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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8세 소녀... 마음이 착잡했다

[넘버링 무비 137] 영화 <엔젤 페이스> 눈치 빠른 아이들, 왜 안타깝냐면...

19.03.28 15:10최종업데이트19.03.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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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엔젤페이스> 메인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01.

영화의 시작과 함께 술에 취한 듯한 마를렌(마리옹 꼬띠아르)은 딸이 잠들어 있는 침대로 쓰러져 들어오며 한껏 풀린 발음으로 "엄마 사랑해?" 하고 묻는다.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잠에서 깨어나는 엘리(앨라인 악소이-에테익스). 엄마가 어린 자녀에게 사랑하느냐고,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묻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애정 표현이지만 엘리를 향한 마를렌의 말투가 지닌 온도는 예사롭지가 않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믿음이 기저에 깔린, 그 확신을 다시 한번 꺼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공허하게 비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채우기 위한 대답을 바라는 듯한 느낌이다.

영화 <엔젤 페이스>는 한창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시기의 딸을 제대로 양육할 능력도 의지도 없이 술과 파티, 남자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미숙하고 나약한 엄마의 모습과 홀로 방치된 채 자신을 학대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이를 통해 부모가 가져야 할 아동에 대한 엄중한 책임과 자격은 물론,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 고통과 절박한 감정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02.

의존과 애정결핍, 불안감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는 절실한 필요에 의해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바네사 필류 감독은 이 작품 속에 다양한 인물의 감정을 다중 레이어 형식으로 겹쳐 표현하고자 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런 판단 기준도 없는 어린 소녀의 감정적 방치와 외로움, 그리고 그녀를 의존적으로 만드는 모든 감정들에 대한 것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기존의 다양한 작품들에서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학대를 겪거나 방치된 채로 무력한 삶을 이어오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모습은 자주 그려져 왔다. <아무도 모른다>(2005)의 아키라가,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의 무니가, 또 <가버나움>(2019)의 자인의 모습이 그랬다. 치열한 노력의 보상적 대가로만 사랑을, 그것도 완전한 것이 아닌 부분적인 사랑을 획득할 수 있으며, 방치된 채로 자랄 수밖에 없는 아이들. 어른들의 눈치가 뻔한 그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작품들은 언제나 마음을 쓰리고 아프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감독의 의도대로일까, 이 작품 속 엘리도 마찬가지다.
 

영화 <엔젤페이스>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03.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드러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영화 <미쓰백>의 지은(김시아)처럼 학대를 당하거나 방치되는 상황을 극 속에서 직접 보여주거나, 그들이 평소에 보여주는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식이다. 이 작품 <엔젤 페이스>는 후자의 방식으로 엘리의 성장환경을 전달하고자 하는 면이 더 두드러진다. 이는 설정 자체에서부터 영화 속 엘리에게 직접적인 학대나 폭력이 가해진 상황이라기보다 마땅히 주어졌어야 할 사랑을 제때 받지 못한 상황에서의 잘못된 학습 및 감정적 고립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표현 방식은 다시 두 가지 형식, 엘리가 엄마의 눈을 피해 엄마의 모습을 따라 하고자 하는 모습과 홀로 방치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이 버려지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부분으로 나뉘게 된다. 결혼을 앞둔 마를렌이 티아라를 벗자 이내 곧 따라 벗는 모습이라던가,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니 그것 또한 따라 하는 모습들이 전자에 속하고, 엄마가 집을 비운 동안 보내온 것처럼 냉장고 문 한가득 붙여놓은 엽서와 같은 것들은 후자에 속한다. 집 근처에서 일어난 50대 남성의 자살 사고를 엄마의 것이라며 부정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도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가깝게 느끼는, 가장 오랫동안 시간을 함께 보내는 어른들의 말투와 행동, 습관을 금세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엘리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04.

