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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빵 터진 코믹 대사들...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리뷰] 영화 <극한직업>의 화법과 웃음의 출발점 <힘내세요, 병헌씨>

19.01.30 15:52최종업데이트19.01.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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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힘내세요, 병헌씨> 포스터 ⓒ 강남영화부


2018년 깊은 침체기에 빠졌던 한국 영화는 2019년 <말모이>, <내 안의 그놈>, <극한직업>을 연속으로 성공시키며 청신호를 켰다. 특히 <극한직업>의 흥행세가 심상치 않다. <극한직업>은 개봉 6일 만에 350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극장가를 연일 강타하는 중이다. <극한직업>의 파죽지세를 지켜본 일부 언론은 새해 첫 천만 영화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섣부른 예측도 내놓고 있다.

<극한직업>의 연출을 맡은 이병헌 감독은 대학 졸업 후에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충무로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 쓴 각본이 코미디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2012)다. 이후 이병헌 감독은 연출작인 <힘내세요, 병헌씨>(2012), <스물>(2014), <바람 바람 바람>(2017), <극한직업>, 각색 작업에 참여한 <과속스캔들>(2008), <써니>(2011), <오늘의 연애>(2014), <레슬러>(2017)까지 줄곧 코미디 영화 한 우물만 팠다.

이 중에서 <힘내세요, 병헌씨>은 그의 화법과 웃음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어제의 <힘내세요, 병헌씨>를 되돌아보며 오늘의 <극한직업>과 공통분모는 무엇인지 짚어보려 한다.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의 한 장면 ⓒ 강남영화부

 
얼마 전 <극한직업>을 관람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적은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글쓴이는 영화가 끝난 후 크레딧을 보던 어떤 관객이 "이병헌이 연출도 해?"란 말을 던져 웃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감독 이병헌을 동명이인인 배우 이병헌으로 오해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편으론 자주 있을 법한 일이지 싶다. 당장 내 주위에도 배우 이병헌은 알아도 감독 이병헌은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병헌이란 이름이 흔한 것도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크레딧에 '연출 이병헌'이 뜨면 감독을 겸한다고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감독 이병헌은 데뷔작에서 자신의 이름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힘내세요, 병헌씨>란 제목을 접하면 보통 "배우 이병헌이 나오나?" 또는 "배우 이병헌을 응원하는 내용인가?"라고 궁금하기 마련이다.

<힘내세요, 병헌씨>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한 스태프가 "야, 이병헌 어디 있냐고? 이병헌 찾아오라고!"라고 고함을 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 남자가 머뭇거리며 걸어온다. 진짜로 이병헌이 나오나? 제목에 끌려 영화를 고른 사람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는 스타 이병헌이 아니다. 배우 이병헌을 응원하는 내용과도 거리가 멀다.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의 한 장면 ⓒ 강남영화부


<힘내세요, 병헌씨>는 신인 감독 이병헌(홍완표 분)이 데뷔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로 담는 형식으로 그린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허구를 실제처럼 가공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에 속하는, 더 쉽게 표현하면 영화가 만들어지는 단계를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연상케 하는 구성으로 보여준다.

<힘내세요, 병헌씨>엔 이병헌 감독의 이후 작품들이 보여준 특징이 새겨져 있다. <힘내세요, 병헌씨>는 허구의 형식과 인물을 사용하여 실제 세계를 탐구한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관심은 이후 작품에도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스물>과 <바람 바람 바람>의 주인공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거짓말로 자신을 감춘다. <극한직업>에선 경찰이 잠복수사를 위해 치킨집으로 위장 취업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꿈 또는 욕망의 주인공을 남성으로 삼는 설정도 비슷하다. <힘내세요, 병헌씨>에서 영화감독 이병헌, PD 김범수(양현민 분), 무명 배우 영현(김영현 분), 촬영감독 승보(허준석 분)은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힘내세요, 병헌씨>가 꿈을 꾸며 버티는 30대 남성들의 사연이라면 <스물>은 제목 그대로 스무 살 청춘의 좌충우돌이다.

<바람 바람 바람>은 <스물>이 보여준 남성들의 섹스 코미디를 더욱 노골적으로 확장한, 중년 남성들의 성적일탈에 가깝다. <극한직업>도 남성 중심의 서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약반엔 장형사(이하늬 분)가 일정 비중을 차지하나 영화의 초점은 중년 남성이며 가장인 고반장(류승룡 분)에 오롯이 맞춰진다.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의 한 장면 ⓒ 강남영화부


영화를 향해 달리는 '팀'의 이야기 <힘내세요, 병헌씨>를 경찰 버전으로 바꾼 게 <극한직업>일 수도 있다. 둘 다 직업으로서 '극한'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힘내세요, 병헌씨>와 <극한직업>을 남성 직업의 연작이라 규정하면 <스물>과 <바람 바람 바람>은 남성의 성적 판타지 연작으로 묶어봄 직하다.

모든 연출작은 코미디 영화답게 상황은 예측불허로 흘러가고 대사는 포복절도하도록 웃긴다. <힘내세요, 병헌씨>에서 꿈꾸는 청춘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려던 방송국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매일 친구들과 술만 마시고 온종일 꾸물거리다가 간신히 노트북을 켠 후엔 시나리오 제목의 폰트를 고르느라 1시간 넘게 허비하는 병헌의 게으름 앞에 두 손 두 발을 든다.

제작진이 기획을 엎으려는 순간 병헌이 갑자기 근사한 시나리오를 완성하며 '정신차리세요, 병헌씨'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갑자기 '힘내세요, 병헌씨'로 바뀐다. 데뷔작으론 믿기 어려운 이야기의 완급 조절이다.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 리듬은 극영화인 <스물>과 <바람 바람 바람>은 다소 덜컹거렸으나 <극한직업>에 이르러선 세련미를 더했다.

<힘내세요, 병헌씨>가 들려주는 위트 넘치는 대사는 <스물>과 <바람 바람 바람>을 거쳐 <극한직업>에선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로 폭발한다.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드립'의 최강자는 단연 이병헌 감독이다.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 촬영 현장 ⓒ 강남영화부


<힘내세요, 병헌씨>에서 극 중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조향기 목소리)은 병헌의 고군분투를 "병헌씨의 꿈은 영화감독이다. 병헌씨는 그날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날을 위해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고 오늘도 그날에 가까워진 하루일 뿐이다"라고 정리하며 끝맺는다.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서는 마음. 그렇게 한발씩 꿈에 다가가려는 태도. 이것은 이병헌 감독이 <힘내세요, 병헌씨>, <스물>, <극한직업>(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을 리메이크한 <바람 바람 바람>은 논외로 두려한다)에서 계속 강조하던 주제다.

<힘내세요, 병헌씨>는 지금까지 나온 이병헌 감독의 작품을 관통하는 문구도 된다. 그는 영화를 통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00씨에게 "힘내세요"란 말을 건네니까 말이다. <극한직업>을 재미있게 감상하신 분이라면 <힘내세요, 병헌씨>도 보시길 강력히 추천한다.

앞으로 이병헌 감독이 어떤 웃음의 장인으로 성장할까?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며 응원의 한 마디를 보낸다. "힘내세요, 병헌씨."
이병헌 조향기 홍완표 양현민 김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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