아만다>는 파리 테러 사건을 다룬 첫 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파리 테러 사건을 직접 떠올리는 것을 피하고자 샹젤리제 거리나 에펠탑 같은 상징적인 장소는 멀리한다. 테러 사건도 뱅센 숲에서 벌어지는 가공의 테러로 바꾸었다.

영화는 테러리즘 등 정치적, 사회적 언급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다비드, 아만다, 레나 등 등장인물들은 테러리즘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보이는 TV 뉴스와 다비드와 아만다가 공원에 놀러 가는 대목에서 일부 프랑스 사람들이 부르카를 입은 이슬람 여성을 비난하는 묘사 정도를 보여줄 뿐이다.

영화는 파리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사건 자체보다는 충격과 상실을 이기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카엘 허스 감독은 "이 영화는 테러 공격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종류의 폭력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영화 속 사건을 풀이한다. 그리고 "사건 이후 주인공들의 개인적인 삶의 변화와 일상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 <쁘띠 아만다> 영화의 한 장면 ⓒ 알토미디어


영화의 초반부는 평온한 파리의 풍경으로 채워졌다. 인물들은 거리, 공원, 공터, 산책로를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한다. 카메라는 느린 속도로 따뜻한 햇볕, 산들거리는 바람, 초록빛으로 가득한 잔디와 나무, 인물들의 행복한 표정을 포착한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엔 풍경이 달라진다. 사람들의 얼굴은 어둡고 거리엔 인적이 끊겼다. 거리 곳곳엔 무장한 경찰들이 돌아다닌다. 다비드와 아만다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파리는 햇살, 바람, 초록색, 표정 등 일상의 것을 차츰 되찾아간다. 파리는 다비드, 아만다, 레나의 마음을 보여주는 공간인 셈이다.

<쁘띠 아만다>는 익숙한 방식으로 슬픔을 보여주길 거부한다. 장례식 장면이나 오열하는 사람들은 없다. 영화가 인물의 감정을 일상에서 섬세하게 뽑아낸다. 다비드는 누나의 집에서 머물 적에 절대 누나의 침대를 사용하지 않고 거실에서 접이식 소파를 펴서 잔다. 누나의 침대를 차지하여 아만다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배려다. 줄곧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아만다는 다비드가 엄마의 치솔을 치워버리자 화를 낸다. 아만다는 겉으론 강하나 마음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 <쁘띠 아만다> 영화의 한 장면 ⓒ 알토미디어


영화엔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다"는 대사가 나온다.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다"란 표현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보려고 기다리던 팬들에게 이미 떠났으니 돌아가라는 의미로 던지던 표현이다. 이후론 "끝났다"는 관용어구로 자리를 잡았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다비드와 아만다는 상드린이 생전에 예매했던 테니스 경기를 보러 영국으로 간다. 한 선수의 일방적인 우세로 진행되는 경기를 지켜보던 아만다는 느닷없이 엄마가 가르쳐주었던 문구인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어"라고 내뱉으며 울먹인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에 비로소 감정으로 폭발한 것이다.

다비드는 아만다에게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다시 일어서는 테니스 선수를 빌려 영화는 '끝'을 뜻하는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다"에 '시작'이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엘비스가 건물을 떠났다"는 비극의 '끝'과 또 다른 '시작'이란 치유의 메시지가 되어 다비드와 아만다의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준다.

<쁘띠 아만다>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런 일이 없는 풍경과 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별다른 사건도 없기에 첫 장면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다르게 다가온다. 다비드와 아만다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의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말한다.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다"고.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슬픔 저 너머엔 내일이 있다고. 함께 이겨내자고.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경쟁부문 매직랜턴상 수상작.
쁘띠 아만다 미카엘 허스 벵상 라코스테 이조르 뮐트리에 스테이시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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