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는 알지만, 젤다는 처음인 당신에게

[서평] 유명 작가의 아내가 아닌 작가 젤다의 글 모음집 '젤다'

등록 2019.03.12 20:53수정 2019.03.1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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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문학사의 빛나는 그 이름 'F. 스콧 피츠제럴드', 읽지는 않았어도 그 이름 들어보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인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미국의 황금기인 1920년 이른바 '재즈시대' 상징이다. 사교적이고 소비 지향적이며 주체적인 여성들, 즉 '플래퍼'를 다룬 소설로 뉴욕의 유명 인사가 된 스콧 피츠제럴드, 그에겐 뮤즈이자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가 있었다.


잘 나가는 집안의 말괄량이 젤다는 1920년대 황금기를 스콧과 함께 흥청망정 보낸다. 뉴욕은 물론 유럽을 수없이 오가며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스콧은 당대 재즈시대의 상징인 젤다를 거의 있는 그대로 소설에 옮겼고, 창작자로서 그 자신 또한 재즈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문제는, 젤다를 말하는 또 다른 수식어다. 주지한 것처럼 스콧은 재즈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뮤즈이자 작가이기도 했던 젤다는, 위대한 작가의 재능을 탕진케 한 정신이상자 아내로 불렸다.

대공황 이후 1930년대로 접어들자 스콧의 소설은 저물고 젤다는 정신착락을 일으킨다. 그들은 별거 생활에 들어갔고 스콧은 1940년, 젤다는 1948년 세상을 떠난다. 스콧의 소설은 이후 재평가되어 지금의 위치에 오른 반면, 젤다는 1970년 평전이 발표되어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뒤늦게 재평가되었지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보이듯 여전히 부정적인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
 

<젤다> 표지. ⓒ 에이치비프레스

젤다도 1920년대 당시 글을 썼다. 젤다 이름의 단독으로도 썼고, 스콧과 공저로도 썼다. 문제는, 스콧 단독 저자로 표기가 되어 있는 수많은 글들이 스콧과 젤다의 공저라는 점이다. 지난 2월 27일 개봉한 영화 <더 와이프>가 겹쳐진다.

명배우 글렌 클로즈가 분한 '조안'은 작가 남편의 성공을 위해 평생을 바쳐 '킹메이커'로서 결국 그로 하여금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다. 그런데 이후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지는데... 아마도 스콧, 젤다 부부 사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국내 최초로 '젤다'의 이름으로 온전히 소개되는 그녀의 소설과 산문 모음집 <젤다>(에이치비프레스)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아주 필요한 책이다. <젤다>라는 제목의 외서를 번역한 게 아닌, 엮은이이자 옮긴이 이재경씨가 손수 추린 기획 창작물이라 하겠다.


지난 3월 8일이 '여성의 날'이기도 했던 바,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젤다를 예술가로 재평가하는 작업은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젤다는 장편소설 1편과 희곡 1편과 함께 10여 편의 단편소설과 여러 산문들을 남겼는데, 이 책에는 단편소설 5편과 산문 9편이 담겼다. 재능과 경력을 추구한 여성들의 좌절을 이야기한 단편들은 자전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그녀 자신이 좌절로 인해 정신착란을 일으켜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지 않았나.

산문들은 가지각색이다. 서평과 당대 비평 형식의 글을 비롯해 결혼, 연애, 여성, 계층을 논한 글, 스콧과의 자전적 글도 있다. 내용과 메시지도 중요할 테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이 책에 실린 산문 9편 중 태반이 스콧과 젤다의 공저 또는 스콧 단독 저자로 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는 젤다가 단독으로 지었음에도 말이다.

젤다는 1922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잡지에 단편소설과 산문들을 기고했다. 그녀는 작가였다. 20년대 후반엔 뒤늦게 시작한 발레임에도 발레단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을 정도의 수준이었고, 30년대 중반엔 회화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그녀는 예술가였다.

그런 그녀를 소콧은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여자가 어디 감히'라는 생각이 그의 정신을 지배했을 것이 분명하다. 젤다는 다방면의 재능과 기질을 타고났음에도, 스콧의 압력과 시대의 핍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니, 이길 수 없었다. 뒤늦게 우리를 찾아온 '젤다'라는 이름과 '젤다'의 이름으로 보는 글과 '젤다'라는 이름의 책은, 그래서 반갑다.

그녀의 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글은 여러 모로 편협하고 단편적이다. 특히, 산문 아닌 소설에서 두드러지는데 글이 향하는 중심은 있을지언정 정작 글의 중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자체로는 쉽게 잊힐 파편들이다.

하지만, 그녀만의 스타일이 있다. 화려한 기교 대신 대상을 향한 정성 어린 묘사가 있고, 풍부한 위트와 함께 날카롭게 번뜩이는 반어와 풍자의 기법이 엿보인다. 저자 본인 그 자체와 본인의 삶, 그리고 본인으로 대변되는 당대 '플래퍼'를 이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힘들 것이다.
 
'극장 매니저들에게는 섹시함으로, 안목 있는 관객에게는 육체적 흡인력으로, 공연계의 저속한 방면에 널리 퍼져 있는 적들 사이에서는 재능 부족으로 통하는 특징이었다.'(소설 '재능 있는 여자' 중에서)

'그녀는 추파를 던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추파를 던졌고, 몸매가 좋았기에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체면이 필요 없었기에 얼굴을 분과 연지로 덮었고, 본인이 따분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따분해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을 늘 하고 싶었던 일과 의식적으로 일치시켰다.'(산문 '플래퍼 예찬' 중에서)

그녀의 다재다능함 덕분에 스콧은 그녀와 공저로 글을 짓고, 그녀의 이야기를 가져오고, 그녀의 모습을 묘사했다. 하지만 스콧은 그녀의 재능을 높이 사 인생과 예술에서 동반자로 함께 한 게 아니라, 분노하고 무시하고 깎아내릴 뿐이었다. 젤다는 그런 모습을 두고, '피츠제럴드 씨는 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산문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 중에서)라며 날카롭게 번뜩이는 글을 서평을 썼다.

결코 그녀를 영미 문학사에 빛나는 거장 아니, 재능이라고도 두둔할 이유도 마음도 없다. 이 책을 통해 젤다를 소개하는 엮은이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건 '젤다'라는 사람, 그 자체와 삶이다.

스콧이 스콧이라는 사람과 삶이 아닌 소설로 재평가 받았듯, 젤다는 젤다라는 사람과 삶이 재평가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젤다 -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과 산문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지음, 이재경 옮김,
에이치비프레스, 2019


#젤다 #스콧 피츠제럴드 #재즈시대 #페미니즘 #플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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