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서'가 아니었다

[주장] 말 많은 '학종'이 0점짜리 답은 아닌 이유

등록 2019.01.24 22:08수정 2019.01.2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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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JTBC에서 방영하고 있는 SKY캐슬은 종합편성 채널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감하기 쉬운 '교육'과 '입시'라는 소재가 그 인기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1화에서는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으로 서울대 의대를 간 인물이 등장하고 학종에 필요한 포트폴리오를 얻기 위해 파티를 개최하는 장면이 나온다. 도대체 학종이 뭐길래 SKY캐슬 사람들은 그 포트폴리오에 안달이 났을까.

학종은 내신성적과 자기소개서, 각종 수상 경력, 교내외 활동 등을 평가요소로 구성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나는 2013년도에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서울 소재의 A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내신성적,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면접 등을 준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다양한 교내외 활동도 빠짐없이 준비했다.

지방의 일반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SKY캐슬에 나오는 고액컨설팅을 받지 않았고 그 흔한 과외 한 번 받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우리 집은 사교육의 힘을 빌릴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교에 합격하자 부모님께서는 '비싼 과외 한 번 못 시켜줬는데 네 스스로 네가 바라던 결과를 얻게 되어 기쁘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첫 대외활동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친구들과 대화하며 고정관념을 허물 수 있었고,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했을 뿐인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성적으로 평가받던 학교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통해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부딪치며 배우는 것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방법도 배웠다.

교내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학생회와 방송부를 하며 교내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그저 즐거웠다. 대학 입시를 준비한 게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으니 즐거움과 자기만족으로 했던 활동들이었다. 배우는 게 많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게 행복했다. 

그렇게 쌓은 결과를 바탕으로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별로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했다. 포트폴리오는 적게는 10장에서 많게는 50장까지 작성했다. 생활기록부에 들어가야 할 내용은 선생님께 찾아가 말씀드렸다. 그렇게 얻어낸 대학교 합격증은 내 힘으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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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Y캐슬 > 스틸 사진 ⓒ JTBC


학종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관심을 가졌다. 매년 반복되는 찬반논란을 지켜보며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게 학종은 보통의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다양한 경험을 했던 보상이었고, "그 성적으로는 지방의 국립대학도 어림없다"던 선생님들의 콧대를 꺾을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으며 국·영·수 고액과외를 받던 친구들보다 좋은 대학에 갔다는 위안이었다. 나의 경험과 생각은 학종에 대한 긍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줬다.


대학에 입학한 후 대외활동을 함께 했던 후배들의 입시를 도와줬다. 자기소개서 첨삭을 해주고 면접 예상질문을 뽑아주며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할 때 필요한 것들을 챙겨줬다. 입시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나를 떠올리며 무엇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입시를 도와주며 느낀 것들이 있었다. 하나는 대학교 입학전형에서 학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관련 사교육 시장이 커졌다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를 대필하거나 면접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대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수십만 원의 투자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많았다. 그로 인해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반대로 흔한 사교육 없이 자신의 목표를 이뤄낸 후배도 있었다. 학부모의 든든한 지원 없이도 본인의 노력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후배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등떠밀리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필요성을 깨닫고 준비하는 후배들이었다. 스스로 준비하는 후배들의 경우에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를 내기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경제력의 힘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고, 사교육 시장에서 만들어낸 고액 입시컨설팅의 힘을 빌린 학생들도 많이 봤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정말 본인 스스로 노력하고 준비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낸 학생들도 있다.

학종의 취지도 긍정적이다. 암기과목의 성적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 학생의 잠재적 요소를 단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취지에서 나온 제도를 발전시킬 방법은 많다. 악용하는 사람과 불법적 행위를 하는 사람은 법에 따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좋은 취지에서 나온 법과 제도 전부가 좋은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바꿔야 한다.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손 놓고 있던 모습이 잘못된 것이다.

교육·입시제도는 가장 민감한 제도다. 가장 민감하면서 가장 공정해야 할 제도다. 공평함이 아닌 공정함이 들어가야 하는 제도다. 대한민국의 모든 수험생에게 주어진 환경이 공평할 수는 없다. 다만 제도는 공정해야 한다. 공정해야 할 제도에서 공정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제도를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노력을 해야 한다. 고액 입시컨설팅 업체를 단속한다는 말은 잠깐 지나가는 비를 막는 정도에 불과하다. 본래의 취지에 맞는 제도 개정이 필요하다.

학종으로 대학에 입학한 모두는 'SKY 캐슬'의 주인공이 아니다. 공정한 범위 안에서 각자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내신과 수능 뿐만 아니라 각종 경연대회, 교내·외 활동,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 준비 등 많은 것을 준비했다. 이들의 노력을 SKY캐슬 주인공들처럼 사교육으로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스스로가 만든 캐슬(성)에서 노력의 여하에 따라 각자의 결과물을 얻은 것이다.
#SKY캐슬 #학생부종합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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