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쫌' 다녀본 부부의 유튜브, 이게 글쎄

제주살이 2년차, 우리 부부가 2인 미디어를 시작한 이유

등록 2019.06.12 17:42수정 2019.06.1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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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겨울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일을 준비하던 남편의 다리에 이상이 생겼다. 근육주사를 맞으며 경과를 지켜보느라 일의 시작은 더뎠다. 하루 이틀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는데 우리만 멈춰선 것 같았다. 마음마저 조금씩 뻐근해지던 것은 추운 바깥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새로 시작해야 한다면 그곳이 평생을 살아온 부산이든, 신혼집을 꾸렸던 양산이든, 바다 건너 제주도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겠지' 하며 입을 연 건 그 즈음이었다.

"우리 그냥 제주도 가서 살래? 가서 모든 것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 우리 어차피 결혼하면 10년 열심히 일하고, 제주도 내려가서 살자고 했잖아. 그냥 좀 당겨지는 거야."

"그.. 그럴까?"


나이 들어 철이 좀 들었다 해도 여전히 즉흥적인 나에 비해, 매사 신중하고 오래 생각하는 남편의 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래 가자!!"

계획보다 빨라진 제주 이민


우리는 막연하고 두려운 마음은 조금 끌어올리고, 설레는 마음은 잘 끌어내려 중간을 찾으며 하나씩 준비했다. 우선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전셋집을 뺄 생각에 병원을 다니던 남편이 비행기를 끊어, 당일치기로 부동산을 알아보러 갔다.

온라인으로 사전조사를 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내려가서 본 집은 사진과 많이 달랐다. 중개사 분의 소개로 몇 군데를 더 알아보고는 형편에 좀 과분한 연세 800만원 짜리 신축아파트를 골랐다.

첫해는 적응도 해야 하니 집이라도 편하고 깨끗한 곳으로 고르자는 생각에서 조금 무리를 했다. 제주도는 주로 전세보다는 연세(1년치 이용료를 한 번에 내는 것)가 많고, 계약도 1년 단위로 한다.

20평짜리 작은 신혼집 살림을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아니었다. 짐을 배에 싣고 12시간 만에 도착한 제주항에서 집까지 이동한 후 짐을 내리기까지 꼬박 3일이 걸렸다. 이사 비용이 육지간 이동의 3배나 들었다.

이제 우리는 이사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육지로 못 돌아간다. 오래 살아보자. 변덕이 심한 날씨와 태어나 처음 겪어 본 대폭설, 주체할 수 없는 강풍이 우리를 맞이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신분증에 제주도 주소가 붙었다. 정말 제주도민이 되었다.

처음 3개월은 다니던 직장을 마무리하느라 친정에서 지내며 주말부부 아닌 보름부부 생활을 했고, 그 사이 남편은 건강을 회복해 새 직장도 구했다.

육지의 3, 4월은 늘 바빠서 제주의 봄은 상상 속에나 있었는데 실제로 살아본 제주의 봄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강풍과 비가 반복되던 무채색의 긴 겨울을 지나서라 더욱 그랬을 거다. 매화를 시작으로 새싹 빛으로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은 제주. 정말이지 순간순간 '제주에 오길 참 잘했다' 하며 안도하게 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다. 초보 제주살이 부부의 4계절이 천천히 지나가고 올해 다시 새 봄을 맞았다. 이제는 제법 섬 사람이 되었다. 강풍과 폭우로 비행기와 배가 다 끊겼다고 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오후엔 쌍무지개가 활짝 모습을 드러내며 공항의 혼잡이 마법처럼 정리되는 것이 제주라는 걸 알게 됐다. 호들갑이나 괜한 고립감은 이제 없다.

흉내는 못 내어도 얼추 맥락이 들리는 제주 사투리가 정겹고, 인사하는 이웃도 생겼다. 관광객이 많은 주말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파랗게 맑은 날이면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제주를 즐길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무엇보다 여행을 왔을 때처럼 무리해서 이곳저곳을 다니지 않는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잠깐, 날이 좋아 점심 먹고 잠깐 산책을 해도 도시인(?) 시절에 그토록 걷고 싶던 오름이고, 바다이고, 푸르른 들판이니까.

