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너를 놀릴 때, 꼭 해주고 싶은 말

[은경의 그림책 편지] 야엘 프랑켈 지음 '내가 곰으로 보이니?'

등록 2019.06.12 17:00수정 2019.11.0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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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그림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 이 글을 씁니다. 이번 글은 엄마의 이름으로 아홉살 딸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기자말

사실, 공개수업에 가기 전에 엄마가 너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었어. 엄마 후배 엠마 이모가 들려준 말인데 "나도 꼭 써먹어야지!" 싶은 그런 말이 하나 있었거든. 열 살 난 딸이 외모에 대해 자신 없어하고 고민하니까 엠마 이모가 딸에게 이렇게 말했대.


공개수업에 갔을 때는 "귀여운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제일 눈에 띄네"라고, 발표회에 갔을 때는 "멋진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제일 눈에 띄네"라고. 또 함께 벚꽃 구경을 했을 때는 "예쁜 꽃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제일 눈에 띄네"라고.

이 말을 듣는데 내 기분이 다 좋아지더라. 내가 엠마 이모의 딸이었다면, (물론 엄마 말이니까 100% 믿지는 않았겠지만), 기분이 정말 좋을 것 같았어. 실제로 이 말을 자주 들은 아이가 언젠가부터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예쁜 OO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대.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키다니 놀랍지 않니? 너도 그렇지 않을까? 엄마니까 해주는 말이지만, 엄마라서 할 수 있는 예쁘고 고운 말을 자주 들으면 너 역시도 어깨에 자신감을 '뿜뿜' 달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곧 다가오는 공개수업이 끝나면 너에게 "네가 제일 눈에 띄네"라고 말해줘야지 벼르고 별렀지.

아이들이 모두 싫어한다는 친구 '문'

드디어 공개수업 날. 나를 반기는 네 모습이 한눈에 보였어. 반기는 것만큼 학교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으련만... 이상하게도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았어. 걱정스러운 마음은 잠시 접어 두고 엄마는 표정 관리에 들어갔어. 네가 언제 뒤돌아서 나를 볼지 모르니까 마치 가면을 쓴 듯 계속 웃고 있었거든. 네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해서.


이런 내 마음을 너는 전혀 몰랐겠지만 수업 시간 40분 내내 웃고 있으려니 나중에는 얼굴이 다 얼얼해지더라. 담임 선생님이 "이번엔 네가 발표해 볼래?" 물었지만, 너는 고개를 흔들었어. 그리고 뭐라고 말을 했던가?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지도 않았지. 그때였어. 한 친구가 손을 번쩍 들고 "저요, 저요" 하고 말했어. 이름이 '문(가명)'이라고 했어.

'아, 저 아이가 문이구나.'

네가 싫다는 친구 '문'. 아이들이 모두 싫어한다는 친구 '문'.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는 친구 '문'이었어. 네가 '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건 네가 직접 본 일도 아니고, 그 친구에게 그게 사실인지 확인한 것도 아니니까... 그저 소문일 수도 있잖아? 엄마 생각에는 네가 소문을 말로 옮기고 다니는 것은 좋은 행동은 아닌 것 같아. 문이 자신에 대한 그런 소문을 듣게 될 수도 있잖아. 만약 네가 문이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라는 말도 해주었는데, 기억나니?
 

'내가 곰으로 보이니?' 표지. ⓒ 후즈갓마이테일

 
아르헨티나 작가 야엘 프랑켈이 쓴 '내가 곰으로 보이니?'에 등장하는 친구 에밀리아를 봤을 때도 엄마는 네 친구 '문'이 생각났어. 에밀리아는 친구 피트에게 이런 말을 해. 친구들에게 "개를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에밀리아가 안경을 처음 쓴 날엔 "안경을 쓴 원숭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수영시간에는 "꼭 오리가 뒤뚱거리는 것 같지 않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어.

