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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탄압? 논리적이지 않아... '약탈적 관행' 먼저 고쳐야"

[논쟁 인터뷰]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

19.06.05 11:13최종업데이트19.06.0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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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7월 31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PC방에서 시민이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을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게이머는 소수자나 약자가 아니다. 이번 '게임중독 질병 분류' 사안을 두고도 게임계에서는 어른스러운 반응이 안 나오고 있다. 이러다가 매 맞으면서 쫓겨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중독(게임이용 장애)을 질병으로 분류해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에 등록하기로 의결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 게임업계는 90여 개 관련 단체가 참여한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게임공대위)'를 꾸려 지난 5월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게임을 게임으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관련 기사 : 국회에 '근조 게임' 영정... "마녀가 된 게임문화·산업" http://omn.kr/1ji5k).

반면 전현직 게임개발자들과 산업 종사자들로 구성된 게임개발자연대는 게임업계가 이번 기회를 통해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대응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임개발자연대는 공식 SNS 계정을 통해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고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라며 "하지만 이번 WHO의 결정은 우리 산업이 지금까지 이용자를 얼마나 배려했는지, 약탈적 운영 관행은 없었는지 돌아볼 계기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는 게임업계 내부에서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임개발자연대를 접촉해 그들의 주장을 들어봤다. 게임개발자연대는 지난 2013년부터 셧다운제 등 게임 규제에 맞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해온 단체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지난 5월 28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게임은 중독 물질이 아닌 문화'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게임이 문화라고 해서 게임계의 문제점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

1년 유예 후 결정된 '게임중독 질병 분류'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자료사진) ⓒ 박정훈


- 최근 게임계 안팎에서 '게임중독 질병 분류'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게임개발자연대 측에서는 질병 분류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필요하다기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필요 여부는 저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WHO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 '게임중독'이나 '게임이용 장애'라는 단어가 무얼 말하는지 분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WHO에서는 게임 이용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규정한 건가.
"'위험한 게임 유형'이라고 있는데, 살펴보니 중요한 부분이더라. WHO에서 정한 것을 보면 '감정적 통제가 안 돼서 키보드 등 기물을 파손하거나, 게임에 졌다고 사람을 때리거나, 게임하다가 온라인 채팅으로 폭언·성희롱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한 걸 분류한 것이다. 게임을 '그만 하라'고 하면 화내고 폭행하는 경우도 게임이용 장애에 포함된다.

이건 납득될 영역이 아니지 않나. 게임 때문에 폭력적으로 됐다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이용 과정에서 장애가 나오는 걸 지적한 거다. 갑자기 게임을 하고 싶으면 당장 해야 하고, 게임을 종료할 시간이 됐는데 끄질 못 해서 약속을 어기고, '일주일에 (게임을) 한 번만 해야지'라고 정했는데 매일 하게 되고... 이런 통제 장애가 사회생활, 업무에 영향을 주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게임 때문에 삶의 다른 부분에 흥미를 잃는 것도 포함된다."

- '게임중독 질병 분류'를 두고 이미 지난 2018년 5월 WHO 질병 코드 신설이 추진될 예정이었다가 1년 유예된 바 있다. 지난 1년간 게임업계는 어떻게 논의를 진행했나.
"(진행된 게) 없다. 게임업계에서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게임중독 등재 반대' 등 WHO에 반대 항의 서한을 보내는 데 게임개발자연대도 동참해달라고 했었다. 반대 논리도 없고 방어도 안 될 텐데 이걸로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 싶어서 쓴소리를 했다.

많은 한국 게임 산업단체는 '우리는 결백하다, 게임을 게임으로 봐달라'라고만 한다. 게임에 책임을 묻지 말란 식이다. 게임은 문화이고 게임 자체에 문제 없다고 해도, 게임을 서비스하는 환경이 있으면 운영하는 사람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게임을 즐기는 커뮤니티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나눠서 생각해야 할 일이다.

WHO도 그런 개인의 영향을 말하는 거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하는 부분을 중독으로 정의한 거다. 게임이 문제라고 정한 게 아니다. 그런데 게임업계는 '게임 문화와 이용의 문제'를 '게임의 문제'라고 지적받는 것처럼 희석하고 있다. 게임이 탄압받는다는 논리로 방어를 하려는 건데, 방어가 안 되는 상황이다." 

- 게임계에서 논의가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작년 논의 거의 그대로다. WHO에서 정한 건 납득할 만한 분류 체계인데, 지금까지 게임업계에서 내놓은 방어논리 중 여기에 작동할 만한 게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 게임업계를 포함한 일각에서는 '이번 WHO의 판단에 적절한 과학적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얘기하는데, 그 말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질병 분류를 위해서는 특정 현상이 발생한다는 걸 증명하고, 증상이 있단 걸 검증하면 된다. 게임업계에선 '이런 문제가 게임 때문이라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 기전이 명확히 파악이 안됐기 때문에 게임을 원인으로 이어가면 안된다'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WHO에서는) 애초에 '게임 때문에 발생한 질환'이라고 명시하지 않았고 '게임을 잘못 이용한다거나 게임을 이용하는 데 조절력을 잃는다'라는 걸 문제 삼는 거다. (게임계의 주장이) 이걸 반박할 수 없는 논리인 게 문제다."

