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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뭉친 어벤져스가 보여준 것, '인류애' 향한 헌사였다

[리뷰] 영화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이 보여준 인간, 역사, 그리고 어벤져스

19.04.30 10:23최종업데이트19.04.3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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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시간이 181분, 약 세 시간이라기에 지레 걱정을 했다. 중간에 휴식 시간이라도 있어야 화장실이라도 다녀올 수 있지 않나? 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기우였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181분이라는 시간이 두 시간 정도의 길이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영화가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어벤져스를 이끌어 왔던 쟁쟁한 히어로들의 등장을 산만하지 않게 하나의 서사 안에 꾸려넣은 편집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이 빛을 발한 건, '마블'과 안소니 루소·조 루소 형제 감독이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는 점이다. 물량을 쏟아부은 화려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조차도 결국 승패를 가름하게 만드는 건 철학적 세계관과 그걸 풀어내는 서사에 기인한다는 걸.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의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자신이 '필연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타노스

블록버스터 영화는 많은 경우 외계인의 침공이라던가 지구를 뒤덮는 자연 재해, 지구에 대한 가공할 만한 종말론적인 위협으로 시작된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궁극의 위협을 가져온 건 바로 '타노스', 외계의 빌런(악당)이다.

타노스는 이전 마블의 다른 영화 속 쿠키 영상에서도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다가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우주의 힘이 담긴 인피니티 스톤 여섯 개를 담을 장갑, 인피니티 건틀렛을 차고 등장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외계 빌런은 뜻밖에도 스스로 '필연적인 존재(inevitable)'가 되고자 한다. 

타노스는 늘어나는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고정된 자원이 지구, 나아가 우주를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한다. 타노스는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면서까지도 손에 넣은 우주의 힘을 가진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으로 지구와 우주를 '구원'하겠다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그 결과 지구는 물론, 우주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 일을 마친 타노스는 자신이 행한 '최후의 심판'을 거스를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다치면서까지 인피니티 스톤을 파괴했다. 타노스는 그 모든 것이 끝난 뒤 마치 천지창조 뒤의 휴식을 취한 '신'처럼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긴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타노스가 없애버린 '인피니티 스톤'을 되찾기 위해 감히 지구의 한 줌도 안되는 어벤져스가 양자 영역을 동원해 모험을 떠난다. 어벤져스 일원은 다시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고자 한다. 

그리고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나온 타노스는 이번에는 다른 결정을 내린다. 라그나로크(신들의 몰락)처럼 아예 기억할 존재들을 싸그리 없애버리고 '천지창조'부터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타노스 자신이 '필연적인 존재'이기에 바로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어벤져스 

하지만 그 '필연적인 존재'의 '전지전능한 작업'에 반기를 든 무리들이 있다. 바로 '어벤져스'다. 과학 기술의 성과를 자신의 몸으로 증명한 '아이언맨',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토르, 과거의 냉동인간이 해동된 '캡틴 아메리카', 과학 실험으로 탄생한 돌연변이 '스파이더맨'과 헐크', 영성의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 등.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도출해낸 다양한 캐릭터의 히어로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타노스'에 대항했던 건 아니다. 

에너지원 큐브를 이용한 적의 등장으로 지구가 위험에 처하자 국제 평화 유지기구 쉴드(S.H.I.E.L.D)의 국장 닉 퓨리(샤뮤엘 L 잭슨 분)가 어벤져스 작전을 개시한다.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을 위시하여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분), 헐크(마크 러팔로 분),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 호크 아이(제레미 러너 분) 등을 호출하여 적들에 대항한 동맹을 결성한 것이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하지만 이들의 동맹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토니 스타크가 개발한 평화 유지 프로그램의 오류로 인공지능 '울트론'이 탄생한다. 울트론은 지구를 위험에 빠뜨린 적은 지금까지 지구 방위군으로 명망을 날렸던 어벤져스라면서, 오히려 이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라고 규정하며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후 지구를 구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지구 파괴와 인명의 피해를 낳는 어벤져스의 존재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어벤져스 팀 자체 내의 '철학적 이견'을 발생시키며 어벤져스의 갈등과 해산을 가져온다. 

이러한 갈등은 그저 '블록버스터 히어로'의 서사적 갈등을 넘어,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씨줄과 날줄이 되었던 인류사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인간 문명의 발전은 또 다른 파괴와 폐해를 낳았고, '발전'과 '수호'라는 이름으로 인류는 지구 곳곳에서 또 다른 '점령'과 '파괴'를 일삼아 왔다는 반성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어벤져스가 스스로가 만들어 낸 '괴물' 울트론과 맞서는 과정에서, 아이언맨은 파괴에 대한 반성으로 통제를 선택한다. 한편 아이언맨의 그룹에 맞서 캡틴 아메리카와 동료들은 통제를 벗어난 히어로들을 규합하고, 이들간의 갈등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정점에 달한다. 하지만 타노스에 의한 인류, 및 우주 절멸의 순간을 맞이하며 각자 동지들을 잃게 되면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다시 한번 힘을 모으게 된다. 

그리고 다시 <어벤져스 : 엔드게임>. 인류가 사라진 곳에 숲이 무성해지고 바다에는 고래가 뛰어놀게 됐지만, 인류는 자신들의 사라진 절반을 잊지 못한 채 상실의 나날을 이어간다.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결국 인간의 삶, 인류를 지탱하고 유지해 가는 건 관계, 그리고 그 관계들로 이루어졌던 역사였음을 보여준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은 타노스가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항하는 인류의 동맹을 보여준다. 다시 한번, 과학의 힘을 빌어 '전지전능한 파괴'에 도전하여 연대한 어벤져스의 모습을 말이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상실'에서 시작된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속 인물들은 상실의 아픔을 '필연'으로 수긍하는 대신, '양자 물리학'이라는 최첨단의 과학을 끌어안으며 과거를 복구하고자 한다. 비록 폐해를 남발하는 인류의 역사였지만, 필연적인 존재의 심판 대신 불완전한 인간의 역사를 스스로 선택하고자 한 것이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의 절정은 타노스 대 어벤져스의 전투 장면이다. 이 장면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적 물량과 함께 두 시간이 넘도록 최후의 전투를 위해 다져 넣은 동지적 인류애에 대한 서사 때문이다.

뒤늦게 얻은 딸을 두고 나선 아이언맨의 결자해지, 그리고 기꺼이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던진 블랙 위도우까지. 전우애를 바탕으로 결정적인 순간 그간의 이견을 불식하고 다시 결합한 어벤져스 팀, 그리고 그들의 헌신을 통해 맞이하는 결말. 이를 통한 감격과 함께 <어벤져스>는 대장정의 막을 화려하게 빛낸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의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결국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의 결론은 숱한 오류와 폐해에도 불구하고 '인류애'와 '인류 역사', 그리고 '인류 발전'에 대한 긍정적 헌사이다. 신의 심판 대신, 인간의 손으로 자신들이 벌려놓은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주체적 의지의 '반신론적' 표명이기도 하다. 물론 그 중심에, 미국 문명의 정점인 '아이언맨'과, 아메리카니즘의 대변자인 캡틴 아메리카가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어벤져스_엔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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