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의한 심판"? 장자연 사건, 공허한 마무리

[해설] 시간 경과, 당사자 부재, 초동수사 부실 등 극복 못 해... "다수의견 묵살" 주장도

등록 2019.05.21 10:46수정 2019.05.2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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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중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장 대행과 문준영 위원이 20일 오후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종합청사 법무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 및 심의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양심에 의한 심판, 성찰의 계기, 우리 미래를 위한 사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 사건'의 재조사는 이런 추상적인 말들로 끝나고 말았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13개월 동안 이 사건 재조사를 진행했음에도 검찰 수사로 이어질 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0년 이상 지난 사건이고, 당사자가 부재했으며, 초동수사까지 부실했던 탓에 어쩌면 예견됐던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래는 20일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정한중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위원장 대행)이 발표한 내용이다.
 
"한 젊은 여성의 꿈을 짓밟은 고위공직자, 언론 및 연예계 등의 힘 있는 사람들을 형벌에 처할 수 없다고 해도, 양심에 의한 심판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고인을 보내드리고 (이 사건이) 수사기관과 우리 사회 권력자들에게 성찰의 계기가 된다면 이 사건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공소시효, 공소시효, 공소시효...
 

‘장자연 사건’ 결과 발표, “처벌 피했지만, 양심에 의한 심판 피할 수 없을 것” 정한중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장 대행이 20일 오후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종합청사 법무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 및 심의결과를 발표했다. ⓒ 유성호

 
위원회가 확인한 건 네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 장자연 문건에 기재된 내용의 신빙성 ▲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의 강압적인 술접대 지시와 강요 ▲ 경찰·검찰의 초동수사 및 사건 처리의 문제점 ▲ 술자리 합석 및 사건 무마 시도 등 이 사건과 조선일보의 연관성이 그것이다. 하지만 문건 외 명단 형식의 '리스트'가 존재했는지 여부와 장씨의 성폭행 피해 의혹은 미궁으로 남게 됐다(관련 기사 : '장자연 사건' 10년 만에 "조선일보" 못박았지만...).

중요한 건 나름 확인된 사안이 있더라도 이와 관련해 어느 누구도 수사권고 명단에 올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술접대와 관련해 김종승의 강요 또는 강요미수 혐의는 2016년 6월 20일로 공소시효가 지났고, 이외 협박과 관련된 사안 역시 2014년 7월 1일로 공소시효가 끝났다.

당시 이동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을 찾아가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일보와 한 번 붙자는 건가"라고 말한 것(특수협박 혐의)도 2016년 4월 22일로 공소시효가 끝났다.

주목을 받았던 성폭행 피해 의혹도 밝혀지지 않아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과거사위는 "구체적인 사실과 증거가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단순 강간,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라며 "현 시점에서 수사가 개시되기 위해서는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의 혐의가 인정돼야 하나 (중략)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 즉각 착수할 정도로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김종승이 2012년 11월 이종걸 의원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장자연 등을 폭행한 적이 없다", "(방용훈을) 나중에 누구인지 이야기 들었다", "(방정오를) 그날 우연히 본 것이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을 허위로 판단하고 검찰에 수사 개시를 권고했다(위증 혐의). 이번 발표의 유일한 수사권고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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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이날 과거사위는 경찰·검찰의 초동수사 및 사건처리의 문제점을 자세히 기록에 남겼다. 이는 곧 재조사의 한계점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이 김종승의 술접대 강요 의혹, 문건에 나오는 '조선일보 방사장' 및 '조선일보 방사장 아들'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 경찰의 부실한 압수수색 ▲ 디지털포렌식 결과와 압수된 휴대폰이 다름 ▲ 수사검사의 압수물 처리 지휘의 부적정성 ▲ 수사검사의 통화내역 기록편철 누락 ▲ 디지털 압수물 자료 편철의 누락 ▲ 인터넷 자료 현출의 누락 ▲ 유족의 녹음파일 및 녹취록 누락 ▲ 사망 직전 문자메시지 3통 삭제 의혹 등을 거론했다.

과거사위는 "위와 같이 통화내역, 디지털포렌식 자료, 압수물 등 객관적인 자료들이 모두 기록에 편철되어 있지 않은 이유가 석연치 않으나 자료가 누락된 것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외압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라며 "그러나 통화내역, 디지털포렌식 자료, 수첩 복사본 등이 모두 기록에 누락된 것은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이나 검사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이례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 주심 문준영 위원(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총 84명을 불러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했다, (과거사위 내부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최대한 심의했고 결과를 만든 것"이라면서도 "실물이 확인되지 않고 관련자들 진술이 엇갈린다는 점에서 리스트의 실체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론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강제수사권이 없는 조사단과 과거사위 한계도 있었다. 문 위원은 윤지오씨가 언급한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 등을 조사하려 했으나 이들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또 "여러 부분에서 중요한 자료가 누락됐다는 것을 확인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다들(당시 수사한 검사와 경찰) '그럴리가 없다'고 진술했다"라며 "의도나 고의성을 판단할 만한 구체적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 적용과 관련해) 한계가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과거사위의 실무기구인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이 사건을 담당한 김영희 변호사는 20일 오후 CBS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해 "조사팀 6명 중 4명이 외부인사이고 2명이 검사인데 중요 쟁점에서 의견이 갈렸는데 검사들 위주로 과거사위가 (결론을) 채택했다"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장자연 사건 조사팀의 조사결과에서 소수 의견에 불과했던 검사들의 의견을 과거사위가 이례적으로 결론으로 채택하면서 다수 의견은 완전히 묵살됐다"면서 성폭행 피해 의혹, 리스트 존재 여부 등과 관련해 추가 수사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자연 #검찰과거사위원회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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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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