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처벌만 있고 치료는 없는 게 문제"

[인터뷰] 한국 마약 범죄학회 전경수 회장

등록 2019.04.29 18:06수정 2019.04.29 18:06
1
원고료로 응원
가수 겸 배우 박유천(33)씨가 26일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됐다. 박씨는 지난 2~3월 전 연인인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31)씨와 함께 3차례에 걸쳐 필로폰 1.5g을 구매해 이 가운데 일부를 5차례에 걸쳐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마약 단속에 힘입어 한때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마약 청정국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예인과 부유층의 마약 투약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청정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박유천이 마약을 산 방법(던지기 수법)만 보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마약사범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7일 20년 넘게 마약 수사관으로 일했던 한국마약범죄학회 전경수 회장에게 문제점과 대책을 물었다.
 

한국마약범죄학회 전경수 회장 ⓒ 시사포토뱅크

 
마약청정국 위기, 국가에 책임 있어

전경수 회장은 '악마의 백색 가루'라고 하는 필로폰에 대해 "염산 아세톤 활성탄 등으로 만든 화학물질이자 수많은 사망자를 낸 위험물질로 죽거나, 정신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다른 마약들과 확실히 구분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1970년대 일본에서 '히로뽕'이란 이름으로 필로폰이 부산에 처음 들어왔다. 부산시경에 있을 당시 일본 영사관으로부터 필로폰 단속 요구를 받고 부산 관내를 순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초량동 골목 전봇대에 '뽕' '왜기름 판매'라고 붙여놓은 광고지들을 발견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마약류는 필로폰이 80% 이상으로 그 중 북한산 필로폰이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전 회장은 "마약관리법이 통합되면서 국내 기술자들과 일본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중국이 마약사범을 사형까지 시키는 등 엄벌을 내리자 이들은 필로폰 제조를 북한으로 넘겼다"며 북한산 필로폰이 시중에 많아지게 된 이유를 말했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수출 목적으로 필로폰을 제조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연예인부터 재벌 3세에 이르기까지 마약 투여 혐의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 "김학의 사건, 고 장자연 사건 등 사회적 이슈를 덮기 위해 마약 사건을 터뜨렸다는 루머와는 연관 지을 수 없다"라며 "우리나라에 필로폰이 유입된 지 4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쉬쉬 하면서 덮었던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유흥업소 마약사건이 드러난 것은 잘된 일이다. 임진왜란 때 한양이 무너진 것과 같이 여태껏 대책 없이 덮고 묻었던 불씨가 끌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것"이라고 표현했다.


전 회장은 "이번 사건은 전적으로 국가에 책임이 있다"며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그는 "다른 단체에도 예산을 골고루 나눠줘 마약 중독 예방과 대책을 강구 했어야 하는데 한국마약협회에 모든 걸 일임했고, 보건복지부는 맨날 재중독 방지를 위한 정책만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마약 중독 치료 매뉴얼'조차 없는 게 현실 

전경수 회장은 "마약 중독에 빠지면 폐인이 돼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한번 중독되면 간과 뇌가 손상되어 결국 자살에 이른다. 현재 교도소, 정신병원 등에는 마약 중독자가 32만 명 정도 있다. 가둬놓는 게 능사가 아니다. 재활 시설을 이용하게 해야 한다"며 마약 중독자들에 대한 재활 치료를 주장했다. 

이어 "유럽 쪽의 필로폰은 양귀비 계열로 식물성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화학성 물질로 중독성이 강하고 폐해도 더 크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는 마약 처벌은 있으나 치료 매뉴얼은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지난 23년 동안 치료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12월에 자유한국당 정갑윤 의원이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서 곧 입법해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법으로나마 마약에 대한 방어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경수 회장은 마약류 가운데 특히 필로폰의 폐해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 시사포토뱅크


필로폰 등 마약중독 확산 방지 정책은

전경수 회장은 최근 정부에 보낸 '필로폰 등 마약중독 확산 방지 정책'이라는 제목의 청원서와 관련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현재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에 얼굴 없는 필로폰 판매 조직이 14개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 조직 산하에는 필로폰에 중독돼 재투약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판매원이 3천여 명 정도 된다. 이들 대부분은 필로폰을 팔아 생계유지를 하고 있다. 문제는 가족, 지인들에게 일반 약이라고 속여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범한 시민에게까지 필로폰이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학명 상으로는 필로폰이 메스암페타민이지만 의료용으로는 일절 사용되지 않는 독극물과 다름없다. 필로폰 판매상의 유혹에 넘어가 흡입이나 정맥주사를 하면 혈관, 간, 허파 등 중추신경계는 물론 전두엽, 해마 등 연수 기능 뇌세포가 손상되고 면역력이 상실된다. 필로폰에 한번 중독되면 치료할 수 없는 만큼 예방 정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전 회장은 "중독자가 치료되지 않으면 수요와 공급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그 수요에 의해 판매업을 파산시킬 수도 없다. 그런데 역대 정부는 중독자를 검거하는 데 급급해 명확한 치료나 재발, 재범 방지 정책은 뒷받침하지 못했다"며 "정부는 그동안 책임이 크지 않은 민간단체에 의존하면서 정부 산하 예방기구를 만들지 않았다. 국회와 정부 부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전경수 회장은 대통령 직속 범정부 마약대책기구의 신설을 제안했다. ⓒ 시사포토뱅크

 
마약중독 확산방지 위한 대통령 직속기구 구성해야

전 회장은 이날 마약중독의 재발 방지 대책도 설명했다. 그는 "필로폰 중독에 따른 만성질환에서 회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세로토닌과 대식세포라는 MP 세포(Macro Phage), 자연 살해 NK세포(Natural Killer) 등의 '면역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즉 "사람이 많이 모인 좁은 공간인 구금시설에서는 원천적으로 이와 같은 면역력이 생성되지 않는다"면서 "뇌세포 중 전두엽의 해마 연수 기능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현대의학으로는 완치가 보장되지 않는다. 면역 요법에 따른 치료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경수 회장은 "필로폰 등 마약중독자 치료기관으로 24개 정신병원에만 국고를 지원하는 치료보호법을 개정해 재범·재중독을 방지하고 있는 재활 목적 평생 교육기관에도 국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약사 중심의 특정 민간단체만 지원하고 있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조항을 개정해, 국가 예산을 정부에 등록된 마약퇴치 민간단체에도 공평하게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현재 부처별로 분산된 필로폰 등 마약 정책 수립과 집행기관을 통합시켜 마약중독 확산방지를 위한 대통령 직속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립니다.
#박유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