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 끼고 죽은 아이들 수습하는데... 해군 의심스러웠다"

[여전한, 진상규명 ③] 후유증과 트라우마 시달리는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

등록 2019.04.15 14:05수정 2019.04.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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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구조할 때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한(쪽) 팔은 애들 겨드랑이에 끼우고, 다른 한(쪽) 팔로 줄(공기 공급선)을 잡아요. 그리고 애들과 포옹하는 자세로 (헤엄쳐) 올라오는 거지요."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수습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들. 다큐 <로그북> 한 장면. ⓒ 복미디어

   
잠수사 A(50)씨에겐 응어리가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끔찍한 기억은 5년째 그를 괴롭힌다. 머릿속을 맴돌며, 그를 흔든다. 지난 2014년 4~7월,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애들 구조할 때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한(쪽) 팔은 애들 겨드랑이에 끼우고, 다른 한(쪽) 팔로 줄(공기 공급선)을 잡아요. 그리고 애들과 포옹하는 자세로 (헤엄쳐) 올라오는 거지요. 눈 뜬 아이, 감은 아이. 입 벌린 아이, 다문 아이... 여자 아이들은 머리카락이 길어서 눈앞을 가릴 때도 있어요. 뭔 말인 줄 알겠어요? 애들 눈 보면서 구조한다고요. 뭘 모르면서 구조를 쉽게 말한다니까요."

A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수습 작업을 맡았던 민간 잠수사다. '구조를 쉽게 말한다'고 한 건, 가슴에 상처가 있어서다. 박근혜 정부는 목숨을 걸고 깜깜한 바다 속으로 들어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수습했던 민간 잠수사에게 죄를 씌웠다.

2014년 검찰은 민간 잠수사 공우영(63)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희생자 수습책임을 맡았던 해경이 아니라 공씨에게 '동료 잠수사가 현장에서 사망'한 책임을 물었다. 박근혜 정부는 스스로 구조 실패를 인정한 적도 없고, 책임자를 처벌하지도 않았다.

4년 만에 공씨는 혐의를 벗었다. 지난해 1월 대법원은 공씨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하지만 세상의 온갖 눈총을 한 몸에 받은 뒤였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A씨는 한국으로 돌아온 걸 후회했다.

"구조 쉽게 말하지 마라"

지난 4일 인천시 주안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A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수습 작업에 참여하려고 5년 전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사연을 들려줬다.


"쿠웨이트에 있는 대기업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귀국했어요. 선배가 전화를 걸어와 세월호가 침몰했는데, (희생자) 수습 작업을 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집사람과 주변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입국했어요. 당시 우리 아이들도 고2, 고3이었거든요. 깜깜한 바다 속에 있는 아이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을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한국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진도로 갔죠."

A씨가 도착해보니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희생자 수습에 필요한 장비와 시설은 부족했다. 보통 하루에 1번 잠수하는 게 원칙인데, 잠수사가 부족해 5번씩 바다에 뛰어들기도 했다. 목숨을 건 사투였다.

"(세월호) 선체에 들어가면, 앞이 안 보여 수색이 힘들어요. 부유물이 많아서 한 발짝 나아가기도 어렵죠. 선실을 수색하다가 까닥 잘못하면,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길을 잃어 돌아올 수 없어요. 잠수를 한 시간 넘게 하거나 자주 (물속에) 들어가도 잠수병에 걸릴 수 있어 위험하죠."

수습 작업만 힘든 게 아니었다. 진짜 민간 잠수사들을 괴롭힌 건 따로 있었다. 가슴에 드는 병이었다. 희생자 수습 작업에 참여했던 또 다른 민간 잠수사 황병주(59)씨도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한 번은 희생자 수습을 하는데, (선체에) 아이들 열 명 남짓이 서로 팔짱을 끼고 있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감정이 너무 북받쳐 올랐어요. 정신을 차리고 한 명씩 팔짱을 풀어서 수습하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수습에 나서 민간 잠수사가 '당신은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희망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다. ⓒ 복미디어

 
"녹화 안 되고 음성 안 나오는 해군 영상? 최첨단 장비인데..."

민간 잠수사들이 희생자를 수습하는 동안 해군은 기계장치를 수거했다. 2014년 6월 22일 세월호 안에 있던 CCTV DVR(디지털영상 저장장치)을 들고 나와 바지선에 있던 해경에 전달했다.

이날 해군의 DVR 수거작업은 매우 '수상했다'. 지난달 28일 '가습기살균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해군이 수거한 DVR 장치에 대해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했다. 결정적으로, DVR은 한 개인데, 해경의 인수인계서가 두 장이었다. 특조위는 해군이 수중에서 수거했던 DVR과 바지선 마대자루에 있던 DVR은 다른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민간 잠수사 A씨는 해군이 수중에서 DVR을 수거하는 장면이 없다는 특조위 발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본 해군 잠수장비는 '최첨단 고가장비'였다.

"해군 (수습 작업에 사용했던) 잠수 장비 '슈퍼라이트-27(Superlite-27)'은 1000만 원이 넘는 비싼 (수중)장비예요. (일종의) 헬멧인데 영상 촬영이 가능하고 통신 장비도 딸려있죠. 보통 잠수를 하기 전에,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해요. 그리고 물속에 들어가는데, 이때부터 리코딩(녹화, 녹음)을 하죠.