'게임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게임 운영 방식이 문제'
 

▲ '게임중독' 질병코도 도입 반대 공대위 발대식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이 향후 활동계획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게임공대위는 5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 당시 '게임산업의 사망'을 표현하듯이 근조 리본을 달고 '게임'이라고 쓰인 영정도 마련했다. 참석자들은 질병코드 도입이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적 낙인 효과'가 될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서는 '게임 질병코드 지정에 관한 애도사'가 낭독되기도 했다. 

김 사무국장은 게임계의 대응 방식이 감정적이고 안일하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게임계) 방어논리가 작동을 안 하니까 감정적인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게임의 이미지가 안 좋은데 왜 더 안 좋아지게 하느냐, 이건 낙인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게 과연 낙인인가. 그렇지 않다.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거다. WHO에 다른 장애도 등재돼 있는데 (그것 때문에 특정 분야의)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주장하기엔, 그거야말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WHO 결정을 막을 수 있느냐? 못 막는다. 그러니까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번 WHO에 등재된 게 권고 수준이라서 국내 도입을 막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다. 다만 국제적 의료 추세와 우리가 달리 갈 수 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는 "게임 자체가 중독 물질이나 악이 아니다"라는 부분에서는 기존 게임업계와 같은 입장을 드러냈다. 다만, 게임회사들이 "게임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우리 업체들이 언제나 떳떳했는지 돌아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게임 산업의 문제점 중 간과하거나 알면서도 무시한 부분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고쳐나가야 할 때라는 것이다.

- 게임공대위 등 국내 게임업계는 '게임이 마약이냐'라는 논리로 반박하려는 듯하다.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국내 프레임에 한정된 것이다. 물론 걱정하는 부분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중독포럼 등의 단체에서 청소년 게임 중독에 관해 주장하는 것 중엔 일부 논리 비약도 있다고 본다. 청소년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닌데 청소년의 문제로 몰아가는 데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의 건강과 게임 과몰입은 문제가 안 된다? 아니지 않나." 

-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WHO의 결정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있나.
"일본, EU, 미국의 경우 게임협회에서 대부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사회적 요구와 윤리적 책임을 지기 위해 더 연구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방향을 설정하겠다고도 했다. 외신을 보면 이미 일본에서는 관련단체 4곳에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
 
- 여러 매체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인한 게임산업 위축 등을 우려하고 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까?
"한국 게임업체의 유명 게임들을 보면 전체연령가인데 부분유료화를 시행하거나, '확률형 아이템'(내용물을 모르는 상태로 사용자가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면 일부 확률로 좋은 내용물을 얻는 방식)을 넣어 어떻게든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운영해왔다. 그건 게임 사용자가 아니라 회사가 좋은 방향이었다. '방학 기간 접속 이벤트'를 게임 내부에서 열어 10대 사용자의 접속률을 높이는 방식도 마찬가지의 일이다.

게임문화 문제를 시인하면서도, 이 사안을 산업 문제로 해석하며 반대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게임의 건전성을 올리면 매출이 내려가고 산업 규모가 축소될 거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청소년이 게임의 현금결제를 자제 못해서 부모님 신용카드를 사용했다가 기사화되지 않나. 문제가 이미 있다면, 그걸 인정하고 해결해나가야 한다. 아예 무시하는 건 책임회피 아닌가. 게임업체가 약탈적 관행으로 유저를 착취하는 문제가 없었다면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인 지스타가 지난 2017년 11월 16일 부산 벡스코에서 나흘 일정으로 열렸다. 현장에서 관람객들이 PC 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지스타는 주요 게임업체들이 앞다퉈 내놓은 신작을 볼 수 있고 e스포츠 절정고수들의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게임축제다. 2017년 지스타에 35개국 676개사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 연합뉴스


- 그렇다면 게임업계가 어떤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보나.
"앞서 말한 방식으로 지금까지 게입업계가 부를 쌓고 매출을 올렸다. '영수증은 언젠가 계산해야 된다'는 말이 있다. 게임업체가 성장했다고 하지만, 말이 성장이지 대부분 대기업에 인수되거나 나머지는 공중분해됐다.

외부에서 게임을 보는 시각이 나쁘다? 맞다. 그 시각이 부당하다? 그것도 맞다. 다만 현재 게임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느냐 하면 아니지 않나. 문체부도 이번 사안에 대해 '게임중독 질병 분류에 반대하지만 성숙한 게임 문화를 만드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에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라고 밝히지 않았나. 게임 문화가 완벽하지 않다면 그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  

김 사무국장은 "게임회사와 게임 사용자의 관계가 수평적이지 않다, 회사가 사용자를 배려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게임에 대한 나쁜 인식이 퍼져나가면 안 된다고 하기보다, 지금까지 해온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기사 보기]
"중독이면 금단 증상 있어야... 게임 질병 분류, 이해 부족" http://omn.kr/1jk55
"'게임중독'이 근거 부족? 그러면 '알코올중독'도 불가능" http://omn.kr/1jk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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