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과 쌍용차, '판박이' 지역 여론을 개탄함

[의견] 쌍용차 노동자가 태안에 다녀오며... 목숨보다 경제가 중요한가

등록 2019.01.16 16:54수정 2019.01.1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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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쓴 이창근님은 쌍용차 노동자입니다.

가까워서 비현실적인 죽음이 있다. 낙탄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곳이 태안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다. 석탄이 연상시킨 곳은 강원도 어디쯤이었기에 태안은 그저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비현실적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너무 가까운 단어라서 비현실이길 바랐다. 나 또한 컨베이어 벨트 노동자이다 보니 더욱 그랬다.

고 김용균님 사망 한 달이 지났다. 변한 것이 없다지만 변한 것이 왜 없는가. 어머니 김미숙씨의 속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더 새까맣게 변했을 테고, 함께 일한 동료들의 허공 젓는 눈동자 또한 충혈의 깊이가 더해졌다.

김용균 사망 한 달,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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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근무했던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의 18일 오후 모습. ⓒ 이희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은 말 그대로 개정만 되었을 뿐 죽음의 방기를 완전하게 멈춰 세울 스위치는 되지 못한다. 변하지 않은 것은 태안화력 발전소에서는 사고가 일어난 9호기와 10호기를 호시탐탐 재가동 하려는 빌미를 찾기 위한 말과 구호이다. 그리고 지역 여론의 이름으로 무엇인가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파인텍 굴뚝 농성장 천막 안에서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를 처음 만났다. 파인텍 두 노동자 굴뚝 농성이 408일을 넘어가던 시간. 파인텍 조합원들이 자리를 잠시 비운 시간이었다.

굴뚝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싶다며 아버님과 이모님도 함께 천막을 찾았다. 우연하게 천막 안에 앉아 있었고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채 이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첫 만남이기도 하고 아들 잃은 어른께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 마른 풀처럼 바짝바짝 말이 말랐다. 목도 탔다. 그저 천막 안 이 곳 저 곳을 쳐다만 봤다.

어머니가 굴뚝 농성하던 홍기탁과 전화 통화 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양손을 다소곳이 전화기를 떠받들 듯 들고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러워했고 건강을 염려했다. 통화가 끝나고 앉아 있던 사람들과 짧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이야기 내내 우리들의 표정을 살피는지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천막 밖에선 아들 또래의 청년 한둘이 서성이고 있었다.


사진작가 한 명과 태안을 들렀다. 한번 가야지 하면서도 선뜻 운전대를 잡지 못했는데 어머니를 가까이서 보고 나서는 더 미룰 수 없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태안화력 발전소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파란 하늘 위로 끝없이 휘감겨 올라가는 하얀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그 가운데 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이 있었다. 아마 사고가 발생한 9호기 10호기로 보였다. 그 시간 목동 열병합 발전소 위 농성자들이 오른 굴뚝도 연기가 멈춰 있었다.

태안화력과 쌍용차를 대하는 소위 '지역 여론'
 

ⓒ 독자 제공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 몇 장을 찍은 다음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안에는 고 김용균씨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전국에서 올라온 엽서를 정리하거나 바쁘게 선전물을 만들거나 회의를 했다.

지난 2009년 쌍용차 파업 당시 공장 안에 모여 있던 동료들 생각이 났다. 장례식장을 벗어나자 태안 지역에 내걸리기 시작한 현수막을 보게 되었는데, 파업하는 우리에게 온갖 욕설과 비난을 일삼던 공장 밖 지역 여론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태안지역경제 다 죽이는 집회를 즉각 중단하라."

느닷없다고 해야 하나, 뜬금없다고 해야 하나. 태안 지역에 수많은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고 김용균씨 사망 한 달이 넘어가면서 생긴 일들이다. 기초단체장이 지역 경제 죽는다는 기자회견을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어떤 정형성이라고 해야 할까. 사건 발생 이후 매뉴얼처럼 따라붙는 이 같은 대응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오고 있을까. '지겨우니 그만하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고 경제를 사람 목숨 앞에 두는 이 천박함은 왜 이토록 전가의 보도로 이어지는가.

태안화력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은 아직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주변 사람들이 조금 견뎌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역 경제가 조금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집회 때문으로, 이 죽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특히나 기초단체장이 나서 선동하듯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분노와 좌절을 욱여넣듯 짓밟을 수는 더더욱 없다.

10번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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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 추모 2차 범국민추모제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2차 범국민추모제’가 지난 2018년 12월 2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열렸다.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추모제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유대인은 '10번째 사람'이라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이 제도는 9명의 사람이 어떠한 것에 찬성하더라도 무조건 그 10번째 사람 1명은 반대해야 하는 제도다. 다수결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하려는 제도라 했다.

태안 지역에서 벌어지는 최근의 여론 압박용 현수막 게재와 기초단체장의 기자회견은 여론 호도이며 사회적 죽음이 갖는 의미에서의 맥락 이탈이자 퇴색 시도다. 그런 움직임에 대해 10번째 사람이 되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고 김용균씨의 죽음이 가리키는 곳은 태안 지역이 아니다. 해당 컨베이어 벨트 위만도 아니다.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발 아래, 앉은 자리, 처한 상황 곳곳이다. 한 지역에 가둘 수도 갇혀서도 안 되는 문제다.

이제 겨우 진상조사의 틀이 마련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바라건대 조금 불편하고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두려움, 그저 일하러 갔을 뿐인데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는 부모의 현실적 고통에 비할 것인가. 혹여라도 불편한 여론이 있다손치더라도 방향 잡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를 하면 어떨까 싶다.

쌍용차 파업 당시 지역 여론은 차가웠다. 그 싸늘함이 바람 든 무처럼 온 몸에 박혀 있다.

이 거대한 사회가 조금이라도 사람 귀한 줄 아는 사회로 방향을 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더 많은 10번째 사람들의 등장만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김용균 #김미숙 #파인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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