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조 드는데 검증 안 한다? 정말 '지역 균형발전'일까

[주장]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꼭 짚어야 할 것들

등록 2019.01.30 17:14수정 2019.01.3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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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면제 대상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9일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면서 수많은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예비 예비타당성조사(아래 예타) 면제를 발표했다. 예타 면제 사업은 총 23개로 총 24조1000억 원 규모다. 대부분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으로,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도로·철도 인프라 확충 사업 부문이 5조7000억 원, 광역 교통·물류망 구축 사업이 10조9000억 원, 생활 인프라 건설 사업이 총 4조 원 규모다(총 20조6000억 원).

이를 계기로 예타 면제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타는 국가재정법 제38조(예비타당성조사)에 따라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신규 대규모사업의 경제적·사회적 편익을 평가해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1999년에 도입된 예산 낭비 방지 장치다.

예타 면제 논쟁의 시작은 이명박(MB) 정부 때였다. MB정부는 국회의 감시와 견제를 회피하고 재빠르게 4대강 사업을 예타 면제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예타 면제'의 첫걸음, MB 정부가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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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7일 오후 경기도 여주 남한강 이포대교 인근 이포보 설치 예정지에서 '한강살리기 희망 선포식'이 열린 가운데 '4대강 죽이기 저지 및 생명의 강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이 '4대강 사업 멈춰!'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 ⓒ 유성호

 
MB 정부는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사업에 대한 예타를 하지 않고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2009년 3월 25일 국가재정법 시행령에서 규정된 예타 면제 사업의 하나인 "재해복구 지원 등 사업추진이 시급한" 사업을 "재해예방·복구 지원, 시설 안전성 확보, 보건·식품 안전 문제 등으로 시급한" 사업으로 개정했다. 이때부터 논쟁이 시작됐다.

이 개정에 부합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MB 정부는 4대강 사업이 재해(수해, 가뭄피해 등) 예방사업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실제 내용과는 반대로 말이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하단 참조).

MB 정부의 시행령 개정과 함께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 등 많은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규정도 신설됐다. MB 정부가 거의 모든 국가정책 사업을 예타 없이 강행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후 소위 '선심성 예산'이 들어가는 많은 사업들이 손쉽게 진행돼 왔다.

'선심성 예산 쓰기'를 이용한 행정부-국회
  
이때 행정부가 국회를 무시하고 법의 취지에 어긋난 정책을 시행령 개정만으로 쉽게 수립하고 집행하는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회는 이를 개선하는 작업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런데 국회는 시행령이 규정한 예타 면제 사업들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 없이 시행령 규정을 국가재정법 조항으로 그대로 편입함으로써 행정부의 자의적 권한을 더욱 강화해 줬다.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 권한을 국회 스스로 내려놓고 행정부에 예속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선심성 예산 사업을 쉽게 하고 싶은 국회의원의 속내와 행정부 편의주의가 이해타산이 맞아 나온 결과물이다. 이런 편법보다는 시행령에서 면제가 가능한 사업을 나열하고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면제 사업의 적절성에 대해 국회에 동의를 구하는 방향으로 개정됐어야 삼권분립의 목적에 맞는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가 완성됐을 것이다.

과거 짧은 시간에 가시적 경제성장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정책이 서울 중심으로 집중돼 수립·집행됐다. 그 탓에 나라의 경제·문화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됐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의식이 크다. 그 결과, 수도권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는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 따라서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사업이라는 '구실'만으로도 선심성 예산을 쓰기 좋아진 사회 분위기다.