수색도 잠수사가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물 밖에 있는 슈퍼바이저(수색팀장)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죠. 슈퍼바이저가 모니터로 수중 수습 장면을 확인하면서 잠수사에게 임무를 내려요. 그러니 잠수사가 DVR을 발견하고 분리해 수거했다면, 슈퍼바이저와 대화한 내용과 전 과정을 담은 녹화, 녹음 파일이 있어야 하는 게 일반적이죠.

(특조위에 제출한) 해군 영상에 음성이 없고 녹화도 제대로 안 됐다고 하는데, 이건 굉장히 드문 일이에요. 민간 잠수사들이 수습 작업을 하면서 사용한 잠수장비는 해군 것보다 싼 것인데도 (수습 작업을 하면서)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어요. 교신이 제대로 됐거든요."


A씨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황병주씨도 "영상을 편집한 데다 음성도 없으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특조위의 DVR 조작 의혹의 빌미를 준 것은 해군이다"라고 말했다.

생업 팽개치고 구조작업에 뛰어들었으나

해군은 수중 수습 영상을 편집했으나 민간 잠수사는 종이에 기록을 남겼다. 잠수를 하면 습관처럼 하는 일이었다. 잠수사들은 목숨이 오가는 절박한 순간과 감정이 널뛰는 끔찍한 현장에서 겪은 일을 '잠수일기'로 썼다.

"(2014년) 4월 26. 잠을 좀 자야 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오늘 수습한 희생자의 얼굴과 눈동자, 차디찬 하얀 손과 발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어져 환영으로 비추어진다.

연령을 말하자면 구조수색에 참여했던 잠수사들 중에서도 나의 나이가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침몰선 현장이라든지 이와 비슷한 장비를 갖추고 많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 세월호 침몰 현장에 준비된 장비에는 별문제 없이 적응을 할 수 있었다."

민간 잠수사들과 해군은 293명의 희생자를 수습했다. 하지만 2014년 7월 10일, 민간 잠수사들은 현장에서 쫓겨났다. 희생자 중 11명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A씨에 따르면, 해경은 휴대폰 문자로 이들에게 '수색 중단'을 통보했단다. 희생자 수습 작업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민간 잠수사들은 진도 앞바다를 떠나야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수습 작업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들이 썼던 '로그북' ⓒ 복진오

 
이런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는 잘 기록되지 않았다. 희생자 수습 작업 당시 반짝 주목받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

다큐영화 <로그북>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로그북(Log Book)'은 잠수사들이 잠수작업을 기록하는 '일일보고서' 같은 것이다. 영화 <로그북>의 복진오 감독은 희생자 수습 작업 현장에서 민간 잠수사들과 먹고 자며 동고동락했다.

"처음부터 영화를 생각하고 (영상을) 찍은 게 아니에요. (2014년) 당시에 희생자 수습 상황을 유가족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했어요. 하지만 기록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죠. 그래서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희생자 수습작업 현장인 바지선에) 탔죠. 정말 운명처럼 바지선을 타게 됐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되네요."

복 감독은 민간 잠수사들이 희생자들을 수습하면서 괴로워하던 모습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잠수사들에게 (희생자) 유가족 생각해서 열심히 수습 작업하라고 만날 타박했지만 사실 마음이 아팠어요. 아이들을 뭍으로 수습한 날이면, (잠수사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어요. 힘들어 하면서도 들키지 않고 숨기려 애쓰는 게 더 가슴이 아렸어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년이 됐다. 하지만 황병주씨와 A씨는 그날 이후 매년 4월이 되면, 지독한 기억에 시달린다. 희생자를 수습하던 현장이 자꾸 되살아나 잠 못드는 날이 많다고 한다. 몸도 망가졌다. 민간 잠수사들은 골괴사(뼈세포나 조직이 죽는 질환) 등 후유증을 앓고 있다. 생업을 포기하고 수습 작업에 나섰던 대가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A씨는 현재 "잘 나가던" 일자리를 잃고,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황병주씨도 변변한 돈벌이 없이 "골괴사로 병원 치료 중"이라고 했다.
 

민간 잠수사들은 골괴사(뼈세포나 조직이 죽는 질환) 등 후유증을 앓고 있다. 생업을 포기하고 수습 작업에 나섰던 대가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 복미디어

 
치료를 도와줄 법률은 계류중이다. 민간 잠수사들을 지원하는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1년 넘게 국회에 묶여 있다. 이 법률안은 세월호 희생자 수색에 나선 뒤 트라우마와 잠수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고 김관홍 잠수사의 이름 따서 '고 김관홍법'으로 불린다.

지난해 3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법안을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회의록에 기록된 내용이다.
 
"잠수사까지. 잠수사는 이미 다른 법률에 의해 가지고 지원을 열어 줬거든요. 그다음에 잠수사 사망 및 부상은 세월호 침몰하고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일종의 산업재해와 관련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확대해서 지원해 주는 것이 맞느냐는 부분에 대해서 (상정된 안건) 37항은 저는 (법안심사제)2소위로 넘겨야 되겠다는 생각이고요."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 358회 제1차(2018년 3월 29일) 회의록 중
#세월호참사 #민간잠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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