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하면 박근혜가 떠오른다"는 아홉살 아이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18] 세월호 5주기를 맞는 우리집 풍경

등록 2019.04.17 09:59수정 2019.04.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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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도 몰라?


4월 16일 아침.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물어봤을 나이지만 어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터라 출근하기 전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빴다.

그냥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시작된 하루.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인터넷을 통해 세월호 관련된 기사를 읽을 때마다 괜히 기분이 찝찝했다. 비록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세월호를 이야기하지 않을 만큼 내가 무뎌진 것은 아닐까.

게다가 왜 하필 오늘 정진석 의원과 차명진 전 의원은 세월호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막말을 해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지. 그들의 말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에게 오늘 아침 언급하지 못한 세월호를 다시금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 우리가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세월호를 잊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 전남도청

 
퇴근하는 길. 어린이집에서 7살 막내를 찾자마자 대뜸 물어봤다.

"복댕아. 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응. 세월호 5주기."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아?"
"응. 세월호가 침몰한 지 5년 됐대."
"어떻게 알았어?"
"오늘 선생님이 설명해줬어."
"그래서 기분이 어땠어?"
"너무 슬펐지."


다행이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어린이집에서 잊지 않고 아이들에게 세월호를 가르쳐준다니. 어느덧 세월호가 침몰한 지 어언 5년. 7살 된 아이가 2살 때의 기억을 간직할리는 만무하고, 이렇게 교육을 통해서라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빠, 세월호는 왜 침몰한 거야? 운전사가 배를 잘못 몰았어?"
"아니. 아직 우리도 그 이유를 몰라.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 조사하고 있어."
"진짜? 5년이나 지났는데 세월호가 아직도 왜 침몰했는지 몰라? 이상하다."
"그러게. 사람들도 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하고."
"내 생각에는 운전사가 운전 잘못한 것 같은데."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 5년이나 지났는데 우리는 왜 아직까지도 세월호가 무엇 때문에 침몰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걸까. 정권도 바뀌었고, 이제는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녀도 시비 거는 이 하나 없는데 왜 우리는 아직까지 세월호 이야기만 하면 마냥 억울하고 분하고 답답한 걸까? 왜 해군이 관련 자료를 은폐했다는 이야기를 이제야 할 수 있는 걸까? 아직 우리에게 시간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첫째와 둘째의 세월호

막내와 함께 집에 돌아오자 첫째와 둘째가 마당에서 동네 친구들과 열심히 놀고 있었다. 아빠가 오든 말든 열심히 노느라 바쁜 녀석들. 그런 둘째를 잡고 질문을 던졌다. 건성건성 대답하는 녀석.

"산들이, 너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오늘? 세월호 침몰한 날 아냐?"
"이야. 어떻게 알았어. 대단한데? 학교에서 배웠어?"
"아니. 달력에서 보고 알았어."

 

전태일기념관에서 받은 달력 ⓒ 이희동

 
아이가 이야기한 달력은 지난 주말 전태일 기념관을 가서 기념품으로 받아온 달력을 의미했다. 그 달력에는 우리가 여느 달력에서 볼 수 없는 온갖 기념일이 적혀 있었는데 오늘 4월 16일에는 '세월호 참사 기억의 날'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아니, 학교에서 선생님이 세월호에 대해서 이야기 안 하셨어?"
"응? 몰라. 안 하신 것 같은데."


작년 이날만 해도 세월호를 보면 하느님이 안 계신 것 같다며,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세월호가 침몰한 것 같다며 등골 서늘한 이야기를 하던 둘째였는데(8살 꼬마는 세월호의 '진짜' 침몰 이유를 알고 있다) 벌써 세월호가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진 건가. 그래, 두 살이나 네 살이나 기억이 안 나는 건 매한가지겠지.

동생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당황해하는 아빠가 안쓰러웠는지 첫째 까꿍이가 말을 걸어왔다. 녀석은 당시 6살. 그래도 동생보다는 세월호에 대해 분명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선생님이 사회 시간에 세월호 이야기 하셨어."
"그래? 뭐라고?
"그냥. 세월호 침몰한 지 5년 됐다고."
"그리고?"
"짧게 말씀하셨어. 그리고 오늘 아침에 화재가 난 프랑스의 노트르담 성당에 관해 말씀하셨어. 선생님도 가보셨다고."


어쨌든 다행이었다. 짧게나마 세월호를 언급했다고 하니 아이들은 그렇게 세월호를 떠올렸을 것이며, 다시금 기억의 창고에 세월호를 각인시켰을 것이다.

세월호와 박근혜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열심히 JTBC 뉴스를 보고 있었다. 역시나 손석희 앵커는 뉴스 1면으로 세월호 5주기를 다뤘고, 곧이어 꽤 많은 꼭지로 프랑스의 노트르담 성당 화제를 보도했다.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던 아이들이 제각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는 세월호 하면 뭐가 떠올라?"
"글쎄. 너희는 어떤데?"
"(셋째)나는 배가 생각나. 우리 예전에 가서 진짜 세월호도 봤잖아."
"(첫째)나도 그래. 그리고 배 안에 타고 있던 언니, 오빠들이 생각나. 너무 무서웠을 것 같아. 배 창문을 두드리던 사진도 있었잖아."


누나와 동생의 말을 듣고 있던 둘째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세월호 하면 박근혜가 떠올라."
"잉? 왜?"
"세월호 침몰했을 때 박근혜 관련된 기사만 나왔잖아."
"그건 탄핵 때 아냐? 그때 세월호 7시간 관련해서 계속 박근혜 보도가 나왔으니까."
"맞아. 세월호 하면 박근혜가 생각나고, 또 탄핵도 생각나. 우리가 광화문 나가서 촛불도 들었잖아. 세월호가 가라앉은 날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광화문에서 본 고래는 기억나."

 

광화문에서 마주친 세월호 ⓒ 이희동

 
둘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찡해졌다. 그래, 어쩌면 100년 뒤 역사가들은 세월호 침몰을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세월호 이후 사람들은 달라졌고,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탄핵도 세월호가 당긴 불씨에서부터 시작됐고, 만약 남북평화가 찾아온다면 그 역시 세월호에게 진 빚이 크다. 누가 뭐래도 세월호는 시대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 세월호를 끝까지 잊지 않는 일이다.

세월호 5주기. 고인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며, 살아남은 자로서 그날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기까지 세월호를 놓지 않을 것임을 다짐해본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육아일기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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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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