그중에서도 상당수의 장면들은 엘리가 마음속에 갖고 있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활용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신을 양육하는 사람의 불안한 상태와 그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언제나 술을 찾던 모습만 지켜봐 온 아이가 정작 자신이 불안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다. 그래도 자신이 엄마라는 자각이 최소한의 부스러기만큼은 있었던 모양인지, 데려간 클럽에서 엘리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자 마를렌은 화를 낸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그전부터 엘리의 눈이 마를렌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상적인 보육 환경이 엘리에게 제공되지 못했다는 것이며, 그다음은 그녀가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들의 세상에 속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엄마를 따라다니며 만나게 되는 어른들의 세상에서도, 자신이 원래 속해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세상 속에서도, 정작 본인은 어디에도 어울리고 있지 못하면서 말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마를렌이 엘리가 원하는 정도의 관심과 사랑을 채워줄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중간중간에 표현되는 엘리에 대한 마들렌의 관심은 정확히 말하자면 엘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마를렌 본인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는 점은 클럽에서 만난 남자를 따라가기 위해 엘리를 혼자 택시에 태워 집에 보내려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엘리는 혼자 집에 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만, 사실 그 몸부림은 혼자 집에 가지 않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엄마의 사랑을 되찾겠다는 뜻에 더 가깝다. 이미 엘리에게 그 낯선 아저씨는 엄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다. 횟수로만 따져도 벌써 최소한 6번째. – 영화의 초반부에서 마를렌은 5번째 결혼을 망치고 만다. – 그때마다 자신이 아닌 낯선 남자를 택했을 엄마의 모습과 그 모습을 홀로 바라만 봐야 했을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 봐라. 그때마다 엘리가 느껴왔을 서늘한 감정들,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그녀의 마음속에 쌓이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 <엔젤페이스>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05.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만나는 엘리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단순히 지금 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영화 바깥의 시간들 속에서 천천히 퇴적되어온 것임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홀로 남은 엘리가 길에서 만난 아저씨 훌리오(알반 레누아)의 작은 호의에도 세상 모두를 얻은 것처럼 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한 번도 채워지지 못한 욕구로 인한 극심한 갈증과도 같으며, 그렇게 고장 나버린 스스로를 본능적으로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믿으며 자신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강하게 끌어안으려고 하는 모습도.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의 후반부에 나타나는 훌리오는 엘리의 곁을 떠난 마들렌의 빈자리를 대신해 줄 어른이라기보다는 설익은 사랑을 맛 보여줌으로써 엘리의 처지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드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엘리는 훌리오가 자신이 바라고 바라 왔던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라기보다 어느 한쪽의 기대에 더 가까운 것이니 말이다. 훌리오가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라고 하자, 엘리는 엄마가 자신을 떠났을 때보다 더 격앙된 모습으로 그를 원망하고 비난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06.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엘리의 인어공주 연극은 영화 전체를 갈무리함과 동시에 결말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엘리가 연극에서 연기하게 된 인어공주와 훌리오가 처음 뛰어내렸다던 다이빙 장소가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자신의 영혼까지 마녀에게 저당 잡히며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다를 향해 다시 뛰어든 결과가 무엇이었나? 그리고 그녀의 마음은 무엇이었나? 물거품, 그것이 바로 이 모든 시간을 혼자 견뎌온 엘리의 마음과도 같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웃 나라 공주와 결혼한 왕자의 행복을 바라며 동화 속 인어공주의 마음처럼 엘리 또한 엄마의 행복만을 바라며 바다 밑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엄마가 찾고자 하는 행복에 자신이 방해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어차피 이 세상에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연극이 펼쳐지고 있는 무대 위에 올라보지도 못한 엘리와 낙심한 채로 바닷속으로 몸을 던진 인어공주의 모습은 그렇게 오버랩된다.
 

영화 <엔젤페이스>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07.

"늘 혼자인 게 무섭지 않아요?"

집으로 다시 돌아온 엄마 마를렌은 사라진 딸을 찾는 동안 이런 말을 한다. 앞서 제시된 여러 정황들로 인해 이 대사는 사라진 엘리가 걱정된다는 뜻이라기보다 그녀가 사라지면 혼자가 될 자신이 견딜 수 없기에 찾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멀리 떨어져 이야기를 전해 듣는 관객이 이 대사를 이렇게 해석할 정도면, 가장 가까이에서 일상으로부터 그런 마음들을 전해 받고 있었을 엘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지나온 걸까?

영화의 타이틀인 엔젤 페이스는, 원제로도 GUEULE D'ANGE로 표기되며 동일한 뜻을 갖는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문득 이 표현 자체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영화 속에서 내내 그려지던 엘리의 모습을 생각할 때보다는 제대로 보살피지도 못한 채로 아이의 웃는 모습만 찾고 싶어 하던 마를렌을 떠올릴 때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는 아닐까. 어쩌면 이 영화는 애초에 처음부터 엘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이마에 사랑스럽게 키스하는 모습의 포스터와는 달리.
영화 무비 엔젤페이스 마리옹꼬띠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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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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