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먼지 속에 전두환씨 집 앞에 모인 100여명

마스크 안 쓰고 외친 "전두환을 법정에"... 한국당은 뒤늦게 5.18 조사위원 추천

등록 2019.01.14 18:03수정 2019.01.1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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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한 5.18 유가족 “전두환은 참회하고 역사의 심판을 받으라” 광주에서 상경한 5.18민주유공자유족회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재판 출석과 부인 이순자씨의 망언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 없는 날씨였다. 관계당국은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초지'를 발동하며 "외출을 삼가고 부득이하게 외출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4일 오후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 모인 100여명의 5·18광주민주화 운동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들은 "광주에서 살인범 전두환에게 우리들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면서 "전두환을 반드시 재판정에 세워야 한다"고 성토했다. 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전달하려고 사상최악의 미세먼지에도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이다.

이날 전두환씨 집 앞에 모인 시민들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들로 5·18 관련 세 개 단체인 유족회,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소속 회원들이다. 이들은 "법원이 3월 예정된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강제구인장을 발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라면서 "전씨가 자기 발로 법정에 나가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유가족들은 조금이라도 전두환씨 집 가까이 가려고 골목 안쪽으로 이동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가벼운 충돌이 발생했다. 유가족들이 "10m만 더 안쪽에서 말하고 물러나겠다"라고 하자 경찰은 가족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전두환이 재판정에 서야 하는 이유"
 

유가족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전두환씨가) 독감과 치매를 핑계로 재판을 기피하려는 '꼼수'는 용납될 수 없다"라면서 "전씨는 회고록을 통해 국민을 학살했던 만행을 은폐·조작하지 말고 책임을 시인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최근 회고록을 썼다는 사람이 조금 전 일도 기억 못 할 정도로 치매를 앓고 있다는 거짓 주장은 국민을 기만하고 범죄 혐의를 회피하려는 속셈"이라며 "이 기회에 자신이 저지른 내란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두환은 또 다시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검찰에 끌려가던 모습을 되풀이하지 말라"면서 "이 기회에 자신이 저지른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죄의 최고책임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라"고 강조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년을 바라보건만 일부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듯 눈물을 훔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5·18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관현의 누나 박행순씨는 "5.18 내란음모를 선고받은 동생이 법정에서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라면서 "동생은 '나라를 피로 독차지한 독재자는 피로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두환은 무엇이 무서워 재판정에 못 나오는지, 재판정에서 이야기하라"고 성토했다.

박관현은 5·18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광주민중화운동의 불씨를 지핀 인물이다. 1980년 5월 18일 윤상원의 권유로 광주를 떠나 여수로 은신했지만 1982년 4월 체포됐다. 이후 광주교도소에서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세 차례 단식투쟁을 하다 그해 10월 사망했다.

"이순자는 국민들에게 사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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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한 5.18 유가족 “전두환은 참회하고 역사의 심판을 받으라” 광주에서 상경한 5.18민주유공자유족회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재판 출석과 부인 이순자씨의 망언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이날 유가족들은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에 대해서도 분노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남편이 앓고 있다는 치매를 자신이 앓고 있지 않고서야 도저히 내뱉을 수 없는 망언을 했다"라면서 "이순자는 당장 망언을 철회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순자의 망언이야말로 전두환의 동정을 사고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얄팍한 속셈에 불과하다, 언론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을 더는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씨는 극우매체 <뉴스타운>과의 신년인터뷰에서 자신의 남편 전씨를 "우리나라에 처음 대통령 단임제를 이뤄, 지금 대통령들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한다"면서 "(자신의 남편 전두환이)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추천위원들... 일베하던 인물도 포함"

이날 전씨 집 앞 5·18 유가족 기자회견은 갑작스레 이뤄졌다. 가족들은 원래 이날 오후 자유한국당 앞에서 '5·18 진상규명 위원 선정 촉구' 집회를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광주에서 유가족들이 올라오는 사이 자유한국당은 이날 오전에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한국당 몫 위원에 권태오 전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과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차기환 전 수원지법 판사를 추천했다. 결국 유가족들은 자유한국당 대신 전두환씨 집으로 방향을 틀어 이날 집회를 진행했다.

한국당이 미루다가 위원들을 선임했다 해서 5·18 유가족들이 만족한 것은 아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광진 5·18광주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사무총장은 "우려했던 대로 일베와 뉴라이트에서 활동한 3명을 추천했다"라면서 "우리가 서울 자유한국당으로 올라오는 사이에 기습적으로 발표를 해 버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 사무총장은 "(자유한국당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전두환의 잔당들이 남아서 잔머리를 엄청나게 굴렸다"고 강조했다.

한 사무총장이 이렇게 지적한 것은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들의 이력 때문이다. 특히 이동욱 전 기자는 <신의 한수> 등 보수 유튜브 방송에 패널로 수차례 출연해 극우 발언을 했다.

그는 1996년 <월간조선> 4월호에 '검증, 광주사태 관련 10대 오보·과장'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광주사태와 관련해서는 거의 모든 오보가 피해자 중심으로 쏠려 있다"라며 "피해자 편을 들면 정의롭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광주전남 공동대책위원회'로부터 공개 사과 요구를 받기도 했다.

수원지방법원 판사 출신인 차기환 변호사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KBS 이사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맡기도 했는데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고 세월호 유가족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는 또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에 올라온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그대로 전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발생한 성폭력·학살·암매장 등 인권유린을 밝히기 위한 '5·18 진상조사위원회'는 국회의장 추천 1명, 더불어민주당 추천 4명, 한국당 추천 3명, 바른미래당 추천 1명 등 모두 9명의 조사위원으로 구성된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해 9월부터 활동을 시작해야 했지만, 한국당이 3명의 위원 추천을 하지 않아 지금까지 출범을 하지 못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위원회는 구성을 마친 날부터 2년간 진상규명활동을 한다. 만료 3개월 전 대통령 및 국회에 보고하고 1년 이내의 범위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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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한 5.18 유가족 “전두환은 참회하고 역사의 심판을 받으라” 광주에서 상경한 5.18민주유공자유족회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재판 출석과 부인 이순자씨의 망언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전두환 #이순자 #5.18 #광주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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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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