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다큐 프라임> '휴식의 기술' 1부 '당신은 일이 아니다' 편의 한 장면 ⓒ EBS
▲ EBS <다큐 프라임> '휴식의 기술' 1부 '당신은 일이 아니다' 편의 한 장면 ⓒ EBS
평사원의 94.9%, 주임-대리급은 98%, 과장급 89.7%. 우리 사회 직장인들의 평균 95%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한다. '타버리다, 소진하다'는 뜻의 번아웃 증후군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마치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나타내는 심리학적 용어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 증후군'을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로 정의내렸다.
지난 3일과 4일, 2부작으로 방영된 EBS <다큐 프라임> '휴식의 기술' 편은 만연해 가는 번아웃 증후군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했다.
'당신은 일이 아니다' 편...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던 알렉스 수정 김 방은 일주일에 50시간 이상 일하다가 번아웃 증후군에 이르렀다. 노동시간이 많기도 했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늘 맡은 일을 다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최선을 다 했다는 걸 보여주지 못하면 언제든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강박이 과로를 당연하게 만들었다. 알렉스만이 아니다. '일을 다 하면 쉬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일을 다 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 사람들은 항상 일을 하고 있다.
광고 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47세 강준구씨는 직장 생활을 한 20년 동안 신혼 여행을 제외하면 3일 이상 휴가를 써 본 적이 없다. 휴가를 가도, 집에 있어도 늘 그는 일하는 중이었다. 인생은 마라톤처럼 길지만, 매일을 100m 달리기 하듯 뛰어 온 그는 결국 몸이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가 면역 질환'에 시달리게 됐다.
한 시대를 달려온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견 직장인들은 후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 재수학원 시절 강의실에 붙어 있던 문구를 떠올렸다. 그들은 "오늘 쉬면 내일 뛰어야 한다"는 그 문구가 바로 우리 세대를 대변한다고 입을 모았다.
IT 업계 프리랜서 차경묵(40)씨의 책상 위에는 타이머가 놓여있다. 20분 돌아가고 울리는 벨, 그는 5분을 쉬고 다시 타이머를 돌린다. 아이가 생긴 뒤 '가장'이라는 중압감이 그를 억눌렀다. 동시에 '프리랜서'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이로인해 그는 지난 몇 년간 개운하게 잠을 자본 적이 없단다. 연달아 커피를 마시며 반 수면 상태에서 일을 해왔다.
자신의 몸에게 미안해지던 상황에 결국 호흡 곤란이 왔다. 주변에선 "쉬며 자기 자신을 돌보라"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17살에 IT업계에 들어와 20년 동안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다. 아니, 그만이 아니라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자신을 위해서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명상하는 물리학자'로 알려진 미나스 카파토스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재능은 많지만 행복하지는 않다"고 단언한다. 과도한 경쟁 체제 속에 놓인 사람들을 두고 미나스는 반문한다. "그 경쟁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니냐고 말이다. 우리는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목 말라 죽어가는 현대인들 앞에 물 한 컵과 1억 원이 놓여있다면,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라고 묻는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 휴식을 주는 사회
▲ EBS <다큐 프라임> '휴식의 기술' 1부 '당신은 일이 아니다' 편의 한 장면 ⓒ EBS
'과로 사회'였던 일본은 저출산으로 인해 노동 인구가 줄어들어 일하는 세대의 노동 하중량이 늘어났다. 그와 함께 휴식에 대한 갈망이 다양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도쿄에는 새로운 휴식법이 등장했다. 사람이 흰 보자기 위에 앉아있으면 도우미가 그를 보자기로 감싸고 동여매기 시작한다. 이른바 성인 보자기, '오토나마키'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자궁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려 속싸개로 꽁꽁 싸매듯, 어른들을 싸매주는 것이다. 보자기에서 한참 자고 난 사람들은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며 편안해 한다. 보자기로 동여매야만 숙면을 취하게 된 현대인들의 모습이 슬프다.
이런 '휴식 산업'만이 아니다. 일본은 2019년 노동법을 개정하며 초과 근무를 제한하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제를 취하는 등 일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를 '법'으로 반영했다. 정부만이 아니다. 기업들도 '휴가, 휴식'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무조건 많이 일해야 한다던 방침에서, 충분한 휴식이 외려 생산성을 높여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워케이션'이다. 출장을 간 직원에게 '휴가' 시간을 제공하는 식으로 일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일정을 배려해 주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건설 컨설턴트로 일하던 쿠리야마 타카시 역시 '번아웃'을 경험했다. 그는 30살이 될 때까지 자기 삶의 연표를 그려봤다고 한다. 30살이 될 때까지 그는 하고 싶었던 일보다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살았다. 그래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그간 하던 일에서 벗어났다.
