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고 딴짓 하느라" 서울대 교수, 잇따른 표절 논란에 자성글

정병설 국문과 교수 "음주문화는 인문학의 성찰과 역행해"

등록 2019.01.14 16:09수정 2019.01.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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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문 ⓒ 연합뉴스

  
"작금의 표절 사건들은 오래 쌓인 인문대의 고질이 비로소 터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국문과 박아무개 교수에 이어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 표절 문제까지 불거지자 서울대 교수들 사이에서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두 교수와 같은 인문대학 소속인 정병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지난 13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서울대 교수의 표절, 자기 비판'이란 글에서 최근 표절 사태가 인문대의 오랜 고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서울대 연구진실위원회는 국문과 박 교수의 논문과 단행본 12편을 표절로 판정했고 현재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작년 12월 초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2001년 발간) 등 저서와 논문에서 표절 의혹이 제기된 종교학과 배 교수는 최근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표절 교수 두둔하고 피해자 공격하는 동료 교수들도 책임"

정 교수는 특히 같은 국문학과 박 교수를 향해 "문학은 물론 글쓰기의 윤리를 가르치는 국문과 교수에게 표절은 기초 자격과 관계된 문제"라면서 "표절 교수는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국문과에서는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외 유수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저명 출판사의 문학지 편집위원 등을 맡아 활약하던 사람이 무엇이 부족해서 자기글로 못 쓰고 남의 것까지 가져와야 했던가"라고 따졌다.


아울러 정 교수는 "학위 표절이 밝혀지면 학생은 학위 취소와 더불어 퇴출시키는데, 표절로 밝혀진 선생이 자리를 유지하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면서 3년 징계시효 규정을 들어 표절 교수 징계에 관대한 서울대 본부를 겨냥했다.(관련기사: [팩트체크] 논문 표절 교수, 3년 지나면 징계 불가능?

정 교수는 "심지어 표절한 사람을 두둔하면서 표절 피해자 학생을 공격하는 교수까지 있었다"면서 교수 사회의 '동료 의식'도 문제 삼았다. 정 교수는 "나중에 들으니 이들은 내가 알기 훨씬 전에 표절 사건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면서 "오랫동안 함께 술을 마시고 친분을 쌓아왔으니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그들은 연구부정을 묵인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인문대에서 표절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는 이유도 인문대 특유의 술 문화에서 찾았다. 정 교수는 박 교수가 부임할 당시 함께 조직한 '인절미'(인문대 젊은 교수의 모임)와 국문학과 비공식 조직인 '21세기위원회'를 거론하며, "모임은 대학의 변화를 모색하자는 뜻이 있었지만, 대개는 늦은 밤까지 술을 먹는 게 일이었다"라면서 "주로 학교 주변 낙성대 술집에서 이러고 있으니 학생들이 볼까 염려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술 먹고 딴짓 하느라 공부 안해... 다른 사람 글 가져오는 수밖에"

정 교수는 "인문대의 음주문화는 인문학의 성찰과 역행한다"라면서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고 조직을 단단히 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그것으로 기회를 독점하고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그러면서 공부를 하고 깊은 사유로 내공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 교수는 "술 먹고 딴짓 하느라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도 학자연하고 대접을 받으려면, 무성의하고 숙고 없는 글을 남발하거나, 다른 사람 글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다"면서 "내 보기에 그런 사람들은 모두 학회보다 언론을 좋아한다, 그렇게 표절이 탄생한다"고 일갈했다.

정 교수는 "총장부터 학생까지 술판에 의지하고 있는 서울대의 현실을 바꾸어야겠다"며 교내 <대학신문>에 '술판을 뒤집자'라는 칼럼을 썼지만 정작 자신은 "우리 대학 술판의 주적이 되었고 술자리에서 때때로 놀림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 교수는 "다행히 상처가 곪아서 터지니 치유할 가능성도 있다고 여긴다, 몇몇 염려하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표절 규정을 정비하고 논문을 전부 조사하여 한바탕 정리하고 가자는 말을 한다"라면서 "이번에 한번 판을 크게 흔들어서 도약의 전기로 삼아도 좋을 듯싶다"고 제안했다.