정말 '지역 균형 발전'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 논의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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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고 마련된 사업이 정말 균형 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 사업인지에 대한 논의가 실종됐다. 미래에 대한 우려를 크게 만든다. 짧은 시간 안에 국가 경제성장을 실현하겠다는 의도에서 진행된 국가 정책으로 지역 불균형이 커진 것처럼, 짧은 시간에 지역 균형을 실현하겠다는 의도의 국가정책 사업이 지역 균형보다는 지역 내 불균형을 키우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이런 역작용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과거 국가정책으로 지원된 세금이 지역간 불균형을 키웠던 것처럼 지역 균형 발전 정책으로 지원된 세금이 지역 내 불균형을 키울 여지는 없는지, 긴 안목에서 평가하고 조사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한 예타를 면제할 게 아니라 지역 균형 발전 사업의 경제적·사회적 편익을 아우르는 장기적 측면의 예비타당성이 조사되고 평가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제까지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면서 많은 정책 사업들이 세금으로 추진돼 왔다. 하지만 갈수록 지역간 불균형은 더 커지고 있다. 수많은 지역 산업단지들이 개발됐지만, 대부분 자율적으로 정착되고 발전한 것은 거의 없다.

정책적으로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 등을 강제로 이주하는 것이 아닌 발전의 예를 찾기 어렵다. 일부 산업 단지들은 서울이라는 중심의 말단 기능을 수행하면서 정책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수도권 중심의 국가 경제 여파에 따라 그 운명이 좌지우지돼 왔다.

이러한 수도권 중심의 경제 체제가 지속되는 건 지역 스스로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근본적으로 결여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완전한 정책이 수립·집행된 이유는 행정부와 국회가 당리당략에 따라 일시적 표심만 우선하면서 단기 정책을 마련하고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 아닐까.

24조1000억원 규모 '예타 면제', 수도권 종속 높이거나 덩그러니 있거나

이번에 발표된 '예타 면제' 사업 중 상당수가 서울·수도권과 연결성을 높여 지역의 수도권 종속을 높이는 사업이거나, 지역 내 유기적 관계없이 홀로 덩그러니 들어서는 사업들이다. 

이러한 사업의 대부분은 사업을 유지하거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국민 부담이 늘어나야 하는 사업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지역 균형 발전을 실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금으로 지역간, 지역내 불균형을 키울 것이다.

진정 국가를 위하고 지역을 위한 균형 발전을 꾀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행정부와 국회는 일시적 이해만을 고려해 정책을 추진(혹은 반대)해 오던 관행을 중단하라. 정권과 무관하게, 진보-보수를 떠나 여러 정권이 이어받을 국가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예타가 면제돼 진행될 사업이 자신들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와 경제·문화적 소비능력의 감소로 이어질지, 균형 발전이 이뤄져 소비능력이 증가될 것인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따져봐야 할 것이다.

나는 보고 싶다. 국가 정책 사업을 추진할 때 예산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 '예타'를 반드시 진행함으로써, 세금을 부담하는 국민들의 경제·사회적 편익까지 고려하는 정부와 국회를 말이다.
 
'재해예방사업'이라고? 4대강 사업의 민낯
4대강 사업은 홍수 피해를 유발하는 대형보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게다가 상류 다목적댐의 물을 하류 대형보댐으로 이동해 썩게 하는 '재해 유발 사업'이었기 때문에 진행돼서는 안 될 사업이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수질 악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고도처리 하·폐수처리시설을 도입하고 운영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국민 부담이 더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고기 등 수서동물의 폐사는 꾸준히 발생했다. 또한 국민 건강에 해로운 독소를 분비하는 남조류가 번성하고 있다.

그뿐인가. 4대강 사업은 갈수기인 가을과 겨울에도 대형보 물을 찰랑찰랑 유지하기 위해 상류 다목적댐 물을 4대강 사업 이전보다 더 많이 방류하게 만들면서 겨울과 봄 가뭄에 공급할 다목적댐의 물이 부족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다. 이미 우리는 수 년간 그 피해를 목도해 왔다.

다만, 4대강 사업이 진행된 곳이 수해와 가뭄피해가 발생하지 않던 곳이었고 우리나라 기상 양상도 바뀌어 4대강 사업 지역의 수해와 가뭄피해가 지금까지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기상 이변에 따른 예상밖의 상황이 발생하면 4대강 사업 지역에서 4대강 대형보로 인해 수해가 발생하거나 다목적댐 물 부족으로 인한 봄 가뭄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민걸씨는 공주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입니다.
#예비타당성조사 #4대강사업 #문재인 #이명박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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