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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무섭고 충격적인 이유는..." 봉준호가 밝힌 비하인드

[여기는 칸] 한국 취재진 만난 봉준호 감독, 그가 <옥자> 이후 결심한 것들

19.05.24 09:07최종업데이트19.05.2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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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대극장에서 21일 첫 공식 상영을 마친 직후 <기생충> 팀. 관객들 기립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 CJ ENM

 
"밤이 늦었습니다. 이제 집에 갑시다!"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기생충>이 상영된 날 봉준호 감독은 덤덤한 듯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의 첫 공식상영을 마친 다음 날(22일) 봉준호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옥자> 이후로 2년 만에 선보인 작품.

봉준호 감독은 "보통 3년에 한 번씩 작품을 만들었는데 기차(<설국열차>)랑 돼지(<옥자>) 때문에 사이클이 깨져 있었다"며 "그 사이클을 복구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라며 웃어 보였다.

시작 지점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CJ ENM

 
봉준호 감독이 기억하는 <기생충>의 최초 구상 시기는 2013년 무렵이다. "한강 다리에 뭐가 붙어 있나 상상하다 만든 <괴물>처럼 분명한 계기가 있진 않았다"며 <기생충>의 시작을 언급했다. 

"마치 바지에 묻은 얼룩처럼 언제 묻었는지 모르겠지만 집에 와보니 보이는 것처럼 최초 순간은 기억 안 나지만 인식은 하는 그런 것이었다. 2013년 <설국열차> 후반 작업 때 지인에게 이 아이디어를 말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고, 두 개의 집이 배경이다. 아마 공간이 집약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가제는 <데칼코마니>였다. <해피 투게더>라는 제목이 나오기도 했다. 그때는 수평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거였는데 <기생충>으로 잡으면서 지금의 구조가 나올 수 있었다. 

제목이 부정적이고 비하하는 느낌이라 제작사에 더 좋은 제목이 있음 말해달라고 했다. <살인의 추억> 때 경험으로 용기는 있었다. 그땐 부정적인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거든. 살인에다가 어떻게 추억을 붙이냐고, 그래서 그땐 촬영할 때 드리는 명함에 '사랑의 추억'이라고 파서 드리곤 했다(웃음)." 


그렇게 해서 영화 <기생충>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부잣집 박 사장(이선균) 집에 단체로 취직하면서 벌어지는 웃기면서도 결코 웃지 못할 비극 말이다. 배우 송강호, 장혜진, 최우식, 박소담이 한 가족으로 분했고, 이선균, 조여정이 부부로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의 배우 운용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제가 의지할 수 있는 강호형과 친근한 스태프들과 함께 오랜만에 친정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고 봉 감독이 당시를 소회했다.

<옥자> 그 이후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 CJ ENM

  
여러 외신에선 <기생충>을 두고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넷플릭스와  협업했던 글로벌 프로젝트 <옥자>가 다소 아쉬웠고, 봉 감독 색깔을 원했다면 이번 영화가 반가울 것이다. 2년 전 칸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당시 <옥자>는 넷플릭스 같은 OTT 기업이 제작한 영화를 경쟁 부문에 초청하는 게 맞는지 등 여러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넷플릭스와는 뭐, 개봉 과정에서 힘들었던 거지 제작 과정에선 문제가 없었다. 당시에 논쟁이 너무 커져서 칸에서도 영화 얘기를 할 틈이 없었다. (제 입장에서) <옥자>와 <기생충>은 외국이냐 한국이냐의 차이보단 제작 규모의 차이다. 많은 분들이 미국영화를 하다가 한국영화로 다시 갔다고 하는데 거대 규모에서 원래 하던 규모로 왔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비교의 틀이다. 

이번 영화가 100억 초반이니까 <옥자>의 5분의 1 규모거든. 컴퓨터 그래픽으로 돼지를 300컷 만든다는 건 어마어마한 예산과 에너지가 투입되는 일이다. <기생충>에선 제 에너지를 더 섬세하게, 집중해서 쓸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규모의 영화를 쭉 하고 싶다. 제 몸에 맞아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딱 손에 쥐고 조물거리는 느낌이었다."


개봉 전까지 스포일러 자제를 부탁하는 이례적인 보도자료까지 있었기에 이 지면엔 실을 수 없는 내용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비교적 상세하게 답했다. 이 시점에서 전할 수 있는 건 봉준호 감독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변했다는 것이고, <기생충>은 블랙코미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주제의식이 상당히 충격적이고 어둡다는 것이다. 

"그렇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뭔가 안에서 다 무너져버리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부잣집 사람들도 알고 보면 그렇게 악당이 아니란 말이지. 살면서 미묘한 갑질을 하긴 하지만 그게 또 할 수는 있는 행동들이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도 마냥 선하진 않다. 가만히 보면 적당히 뻔뻔하거나 못된 구석이 있을 수도 있다.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쁜 사람. 어찌 보면 평범할 수도 있는 이들이 가난과 부유함이라는 상황에서 극한으로 치닫잖나. 영화에 특별한 악인이 없음에도 그런 상황까지 간다는 게 슬프게 보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전 슬픔의 감정을 공유하고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사는 해법까지 제시하고 싶진 않다. 섣부를 것 같다. 슬픈 마음으로 소주 한잔하면서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 CJ ENM

 
지난 21일 뤼미에르 대극장 상영 당시 <기생충>의 엔딩 크레디트가 나오는 도중 불이 켜지면서 상영이 끝난 바 있다. 기립박수 및 의전 행사 차 그렇게 진행하는 경우가 있지만 봉준호 감독 입장에선 많이 아쉬울 수 있는 대목이다. 봉 감독은 "한국 개봉 때 꼭 엔딩 크레디트를 보시라"고 당부했다.

"무섭고 충격적인 감정이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어느 정도 수습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감정을 추슬러야 하지 않나. 그걸 위해 필요한 장면을 넣었다. 아련함이 관객분들에게 남길 원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최우식씨가 노래를 부른다. 정재일씨가 작곡하고 내가 작사한 건데 물론 장밋빛 희망을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나름 정서가 있다. 무시무시한 일을 겪었지만 꾸역꾸역 살아간다는 그런 톤의 노래다. 이걸 통해 어떤 여운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기생충 봉준호 옥자 칸영화제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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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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