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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장에 능한, '만능키 히어로'로 거듭난 김원봉이라니

[TV 리뷰] MBC 새 토요드라마 <이몽>

19.05.05 20:41최종업데이트19.05.0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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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 ⓒ mbc

 
4일 첫 방송을 탄 MBC 토요드라마 <이몽>은 실존 인물인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삼을 작품이다. 최근 김원봉에 대한 국가 유공자 대우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터라 드라마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 <이몽>의 연출을 맡은 윤상호 피디는 제작발표회 자리에서 "김원봉은 논란이 있겠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드라마는 김원봉이라는 실존 인물의 서사가 아니라,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의 이름과 상징성만 가져왔을 뿐, 허구가 가미되어 새로이 창조된 역할"이라고 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만, 정작 캐릭터는 창작에 의거했다는 <이몽> 속 김원봉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드라마를 연 건 '파랑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독립운동 세력에게 60만불의 성금이 답지하고, 한때 대한민국 국무원 비서장을 역임했던 김립은 이 자금을 운반하던 중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다가 오면직-노종균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 뒤 독립운동 자금은 사라지고 이를 찾기 위해 김구의 임시정부와 김원봉의 의열단은 애를 쓴다. 이후 김원봉은 그 자금과 관련된 '파랑새'라는 인물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정보를 얻게 된다. 

바로 그때 이영진(이요원 분)이 일하는 자혜병원에 한때 의전에서 함께 공부하던 김에스더가 찾아온다. 우연인 듯했지만 자혜병원 의사가 되었다는 그녀가 이영진은 그저 반갑기만 한데, 그런 반가움을 나눌 사이도 없이 총상 환자가 들이닥친다. 바로 마쓰우라(조선명 노정술, 허성태 분)에게 동지들의 정보를 넘기려 했던 박혁이 김원봉의 총을 맞고 실려온 것이다. 

마쓰우라는 죽어가는 박혁에게 정보를 빼내려고 하고 김원봉은 혹시나 박혁이 살아서 다시 동지들의 정보를 넘길까 우려하며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이영진은 그런 양쪽의 입장과 무관하게 환자를 지키려 한다. 이 세 사람의 입장은 생사를 오가는 박혁의 병실에서 첨예하게 맞부딪친다.

드라마와 역사, 그 행간이 낳은 독해의 어려움 
 

이몽 ⓒ mbc


드라마 속 김원봉의 모습은 단호하다. 김원봉은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지 앞에서 총구를 떨구는 김남옥(조복래 분)을 다그치며 변절자 처단을 마다하지 않고, 또 변절의 이유가 있지 않겠다는 남옥의 말문을 막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나라가 쪽팔리지도 않느냐"고 일갈한다. 그리고 그 단호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배달원으로, 심지어 경찰로 변신해 병원으로, 경찰서로 뛰어다니며 '히어로'로서 시청자 앞에 나타났다.

드라마는 단호한 독립운동가로서 김원봉이란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동지의 배신을 죽음으로서 응징하는 설정을 응용했다. 또 이를 실행하기 위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변신을 감행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실존 인물의 이름만 도용한 캐릭터라 하지만,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로서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첫 회에 배신한 동지를 처단하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것을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배신한 박혁의 입에서 '파랑새'와 '한국인 여의사'라는 정보가 흘러나왔다지만, 그것이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이 형사들이 진을 친 자혜병원과 심지어 일본 경찰의 중심부인 종로 경찰서를 홀홀단신 드나든다는 설정을 넣어야 할 정도인 건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파랑새'로 오해를 받았던 김에스더는 알고보니 '파랑새'가 아니었다. 지청천 부대에서 선생님과 의사로 활약했을 정도의 인물인데,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3.1운동 당시 제암리 사건의 명령자인 헌병 소장을 암살하기 위해 이영진이 있는 병원으로 찾아온 의사였다.

독립운동 세력의 파랑새로 암살 작전을 위해 잠임한 줄 알았던 인물이 알고보니 개인적 원한을 갖은 것이었다니... 지청전 부대에서 의사로 활약할 정도의 인물이 뜬금없이 나타나 개인적 원한으로 암살을 시도한다는 설정도 안이했지만, 더욱 안타까운 점은 극 중 지청전 부대에서 활약까지 한 독립운동가를 '개인적 모험주의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후 이어진 장면에서 이영진이 보인 행동 또한 개연성이 떨어진다. 극중 이영진은 기어코 김에스더의 작전을 무위로 돌리고 그녀를 적들의 총구에 희생되도록 만든다.

그 회차 마지막에 가서야 이영진의 행동이 김원봉과 다른 입장, 즉 무장 투쟁이나 암살 등과 다른 방식으로 일제에 맞서겠다는 '파랑새'로서의 그녀의 신념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드라마 속 설정은 김에스더를 구하려는 것이었겠지만, 적어도 그 상황은 김에스더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인, 이영진을 위기에 몰아넣기 위한 작위적 설정처럼 보였다. 이후 김원봉은 그녀의 복수를 대신 하겠다며 김에스더가 죽이려 했던 헌병 대장을 죽인다.  

안이한 서사, 독립 운동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
 

이몽 ⓒ mbc

 
드라마 <이몽>은 서로 다른 방식을 선택한 김원봉과 이영진, 두 사람의 독립 운동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싶은 듯 보인다. 하지만 '독립 운동 과정'이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서사적 기반이 설득력 있게 짜여져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분 노출이 전체 독립 운동에 끼치는 영향이 큰 상황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돌아온 독립운동가부터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숨은 독립운동가, 그리고 그녀의 복수를 대신하는 의열단이라니... 분장과 액션신은 화려하지만, 그 사이를 메워줘야 할 서사는 치밀하지 못하다.
 

도올이 본 한국 독립운동사 ⓒ 김용옥

 
위의 '도올이 본 독립 운동사 -밀양 아리랑'에 언급돼 있듯, 김원봉이 단장으로 있는 의열단의 무장 독립 투쟁 과정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희생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조국과 동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참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열혈지사를 규합하여 적국의 군주 이하 각 대관과 일체의 관공리를 암살해야 한다. 끊임없는 폭력만이 국가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마침내 조국 광복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성취의 시간은 많은 의열단원들의 체포와 죽음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런 동지들의 잇다른 죽음은 의열단장 김원봉으로 하여금 개인적 테러가 아닌 무장 투쟁으로서의 방향 전환을 감행하게 한다. 

물론 1920년대 의열단과 김원봉의 활약은 독보적이다. '일본 제국주의 당국자들과 친일파 지주, 자본가들에게는 최대 표적이었으며 20, 30대 젊은이들한테는 민족 해방의 상징적 존재'(님 웨일스가 만난 장지락이 본 김원봉)였다. 그렇기 떄문에 1920~1930년대의 상징적 독립 운동가 김원봉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몽>을 보다 보면, 과연 드라마 속 김원봉이 그 당시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그 상징적 존재의 모습일까, 반문하게 된다. 어설픈 서사에 멋진 액션을 채워놓은 드라마 속 김원봉. 과연 이 사람이 2019년에 되새겨 볼 그 김원봉일까.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위인은 그 시절 성공도 실패도 한계도 되새겨 볼 수 있는 그런 역사적 인물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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