아래는 정병설 교수가 지난 13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14일 현재 해당 글은 비공개 상태다. 

<서울대 교수의 표절, 자기 비판>

** 자기 조직과 동료에 대해 비판적 얘기를 적어서 좋게 볼 사람이 없다. 지난 번 김윤식 선생 추도사로도 적지 않게 우려를 들었다. 조직 내의 문제를 드러내는 일이 두렵긴 하지만 그만둘 수도 없다. 자기 비판 없이 누굴 비판하겠는가. 벌써 넌 도대체 얼마나 잘났냐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재작년 초부터 우리 서울대 국문과 교수 한 명이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사태의 발단은 십여 년 전에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이 표절로 밝혀져서, 해당 학회에서 필자 동의 하에 게재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이후 사태는 일파만파가 되어 검증을 확대하여 논문 4편이 해당 학회에서 표절 판정을 받았고, 우리 학과는 교수회의를 통해 사직 권고를 결의했다. 그는 학교를 떠나겠다고 했으나 본부에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아 조사와 징계가 그대로 진행되었고, 작년 가을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총 12편에 대해 표절 판정을 내렸다.

문제가 제기된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 현재도 징계가 진행 중이니 당사자도 굉장히 힘들 줄 알지만, 다른 측면을 생각하면 그를 동정할 수 없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외 유수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저명 출판사의 문학지 편집위원 등을 맡아 활약하던 사람이 무엇이 부족해서 자기글로 못 쓰고 남의 것까지 가져와야 했던가.

표절 교수는 나와 같은 해에 서울대에 왔다. 그때는 교수 물갈이가 한창이어서 많은 분들이 떠나고 또 그만큼의 교수가 새로 들어왔다. 신임교수들은 선배들과의 동거를 불편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뭉쳐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며 자리를 확보하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우리 인문대에선 '인절미'(인문대 젊은 교수의 모임)가 조직되었고, 우리 학과에선 비공식 조직으로 '21세기위원회'를 만들었다. 모임은 대학의 변화를 모색하자는 뜻이 있었지만, 대개는 늦은 밤까지 술을 먹는 게 일이었다. 술잔을 돌리고, 취하면 호형호제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때로는 술잔을 강요하기도 했고 서로 다투기도 했다. 주로 학교 주변 낙성대 술집에서 이러고 있으니 학생들이 볼까 염려되기도 했다. 나는 조직 체질이 아닌지라 일찍부터 이런 모임에 잘 끼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서울대가 이래도 되나 걱정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7,8년 전에 친한 사범대 교수에게, 인문대 교수는 술들을 다 잘 먹지요, 하는 엉뚱한 질문을 받았다. 무슨 말이냐고 하니, 서울대에 초빙교수로 와서 인문대 미래 방향에 대한 자문에 응하기도 한 미국 교포교수가 한국을 떠나며 한 말에 서울대 교수는 매일 술만 먹고 앉으면 정치 얘기뿐이더라고 했다고 했다. (2011.1.10 조선일보, 김성복 교수 인터뷰) 분개했으나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만난 사람이 주로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이라며 우리 과의 모범적인 교수 몇 분 성함을 거론하고 말았다. 부끄럽고 한심했다.

그해 나는 교내에서 발행하는 '대학신문'에 '술판을 뒤집자'라는 도발적 칼럼을 썼다. 총장부터 학생까지 술판에 의지하고 있는 서울대의 현실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반향이 상당했다. 총장 전화를 받았고, 여러 선배 교수들의 격려를 받았다. 이 칼럼이 약간 영향을 끼쳤는지 몰라도 술로 찌든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술이 사라졌다. 이후 나는 우리 대학 술판의 주적이 되었고 술자리에서 때때로 놀림을 받았다.

