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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망언한 나경원에게 이 사람을 보냅니다

[주장] 영화 <항거> 속 그들을 기억하며...

19.03.21 10:32최종업데이트19.03.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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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봉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1백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명의 한국인으로서 뜨거운 슬픔과 차가운 분노를 느꼈다. 제목을 보면 유관순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기자는 상영 시간 내내 유관순을 생각했다. 감옥에서 고통받는 유관순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일제의 억압에 분노했다. 그러나 상영 시간이 끝난 후에 든 생각은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떠올랐다. 나는 이들을 '기억되지 못하는 유관순들'이라 부르고 싶다. 그래서 유관순과 우리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수많은 유관순들에게 2019년을 사는 한 시민으로서 1919년의 그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보고 싶다.

<친애하는 유관순 그리고 기억되지 못했던 '수많은 유관순'에게 보내는 편지>

여러분의 희생으로 인해 이 나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뿐입니까. 당신들의 만세가 전 국토를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1945년에는 독립을 맞이하고 이 땅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들어섰습니다.

어느덧 그 역사는 100년이 되어 올해 10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신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후손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매년 3.1운동을 기념하고 당신들의 희생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기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세를 외쳤던 사람들을 다 기억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유관순이라는 이름 하나만을 기억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제가 이제야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지금도 유관순이라는 이름 하나만을 떠올리며 나는 애국심이 가득한 청년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일제로부터 독립된 후에는 반민특위가 조직되면서 그동안 친일반민족행위를 일삼은 자들을 단죄하나 싶었습니다. 실제로 친일파들을 체포해서 재판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대통령이 친일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심판하려는 사람들을 탄압하여 해산시켰습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직접 보셨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자 일제강점기 때와 같이 독립한 조국에서도 친일파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습니다. 떵떵거리면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여러분 같은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손들인데 말입니다.

친일 청산은 하지 못했지만 우리 국민의 피나는 노력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10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고 국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가 되었죠. 작년에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3만 달러가 뭐냐고요? 선진국의 지표가 되는 기준이랍니다.

친일 청산의 아쉬움이 있지만 전 우리나라가 살기 정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역사 수업 시간에 독립운동 역사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고 그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으니 독립운동가들이 저승에서나마 편히 눈을 감으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민특위가 친일파를 직접 처단하진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사건이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공당의 원내대표가, 심지어 대한민국 제1야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반민특위가 국민들을 분열시켰다고 비판했습니다. 국민들을 분열시킨 것은 친일파인데 말입니다. 저는 이를 통해 2019년의 대한민국도 아직 친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2019년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당신들을 기억하고 알리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이 나라를 만든 주역임을 잊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겁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말입니다. 

저의 이 작은 결심이 여러분에게 조금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부끄러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금 계신 그곳에서는 싸워야 할 일이 없으시길 바라면서 당신들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오.

- 2019년을 사는 한 청년이 100년전 여러분들에게.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의 봄에


 
 

영화 <항거>에 출연한 배우들.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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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역사문화학을 전공한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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