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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성공' 바라던 아버지가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

[리뷰] 넷플릭스 드라마 <크리켓 보이즈>가 드러낸 자본주의의 민낯

19.01.25 18:07최종업데이트19.01.2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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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어엿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한 자식을 보는 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하고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죠.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JTBC 드라마 < SKY 캐슬 > 속 한서진(염정아)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넷플릭스 드라마 <크리켓 보이즈>의 아버지 모한 역시 딱 그런 인물입니다.

모한의 목표는 두 아들 라다와 만주를 최고의 크리켓 선수로 만드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크리켓의 인기는 매우 높아서 성공만 한다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죠. 19세 이하 대표 선수 단 3명만을 뽑는 '선발일(Selection Day: 이 시리즈의 원제)'을 6개월 앞둔 어느 날, 모한은 두 아들과 함께 시골 마을을 떠나 뭄바이로 상경합니다. 라다와 만주를 뭄바이 클럽팀에 넣어 선발일에 대비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무엇을 하든 돈이 필요한 대도시 생활은 녹록지 않습니다. 모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들을 상위권 클럽에 넣으려고 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가입조차 힘든 현실에 부닥칩니다. 그러던 중에 왕년의 유명 크리켓 감독이었던 토미가 라다와 만주의 재능에 주목하고, 두 아들은 그의 주선으로 와인버그 아카데미라는 사립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돈과 명예를 위한 경쟁, 피할 수 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크리켓 보이즈>의 스틸컷. 모한은 출중한 크리켓 선수인 두 아들 라다와 모한을 데리고 대도시 뭄바이로 상경한다 ⓒ NETFLIX

 
극중에서 크리켓 스타가 되기 위한 두 형제의 여정은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합니다. 누구든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좋은 집에 살려면 집세를 많이 내야 하고, 장학금을 받고 싶다면 출중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스포츠 스타가 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처절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죠.

크리켓 소년들의 아버지 모한 역시 이런 논리를 내세우며, 아들들을 끝까지 몰아 붙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대도시에서는 집세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빈민에 가까우며 끊임없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립니다. 그는 그럴수록 모든 상황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아들의 성공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의 논리에 아무런 결함이 없어 보입니다. 뭔가 대단한 걸 이루려면 당연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나 < SKY 캐슬 > 속 인물들이 보여 주는 행태나, 끔찍한 성폭력으로 얼룩진 스포츠계의 실상을 접하게 되면 성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태가 정말 괜찮은 것인지 자문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모든 시장 참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내리며 공정하게 경쟁한다'는 이상적인 조건을 가정합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모든 인간이 개인의 욕망 실현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항상 자신의 이익을 따져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요. 또한 모든 이들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지도 않죠.

더구나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만을 위해 사는 존재만이 아닙니다. 남을 돕는 일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가족이나 아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도 압니다. 인간의 의사 결정 역시 늘 이익과 손해를 따지며 합리적으로 이뤄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결정을 달리하거나, 자기 이익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고려하기도 하죠. 또한, 인간들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든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히 공정한 경쟁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은 현실과 상관없는, 교과서에서나 의미 있는 논리를 삶의 전반에 우격다짐으로 적용하여 무한 경쟁에 동참할 것을 강요할 때 발생합니다. 개인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매진해야 한다는 논리는 한 줌의 선택받은 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피눈물 흘리게 만듭니다.

좋은 대학과 금메달을 위해 이런 것쯤은 눈감아도 된다고 이야기할 때 끔찍한 폭력이 자라나죠. 이런 경쟁에 휘말리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개인의 삶은 고단해지며, 거기서 나온 이익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더 집중됩니다.

비범한 시리즈, 대안과 탈출구는 가능할까
 

넷플릭스 시리즈 <크리켓 보이즈>의 스틸컷. 와인버그 아카데미를 이끄는 교장 넬리는 인간적 명분과 자본의 논리가 맞닿는 지점에 서 있다 ⓒ NETFLIX

 
<크리켓 보이즈>는 언뜻 보기엔 평범한 성공 서사에 불과한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다릅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두 소년과 아버지 역시 경쟁 체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크리켓에 관한 한 최정상의 실력을 갖추고 꿈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게 되지만, 체제의 부작용까지 피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 시리즈의 전체적인 방향과 인물 소개에 주력한 시즌 1만 공개됐을 뿐이지만, 앞으로 주인공 소년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갈등 상황이 모두 잘 설정돼 있습니다. 라다의 자만심이 초래할 비극, 동생 만주가 크리켓보다 과학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 아들들을 키워낸 모한의 자부심이 무너질 가능성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이들을 둘러싼 토미 선생과 와인버그 학교의 교장 넬리, 학교 부지를 개발하려는 개발업자의 존재도 이 시리즈의 목표가 단순한 성장 서사를 잘 그려내는 데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들은 인간적인 감정과 자본의 논리가 충돌할 때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낼 서브 플롯의 중심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성공 서사를 통해 사회 체제 전반을 조망하려는 <크리켓 보이즈>의 야심은 충분히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이제 시리즈의 성패는 앞으로의 전개를 통해 얼마나 이 문제를 잘 형상화하고 수긍할 만한 대안과 탈출구를 제시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즌 1의 빠르지 않은 전개에서 알 수 있듯이 한두 시즌 만에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이 작품이 현재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결말까지 우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크리켓 보이즈 인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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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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