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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들 걱정하게 만든 '고질라', 인간 묘사는 왜 이랬나

[리뷰]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괴수는 흥미롭지만...

19.06.02 15:22최종업데이트19.06.0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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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014년에 일어난 고질라와 무토의 샌프란시스코 전투로 인해 앤드류를 잃은 아빠 마크(카일 챈들러 분)와 엄마 엠마(베라 파미가 분), 누나 메디슨(밀리 바비 브라운 분). 그로부터 5년이 흘렀으나 가족은 여전히 슬픔 속에 살고 있다. 미지의 생물을 연구하는 '모나크' 소속으로 연구를 하던 엠마는 또 다른 공격에 대비해 고대 괴수 '타이탄'과 소통할 수 있는 주파수 장치 '오르카'를 개발한다.

그러나 극렬 환경주의자 조나 앨런(찰스 댄스 분)이 이끄는 테러 조직이 연구소에 침투하여 오르카를 빼앗고 엠마와 메디슨을 납치한다. 테러 조직은 괴수들을 이용하여 지구를 초토화할 속셈으로 모스라, 로단, 기도라 등 타이탄들을 오르카로 깨운다. 타이탄들이 날뛰며 지구에 엄청난 재난이 발생하자 심해에 있던 고질라가 돌아온다.

거대 괴수 고질라는 1954년 영화 <고질라>로 처음 등장한 이래 영화, 게임, 소설, 만화, TV 시리즈 등 많은 미디어에서 다양한 활약상을 선보였다. 고질라의 인기는 2004년 시리즈 50주년을 맞이하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유명한 보도인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을 정도로 대단하다.

인간의 오만함
 

▲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는 <고질라>(2014)와 <콩: 스컬 아일랜드>(2017)를 잇는,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와 워너브라더스가 기획한 '몬스터버스'의 세 번째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마이클 도허티 감독은 "고질라 영화는 블록버스터이고 재미있지만, 몬스터가 만들어낸 대혼란과 종말적 파괴 아래에는 우화가 있다"면서 "원작자가 그런 식으로 고질라 캐릭터를 만들어 묘사했고 고질라가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의 설명처럼 고질라는 수십 년에 걸쳐 정치적, 사회적, 생태학적 변화를 거쳤지만, 모두 똑같은 경고를 건네고 있다. 바로 인류가 개발한 기술이 지닌 위험성과 인간의 오만함을 향한 자연의 분노다.

가렛 에드워즈가 연출한 2014년 <고질라>는 '자연에 지나치게 대항하면 자연이 보복한다'는 <고질라> 시리즈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부극의 구조를 취하여 눈길을 끌었다. 외부의 침입에 맞서 홀연히 나타난 고질라는 공동체의 질서를 회복한 후에 <수색자>의 한 장면처럼 떠났다.

고질라가 지닌 정치성에 주목한 작품은 안노 히데아키가 만든 <신 고질라>(2017)다. <신 고질라>는 고질라에 제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혼란을 다룬 <일본의 가장 긴 하루>(1967)의 화법을 섞어 3.11 동일본대지진을 전후로 한 일본의 혼란을 그렸다. 가렛 에드워즈는 원작 고질라의 장르를 변형했고, 안노 히데아키는 원작 고질라의 은유에 충실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고질라 영화인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어떤 작품일까?

괴수들의 향연
 

▲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014년 <고질라>가 1954년 <고질라>에서 출발한다면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1964년에 제작한 <삼대 괴수 지구 최대의 결전>을 바탕으로 한다. <삼대 괴수 지구 최대의 결전>은 고질라 시리즈가 '인간 대 괴수'에서 '괴수 대 괴수' 구도로 방향을 바꾸었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고질라와 라돈이 영역 싸움을 벌이던 와중에 외계 괴수 킹기도라가 지구에 침입하고, 홀로 맞서던 모스라가 쓰러지자 고질라와 라돈이 대립을 멈추고 힘을 합쳐 킹기도라를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았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삼대 괴수 지구 최대의 결전>의 거대 괴수가 맞붙는 서사에 CG의 힘을 불어넣어 괴수들이 펼치는 실감나는 '로얄 럼블'을 보여준다. 9천 톤의 육중한 체구를 자랑하며 방사능을 불길로 변화한 푸른색 화염을 내뿜는 고질라, 거대한 날개를 가지고 세 개의 머리가 각기 다른 인격과 지능을 지닌 기도라, 나방 모양으로 날개의 무늬를 이용하여 광선을 쏘는 모스라, 하늘을 나는 익룡으로 초대형 강풍을 일으키는 로단 등 타이탄이 펼치는 전투 장면은 파괴의 미학을 자랑한다. 어릴 적 AFKN이나 일본 잡지 등을 통해 괴수물을 접한 중년층 또는 괴수 장르에 열광하는 매니아층에겐 꿈이 현실이 되는 놀라운 순간이다. 곳곳에서 보이는 오마쥬는 덤이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괴수들의 분량은 흥미진진하다. 반면에 인간들의 서사는 형편없다. 영화의 초반부엔 고대 괴수 타이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입장이 갈리는 장면이 나온다. 정부와 군대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선 타이탄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고 모나크는 타이탄을 죽이는 건 실수이며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현실의 정치에서 사안을 놓고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뉘는 풍경인 셈이다.

신선한 전개 아쉬워
 

▲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텍스트의 날카로움은 여기까지만 유효하다. 이후 전개는 날림 공사에 가깝다. 테러 조직에 모나크 연구소가 너무나 손쉽게 털린다거나 주인공들이 탄 자동차나 비행기는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건 장르의 허용치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엠마의 행동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런 결심조차도 상황에 따라 쉽사리 뒤집으며 오락가락하는 통에 황당함만 쌓인다. 조나 앨런의 대사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정확하게 무엇인가?"를 그대로 던지고 싶을 지경이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1950~1960년대에 태어난 소재를 1990년대~2000년대 <인디펜던스 데이>(1996)와 <고질라>(1998)로 대표되는 롤랜드 에머리히식 재난 영화의 작법과 유머로 구성한 다음에 2010년대 최첨단 CG를 덧붙인 혼합된 결과물 같다. 바꾸어 말하면 이야기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소리다. <혹성탈출> 3부작이 시대에 맞추어 변화를 주었던 것과 비교하면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의 전개는 안일하기 짝이 없다. 정치적 또는 사회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마이클 도허티 감독은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었다"고 연출 의도를 이야기한다. 그의 바람은 괴수 장면만 해당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인간 장면은 개연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존재감을 발하던 전편의 '무법자' 고질라는 재미없는 스토리텔링과 밋밋한 기믹으로 무장한 '레슬러' 고질라가 되어버렸다. '몬스터버스'의 최종 라운드인 <고질라 VS. 콩>(2020년 3월 13일 미국 개봉 예정)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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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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