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청와대에서 있었던 농업인 초청 간담회 때 화제가 됐던 열다섯 살 소년농부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해서 조부모와 함께 지내느라 초등학생 때부터 농사일을 거들어서 농사 경력 8년차의 농부로 불리고 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염소, 닭, 소를 돌보고 등교하며 가축(염소)이 아프면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염소를 돌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현재 영농 규모는 논 1,600평, 고추밭 2,000평, 염소 40마리, 그리고 소 10마리까지 기르고 있느니 전국 평균 농가 영농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15세 중학생 소년농부 한태웅 군의 꿈은 "10년 안에 소 100마리, 논밭 2만평 이상을 일구는 대농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2000년 말. 서른여섯 살에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와 귀농해 19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선배 농사꾼으로서 소년농부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몇 가지 엉뚱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첫째, 아동노동의 산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현 정부가 주장하는 "사람 중심 농정개혁"은 공염불에 그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부모의 정상적인 보호와 관심을 받지 못하고, 또래의 친구조차 없는 시골 마을에서 조부모 손에서 자란 어린이가 조부모와 농사를 짓는 것을 자연스럽고 대견하게 생각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 중학교1,2학년의 농사일 ⓒ 정화려 위 사진 위는 2006년 중학교 1학년인 제 딸이 농사일을 거들어 주는 모습입니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함께 밭에 올라가 일도 하고 놀기도 할 생각이 있었지만 뱀과 벌 등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놈들이 많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아래는 인간극장에 나온 중학교 2학년, 만14살 태웅이의 보기 안쓰러운 모습입니다. 「아동복지법」이나 「한부모가족지원법」, 「UN 아동권리협약」 등 대부분 법률과 국제협약은 아동을 18세 미만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도 제64조(최저 연령과 취직인허증) ① 15세 미만인 자(「초·중등교육법」에 따른 중학교에 재학 중인 18세 미만인 자를 포함한다)는 근로자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놀이나 체험이 아닌 농사일은 노동입니다. 둘째, 태웅이가 작년 3월에 샀다는 트랙터입니다. 본체 값만 5,700만 원인 LUXEN700을 열다섯살에 살 수 있다니 우리 농촌이 언제부터 그리 잘 살았나 의문이 듭니다. 농촌이 어렵고, 농사꾼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태웅이는 이해나 할지, 아니면 농사꾼이 자기 일을 다 하지 못해서 농사를 잘 못 짓는다고 외면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 트랙터의 두 모습 ⓒ 정화려 위 사진 위는 태웅이의 SNS에 올라있는 트랙터 구입 기념 사진입니다. 로우더와 로터리, 써레 까지 달았으니 적어도 1,000만원이 추가됐을 것입니다. 아래는 제가 10년 전에 1,900만원을 주고 산 중고 트랙터입니다. 크기와 출력은 LUXEN700보다 조금 작은 65마력 중형트랙터입니다. 2011년 8월 폭우로 농로 한쪽이 물러진 것을 모르고 운행하다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농로 정비를 제대로 안한 군청에 책임을 물으려 했는데 법으로 정한 농로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 책임이 없다는 판결문을 받고 말았습니다. 트랙터 전복 사고에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트랙터를 수리해 지금도 사용 중입니다. 작년 6월 예능프로에 출연한 태웅이는 "농사는 정년이 없다. 내가 몸만 건강하면 100살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디 안전사고 없이 건강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태웅이의 꿈은 "10년 안에 소 100마리, 논밭 2만평 이상을 일구는 대농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 한 마리에 500만원, 농지는 평당 20만원만 잡아도 45억 원입니다. 20년 넘게 농가당 평균 농업소득이 연 천만 원인 현실을 생각한다면 태웅이가 농지를 구입해 대농이 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태웅이가 농지를 매입하지 않고 대농이 되려면, 남은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저나 보통의 농사꾼들이 그렇듯 부재지주의 농지를 임대차계약서 없이 부재지주가 요구하는 임대료를 내며 그냥 경작하는 것입니다. 제 경우 8,000평의 밭을 부치고 있지만 임대차계약을 맺고 농지원부에 등재된 밭은 3,300평 뿐이고, 나머지 4,700평은 부재지주들의 땅이라 언제 소유권 변동이 생겨 밭을 내놓아야 할지 모르는 형편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2만평 이상의 밭을 경작하는 제 또래 농사꾼들 역시 부재지주 소유의 밭이 전체 경작지의 60%가 넘는 실정입니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현행법대로 부재지주들에게 농지를 처분하거나 농어촌공사에 위탁케 한 후 농어촌공사와 임대차계약을 맺고 농사를 짓는 방법입니다. 임대기간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고 정부의 농업관련 보조나 지원사업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으니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농지 소유 현황은 농지 개혁 실시 전인 70년 전과 똑같습니다. 변한 것은 소작농이 임차농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소년농부의 꿈을 위해서라도 70년 묵은 적폐 중의 적폐인 부재지주 청산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 소작, 임차농지 추이 ⓒ 농촌경제연구원 #부재지주청산 #소년농부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