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탄희, 판사가 된 이유 - 이탄희, 사표를 낸 이유

'사법농단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 강연... "진보-보수 상관없는 문제"

등록 2019.05.22 17:57수정 2019.05.2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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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희 변호사(전 판사)가 21일 오후 7시 서울시NPO지원센터 품다홀에서 '후불제 민주주의 사회와 사법농단-사법농단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법원을 떠난 이 변호사는 이날 강연을 주최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 소중한

 
객석에서 다소 짓궂은 질문이 나왔다. "AI(인공지능) 판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탄희 '변호사'는 "답해야 하나요?"라면서도 이내 웃으며 답을 이어갔다.
 
"어... 그 영화 있잖아요. 맷 데이먼이 나왔던 <엘리시움>인가. 지구하고 달(영화에서 상위 1%만 살고 있는 '엘리시움'이란 공간)이 있는데, 지구에선 로봇이 재판하고 달에선 사람이 재판하잖아요. 그 영화만 봐도 사람 앞에서 받는 재판이 귀한 재판인 것 같죠? (웃음)"


법원을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좋은 법원을 원하고 있었다. 재판과 법관이 가진 힘, 그리고 그 힘이 바르게 사용되기 위한 양심과 명예. 그는 'AI 판사를 도입하자'는 대중의 자조 섞인 비판에 '사람'이란 답을 내놨다.

무의식 중 "우리 법원"이라고 말했다가 "아직도 '우리' 법원이래"라며 웃음을 내보인 그는 자신이 판사가 된 이유, 그리고 자신이 사표를 낸 이유를 담백하게 설명했다. 이 두 가지 '이유'에는 사법농단을 진단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힌트가 담겨 있었다.

판사란 무엇인가

이 변호사는 2008년 4월 판사가 됐다. 그리고 2019년 1월 법원을 떠났다. 최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들어간 그는 21일 오후 7시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후불제 민주주의 사회와 사법농단-사법농단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2003년, 자신이 25살 때 쓴 글을 화면에 띄우며 운을 뗐다.

"사법연수원 1년차였어요. 이라크 파병이 사회적 이슈였죠. 주변의 다른 연수생들이 이 논쟁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어요. 예비법조인으로 법적인 문제에 한정해 의견을 낸다면 함께 하겠다고 했죠. 그래서 직접 (파병 반대) 의견서를 썼어요. 연수생 한 기수가 1000명이고 휴학 등 제외하면 900명 초중반 정도인데요. 460여 명이 동의했죠. 결국 이 일에 관여된 연수생 18명이 징계를 받았어요. 아주 큰 사건이었죠.

저는 그 징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부당한 평가를 받아 나의 가치가 훼손된 느낌이었죠. 그래서 제가 뭘 했는지 아세요?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이 이야기 하면 황당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제가 연수원에 있을 때 판사가 될 생각이 없었거든요. (지금 제 아내와) 연수원 커플이었는데 제 아내도 (제가) 변호사할 줄 알고 있었어요. 연수원 성적을 보면 징계 전후가 너무 달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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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전 판사(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지난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긴급조치 피해자 원상회복 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 남소연

 
이 변호사는 "선망하는 것을 갖게 되면 제 가치가 복원되지 않을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가졌다, 지금 생각하면 썩 바람직하진 않았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렇게 판사가 되고 나니 멈칫하는 느낌이 들더라"며 "미래지향적 목표를 가진 게 아니라 지기 싫은 마음에 판사가 된 것 아닌가, 심리적 진공상태였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이상은 결핍에서 온다"는 말을 이어갔다. 그는 "저의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라며 "결핍감으로 인해 항상 이상을 채우려고 발버둥쳤다, 그리고 배석판사로 배치됐을 때 재판을 너무 잘하던 부장판사를 만났다"라고 설명했다.

"법정에서 재판을 너무도 잘 하는 거예요. 서면 있으면 요약해서 읽어주고 각자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게 하고, 본인 생각도 이야기하고, 몇 번 설명을 해요. 충분히 소통이 되는 거죠. 그러면 재판이 끝날 때쯤 되면 대충 (결과가) 짐작되잖아요. 그렇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며 선고기일을 따로 잡고 그 사이에 의견을 내도록 해요.

재판이 정말 중요한 것이고 보람찬 일이구나 생각했죠. 그리고 그때부터 재판에 몰입했던 것 같아요.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주말도 반납했죠. 그 당시 집이 송파구 문정동이었고, 제 초임지가 수원지법이어서 운전하면 30분 만에 갈 수 있는데요. 수원지법 근처 아주대 앞에 열댓평 아파트가 있었어요. 거기 총각 검사님이 살고 있었는데 제가 월세를 얻어 들어가 살았어요. 출퇴근 시간도 아까워서(웃음)."