카이야마 밸리 위성 사무실에서 귀촌한 동료들과 함께 마을 일을 하고 있는 수나다 리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시 생활에 늘 피로감을 느끼던 그는 철 따라 피는 꽃을 보며 살아가는 지금이 바로 나답게 사는 삶이라, 행복이라 자부한다. 하지만 모든 도시인들이 쿠리야마나 수나다처럼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 둘 수는 없다.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번아웃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휴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 EBS <다큐 프라임> '휴식의 기술' 2부 '휴식은 이렇게 온다' 편의 한 장면 ⓒ EBS
자신이 하던 일로 부터 탈출할 수 없는 직장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큐 프라임>은 의외로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저 하루에 5분에서 10분 '명상을 통한 마음 챙김'을 하라는 것이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40세의 김미루씨는 '빠르게 실행하라'를 슬로건으로 둔 회사에서 역시 5년 전 번아웃을 경험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MBA를 밟고, 승진을 해왔던 시간들. 남들이 보기에 좋다는 걸 얻기 위해 자신을 바쳤던 시간 동안 그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우울감에 한없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흐른 후 그녀는 달라졌다.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 일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일상화된 생활에서도 거뜬하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내에서 직원들과 함께 '마음 챙김'의 시간을 가지며 업무에서의 긴장감을 풀어낸다. 이렇게 명상으로부터 시작된 '마음 챙김'은 식생활로 이어져 건강한 삶의 토대가 되고 있다.
미국 어바인 리저널 공원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구가야 아키라씨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다. 그는 하루 10시간 동안 환자들을 상담해야 하는 등 정신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에게 육체적 강도가 높은 마라톤은 오히려 정신적 피로를 풀어내는 과정이 된다. 또 하나 중요한 스트레스 해소의 방식은 바로 '명상'이었다. 그는 '명상'을 통해 뇌를 쉬게 해줬다.
집의 기둥에 해당되는 뇌를 활성화시키는 핵심 회로인 DMN(Defalt Mode Network)는 피로가 누적되면 과열되고, 휴식을 취하면 늦어진다. '명상'과 같은 과정을 통해 뇌는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이 받아들였던 정보를 '기억'으로 축적하고 강화한다. 또한 감정 인식과 감정 기억을 좌우하는 '불안'과 '우울'도 가라앉게 된다. 심지어 캘리포니아 대학의 앨리사 에델 박사에 의하면 명상에 의해 세포 속 염색체를 보호하고 덮개 역할을 하는 텔로미어가 길어지고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
▲ EBS <다큐 프라임> '휴식의 기술' 2부 '휴식은 이렇게 온다' 편의 한 장면 ⓒ EBS
타인에 대한 연민 -그런데 내가 치유됐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던 차경묵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1박2일 라이프 쉐어를 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민의 화두'를 가지고 있다.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는 '디지털 디톡스'로 시작된 모임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이어진다. 차경묵씨는 사람을 만나는 게, 심지어 전화조차 두렵다며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얘기 나눌 상대가 마땅치 않다던 그가 '익명'의 사람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조언을 했을 뿐인데 그는 "나 자신이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연민과 이타심을 연구하는 제임스 도티 박사는 그 이유를 '연민'에서 찾는다. 연민이란 무엇일까? '관계의 동물'인 인간에겐 반드시 다른 사람과의 교감이 필요하다. 교감이 모자라면 '냉담'이 되고, 지나치면 '전염' 상태가 된다. 이 두 상태가 지속되면 '번아웃'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는데, 나와 타인 사이의 적절한 교집합이 바로 '연민'과 '공감'이다.
▲ EBS <다큐 프라임> '휴식의 기술' 2부 '휴식은 이렇게 온다' 편의 한 장면 ⓒ EBS
하지만 그 시작은 '자신'이다. 우선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것,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것, 자신을 위한 휴식을 갖는 것. 스스로에 대한 저항을 멈추는 '명상'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연민'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휴식의 기술>은 '번아웃'을 피해갈 수 없는 사회를 사는 이들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과학적'인 지침서다. 또한 '번아웃'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도망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구명 보트'이자, 휴식할 줄 모르는 사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휴식할 줄 모를 것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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