인문대의 음주문화는 인문학의 성찰과 역행한다. 허구한날 주야장천 술을 먹으면서 공부할 수 없다.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고 조직을 단단히 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그것으로 기회를 독점하고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그러면서 공부를 하고 깊은 사유로 내공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전에 선배, 선생님들 중에 외부에 허명만 높은 사람을 적지 않게 봐왔다. 제자들을 부려서 글 한 편, 책 한 권 내고, 위원장이다, 학장이다, 처장이다, 총장이다 하고, 세력을 과시하면서, 석학으로 꾸미는 것은 아무일도 아니다. 서울대 안팎에서 무엇을 맡았네 하면서 잘 차려 입고 낮은 목소리로 거룩한 말들을 천천히 주워섬기면 대중은 금방 압도된다. 세상은 그런 거짓에 쉽게 속는다. 학벌과 경력, 외국어 능력, 신뢰감을 주는 외양과 당당한 태도, 낮은 목소리. 전통의 신언서판과 통하는 이런 외적 요소들만 좋게 보이면, 술 없이 하룻밤도 못 버티는 술꾼이라도 자기 분야에서 별 업적과 실력도 없이 큰 학자로 알려질 수 있다.

술 먹고 딴짓 하느라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도 학자연하고 대접을 받으려면, 무성의하고 숙고 없는 글을 남발하거나, 다른 사람 글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다. 내 보기에 그런 사람들은 모두 학회보다 언론을 좋아한다. 그렇게 표절이 탄생한다. 여기에 자기들끼리 주는 상이 한두 개 더해지면 금방 석학으로 등극한다.

사실 그 교수의 표절 얘기는 사건이 생기기 일년 전부터 들었다. 지도학생의 아이디어를 표절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나는 그말을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교수가 그럴 리가 없고 학생의 오해로만 여겼다. 그러다 학회지의 공지를 알게 되면서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잘못 판단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학회의 표절 공지를 알게 되자 바로 학장에게 알렸고 학장은 대학 본부에 보고했다. 그 교수는 나의 이런 신속한 조치에 대해 서운해 했지만, 스스로 시인한 명백한 표절을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수 년 함께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나를 챙겨준 고마움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국문과 교수로서 이보다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고, 마침 부학장을 맡고 있어서 더욱 외면할 수 없었다. 문학은 물론 글쓰기의 윤리를 가르치는 국문과 교수에게 표절은 기초 자격과 관계된 문제이다. 표절 교수는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국문과에서는 가르칠 자격이 없다. 학위 표절이 밝혀지면 학생은 학위 취소와 더불어 퇴출시키는데, 표절로 밝혀진 선생이 자리를 유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막상 사건이 터지자 교수들의 반응은 서너 갈래로 나뉘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조직 내의 불미스러운 일로 여기고 덮어 두려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심지어 표절한 사람을 두둔하면서 표절 피해자 학생을 공격하는 교수까지 있었다. 그런 사람 중에는 평소에 남의 일은 옳고그름을 잘 따져서 목소리를 높이는 '진보 성향'의 사람도 없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이들은 내가 알기 훨씬 전에 표절 사건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함께 오래 술을 마시고 친분을 쌓아왔으니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그들은 연구부정을 묵인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 표절 지원 세력 외에 더 많은 교수가 자기 이해 외엔 관심을 보이지 않는 보신파이다. 이런 중차대한 일이 자기 조직 내에서 터져도 문제를 한번 따져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오불관언하는 교수들이다. 표절 교수가 뭘 했든, 내 월급, 내 연금이야 무사하겠지, 다만 그 사람이 처벌받는 전례가 생기면 우리 자리도 불안하지 않을까, 이런 염려나 하는 소시민이다. 물론 나도 여기서 얼마나 자유롭고 용감한지 자신할 수 없지만, 나처럼 심약한 사람 눈에도 심하다 싶은 교수들이었다. 정의감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일 자기 조직에 대한 최소한의 자긍심마저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내게 작금의 표절 사건들은 오래 쌓인 인문대의 고질이 비로소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한두 교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전반의 문화와 관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행히 상처가 곪아서 터지니 치유할 가능성도 있다고 여긴다. 몇몇 염려하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표절 규정을 정비하고 논문을 전부 조사하여 한바탕 정리하고 가자는 말을 한다. 요즘은 표절검사 프로그램의 성능이 좋으니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듯하다. 또 최근 수년 사이에 우리 인문대의 학술적 분위기가 크게 나아졌으니, 이번에 한번 판을 크게 흔들어서 도약의 전기로 삼아도 좋을 듯싶다.
#배철현표절의혹 #서울대교수표절 #논문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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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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