그런 말을 들을수록 에밀리야는 겁이 났어. 다가오는 음악 시간도 즐겁지 않았지. 에밀리아의 노래를 들은 친구들이 "꼭 코끼리 울음소리 같아"라고 말할까 봐 두려웠어. 그렇게 되면 다시는 노래를 하지 않을 거라고도 말했지.
 

'내가 곰으로 보이니?' 속 그림. ⓒ 후즈갓마이테일

 
네 친구 '문'도 그렇지 않았을까? 친구들 얼굴에서 싫은 표정이 드러날 때, 싫다는 말을 들을 때, 거절의 말을 들을 때, 함께 놀려하지 않을 때 '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친구들은 속삭이듯 말했지만 너무도 또렷하게 들렸다'는 에밀리아의 말이 그날따라 참 아프게 들렸어.

그런데 네가 이야기해 준 '문'과 엄마가 본 '문'은 달랐어. 너무 달랐지. 엄마가 공개수업 전후로 본 '문'은(물론 엄마가 '문'을 본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이긴 하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아이였으며 수업에 임하는 태도도 너무 적극적이었어.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여유도 있어 보였어. 공개 수업 중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엉뚱한 면도 있었지만, 피하고 싶은 친구일 정도는 아닌 것 같았어. 무엇이 문제였을까.

엄마에게 힘이 되어 준다는 아이

다리가 뻐근하도록 내내 서 있으면서도 고민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힌트를 준 건 바로 '문'이었어. '집안 일로 힘든 부모님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를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각자 집안일을 도울 수 있는 방법과 부모님께 할 말을 적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잖아. 그때 '문'이 한 말, 기억나니? '문'은 이렇게 말했어.

"엄마! 아빠가 한 말 때문에 상처 많이 받으셨죠? 제가 집안 일도 많이 돕고, 엄마에게 힘이 되어 드릴게요."

그 자리에서 누구도 그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거야. '문'이 엄마조차도. '문'이 발표를 마치자마자 교실 뒤에서는 진심의 박수가 터져 나왔어. 엄마는 눈물이 핑 돌았어. 그제야 풀리지 않는 매듭 하나가 풀린 것 같았지.
 

'내가 곰으로 보이니?' 속 그림. ⓒ 후즈갓마이테일

 
'문'이 엄마도, '문'이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 '문'에 대한 아이들의 오해가 조금은 풀렸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됐어. '네가 곰으로 보이니?'에서 피트도 에밀리아에게 이런 말을 하잖아. 다른 친구들이 에밀리아를 아무리 놀려도, 피트에게 에밀리아는 소중한 친구라고. 에밀리아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네가 좋다고. 왜냐면 "넌, 그냥 너니까."

그래서 말인데, 엄마는 부디 '문'의 엄마가 솔직하게 속마음을 말한 '문'을 나무라지 않았길 바라. 오히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엄마를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길 바라. '문'도 더 이상 엄마아빠의 모습에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또 그래서 말인데 네가 '문'이를 조금 도와주면 어떨까? 친구가 너무 외롭지 않게. 혼자 있으면 외롭고 슬프고 화나고 속상한 그 감정, 너도 나도 아는 것이니까. 이건 크게 어려운 일도,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야. 적어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인양 말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이것만으로도 '문'에게는 큰 힘이 될 거야.

그리고 '문'에게도 말해주고 싶어. 언젠가는 피트처럼 '있는 그대로의 너'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래도 힘든 순간이 오면 네가 엄마에게 그랬듯, 엄마에게 말하고 도움을 청하라고 말이야. 그리고 적어도 이날 나에게는 '문' 네가 제일 눈에 띄었다고 말이야(혹시나 해서 말인데, 이걸 보고 질투하는 건 아니지? ^^;;;)

아멜리아에게 피트 같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피트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만큼, 너도 딱 피트 같은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는 언제나 너에게 피트 같은 마음이라는 거 잊지마.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그림책편지 #야엘 프랑켈 #'네가 곰으로 보이니 #후즈갓마이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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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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