운전을 하다 꿩이 대각선으로 날아도, 길을 가다 소떼를 만나도, 잘 생긴 말들이 초원을 멋지게 달려도 카메라보다 눈에 천천히 담을 줄 알게 됐다. 그러다가 정리와 기록에 도무지 소질은 없지만, 제주의 하루하루가 아쉬워 최근에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했는데, 이게 글쎄... 반응이 너무 좋은 거다. 물론 지인들 사이에서.

제주의 사소함도 제대로 알려드릴게요

제주도는 풍부한 자연도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또 하나 좋은 것은 배울 수 있는 데가 많다는 거다. 이곳이 특별자치도이기도 하고, 넓은 땅덩이 대비 인구 밀도가 매우 낮아 각 기관에서 주최하는 여러 훌륭한 강의들이 제법 많다. 육지보다 경쟁률도 낮다. 게다가 무료다.

이것저것 배우고, 도전하기 좋아하는 나는 '1인 미디어' 교육을 수강하게 되었고,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바로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 나였지만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그 동영상 공유 서비스에 조금 친해져 보기로 한 거다.

'제주', '제주도민', '제주여행' 그리고 '신혼부부' 등으로 주제를 정해 보았다. 그리고 이름이 정말 중요하다기에 이틀 정도 머리를 모아 고민한 결과, 우리의 모토이기도 한 '꼭꼭 숨은 제주', '꼭꼭 가봐야 할 제주'를 알려주자는 의미로 '꼭꼭제주'라 이름 지었다.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단순한 이름이었는데, 지인들에게 예고편 링크 하나씩 던져주고 보니, 한 번에 알아듣기 쉽고, 기억하고 부르기 쉽다고들 해주어서 내심 뿌듯했다.

역시 심플 이즈 더 베스트라더니. 그리고 또 하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는 것 자체를 신기해 하고, 누군가는 용기가 부럽다고도 했다.
 

'꼭꼭제주' 로고송 만들기 캐릭터도 만들고. 노래도 만들었다. 블루투스 마이크로 직접 노래도 불렀다. ⓒ 김태리

 
어떤 거창한 용기나 큰 포부, 장대한 계획 같은 건 없다. 다만 이건 나의 '끈기 부족'에 대한 또 하나의 도전이다. 시작이 반이고,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시작은 했으니 이제는 꾸준함만 남았다. 혼자 했으면 외롭고 지치기 쉬웠을 그야말로 '도전'으로 끝났을지 모르나, 남편의 성실함을 빌려 꾸준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밖으로 어디든 나가는 걸 좋아하는 나와 집에서 뒹굴거리는 걸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남편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각자의 성향과 시간을 최대한 존중하는 거였다. 그리하여 나는 '혼자여행'을 씩씩하게 즐기고, 남편은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귀찮아도 함께 밖으로 나가곤 했는데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후로는 달라졌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함께 하고 싶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제주의 사소한 모든 것들에 관심이 많아졌다.
 

꼭꼭제주 예고편 제주도민이 제주도를 여행하는 법 - 제주여행 유튜브 ⓒ 김태리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이제 다음 촬영을 위해 '기획회의'를 한다. 2인 가족이지만 회의록도 작성하고, 존댓말을 구사하며 꽤 진지하게 머리를 모으고, 마음도 모은다. 가족의 소소한 일상들을 기록하고, 제주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주2회 업로드를 선언한 '꼭꼭제주'.

열심히, 아니 꾸준히 해보겠다. 언젠간 희미해져 버릴 오늘을 작은 프레임 속에 담아 공유하는 것, 많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자막을 입력하다 손에 쥐가 나더라도 놓치고 살던 내 가족의 작은 속삭임과 표현들을 찾게 될 것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슬로건처럼 우리 모두는 '미디어'를 창조할 수 있는 '예비 크리에이터'이다. 부지런해서 유튜브를 하는 게 아니라, 유튜브를 해서 부지런해지고 있다.

☞ 꼭꼭제주 보러가기
#제주여행 #제주유튜버 #유튜브 #2인미디어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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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에 신이나서 부지런해지는 게으름쟁이 '미스태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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