명예란 무엇인가

2014년 9월 유학을 떠난 이 변호사는 2015년 9월 법원으로 복귀했다. 그는 "복귀한 한국 법원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제가 소속됐던 법원의 판사가 대표로 체육대회에 갔다 왔어요. 언론에도 많이 나온 '한마음 체육대회'요. 그 판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가 뭘 하고 왔는지 묻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위한) 카드섹션 같은 걸 했던 거죠. 술을 마시다 친한 후배 판사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형, 지금은 재판을 열심히 해서 되는 시대가 아냐, 술자리에 밤늦게까지 있어야 하고 체육대회에 열심히 나가야 기획법관도 되고 고등법원장도 되고 대법관도 되는 시대야.' 이 말을 듣고 개인적으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이후 이 변호사는 대법원에 쓴소리를 할 수 있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활동했고 2016년 12월부터 기획팀장직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문제의 사건이 발생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기획팀장으로서 첫 번째 맡은 일이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학술대회를 연 겁니다. 그때 발표문의 주제가 '국제적 관점에서 본 법관 인사제도'였죠. (2017년 3월로 예정된 학술대회와 관련해) 2017년 1월 대법원에서 '하지마라'고 간접적으로 연락이 왔어요. 그래도 계속 진행하니 법원행정처 높은 분이 전화가 와서 '꼭 해야 하면 축소해라, 언론에 보도가 안 됐으면 좋겠다'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전화를 끊기 전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추천했다'고 그러더군요.

2017년 2월 정말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으로 발령이 났어요. 혹시 여러분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시나요? 저도 잘 몰랐어요. 그래서 심의관으로 근무했거나 근무하고 있는 사람 중 친분이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들었죠. 공통적으로 들은 말이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같이 근무하지만 옆 책상 판사와 말을 나눠서도 안 된다'란 말도 들었고요. 이 분들, 제가 모르던 분들이 아니거든요. 20년 동안 알고 지낸 대학 동기도 있어요. 그동안 한 번도 내색을 안 했는데 그때서야 그런 이야기 하는 거예요. 정말 이상하다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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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전 판사(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지난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긴급조치 피해자 원상회복 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그렇게 이 변호사는 법원행정처에 '입성'했다. 그리고 그가 마주했던 건 법관 뒷조사 파일,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계획 문서 등이었다. 이 변호사는 업무를 거부한 뒤 사표를 냈고, 이후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졌다. 그렇게 지금 우리가 말하는 '사법농단'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사직서 낼 때 '명예'란 단어를 많이 생각했어요.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 그게 명예잖아요.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내가 다르면 그때부터 사람이 약해지지 않겠어요? 그게 싫었어요. 근데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은가 봐요. 그동안 아무도 안 들켰잖아요. 안 들키면 된다는 사람도 있겠죠."

다시, 판사란 무엇인가

'판사는 재판을 하는 사람.' 너무도 당연해서 오히려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이 말. 이 변호사는 이날 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저 지기 싫은 마음에 판사가 됐던 그는 훌륭한 선배 판사로 인해 재판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재판이 아닌 '이상한' 업무를 맡게 됐을 때 곧장 사표를 던졌다.

"(사법농단 수사를 두고) 검찰과 법원의 대립을 이야기하는데, 여러분은 검찰과 법원의 싸움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그저 더 좋은 법원, 더 좋은 검찰을 원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제가 판사는 각각 독립기관이란 의미에서 '3000개의 사법부'를 이야기했어요. 근데 어떤 전직 대법관이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자기 업무와 자기 판결만 하는 3000개의 새끼 사법부가 될 것(이용우 전 대법관, <월간조선> 인터뷰)'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판결 하는 게 새끼 사법부예요? 그럼 법관이 남의 업무를 해야 하나요?"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법원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법원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국민들은) 알 수가 없잖아요. 또 법원 안에서도 일선 판사들은 법원행정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고요. 6년 동안 한마음 체육대회가 진행됐고, 거기서 코스튬플레이(만화나 게임의 주인공의 복장을 입는 것)도 했었다는 거 아니에요. 거기에 시민들 한두 명이라도 있었으면 판사들이 그러진 않았을 걸요. 외부에서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능한 일들이에요."

이 변호사는 '판사들을 향한 대중의 인신공격이 심각하다' 등의 의견에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민주사회에선 대중이 왜 그런 기분을 갖게 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라며 "(사법농단과 관련된) 문건을 본 국민들이 어떻게 그 전과 같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배우자의 외도 장면을 목격했고 문제 해결이 잘 되지 않았다면, 이후 배우자가 무언가 의심스런 행동을 할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들 것 아닌가"라며 "(사법농단에) 관여한 판사들이 직을 유지하는 한 (대중의 판사들에 대한 비판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 법관 탄핵 ▲ 재판 녹화(중계 X) ▲ 법원행정처 폐지 및 사법행정 업무 탈판사화 ▲ 대법원장 인사권 축소 ▲ 국민들이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 등을 사법개혁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진보-보수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판사가) 법정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판결을 내린다면? 이런 법원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개혁을 누가 주도하냐'는 관점에서 진영 논리가 작용할 순 있겠죠. 하지만 재판이 법정에서 진행되지 않는 사회는 누구나 원치 않는 거잖아요. 만약 내가 권력자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는데 법원이 '법원 조직의 이익'이란 관점에서 권력자와 거래해 나를 패소시킨다면? 이건 절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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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희 변호사(전 판사)가 21일 오후 7시 서울시NPO지원센터 품다홀에서 '후불제 민주주의 사회와 사법농단-사법농단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법원을 떠난 이 변호사는 이날 강연을 주최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 소중한

 
#이탄희 #변호사 #판사 #사법농단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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