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다, 프러시안 블루

김대갑 소설가의 단편소설집을 읽으며

등록 2019.01.11 15:00수정 2019.01.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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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위키 백과를 보니 이 용어는 라이트 밀즈가 처음 썼다고 나와 있다. 이를 정리하자면 "거시적인 사회와 그에 속한 개인의 행위로부터 형성되는 관계를 인지해내는 능력", 또한 "사회 내 인과관계가 해당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김대갑 소설가의 <프러시안 블루>를 읽으면 이런 사회학적 상상력에 충실한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김대갑 플러시안 블루 ⓒ 지혜사랑

  
김대갑 소설가는 부산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했고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각종 사회과학 도서를 두루 섭렵한 전력(?)이 있다. 쉽게 말해 그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잘 체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쓴 소설도 사회적인 문제를 주제로 다룬 것이 많다.

그는 말한다. '소설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 내 다양한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그것이 현실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미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라고. 문학을 전공했지만 생계에 쫓겨 글쓰기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그였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만은 놓지 않아 꾸준히 소설 창작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는 오십이 넘은 나이인 2015년에 모 문예지에서 '오다야마 묘지'라는 작품으로 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그는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에 이미 부산에 관한 산문집 2권과 김해 가야에 대한 스토리텔링북을 출간한 작가였다. 그가 처음 쓴 책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2005년, 산지니)>였다.

이번에 실린 작품들의 무대와 모티프는 다양하다. 일본 후쿠오카와 부산, 양산, 충북 진천을 넘나들고 현재와 과거를 아우른다. 이 시대 청년들의 좌절과 희망을 보듬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마이너리그이긴 하지만>, 국민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세월호와 그와 연관된 사진작가들의 이야기를 그린 <플래시 촬영 방법>, 재일 조선인 3세들의 정체성과 디아스포라를 묘파한 <오다야마 묘지> 등은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초산 마을의 푸른 달빛>은 세조에게 반기를 들었던 이징옥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그의 동생인 이징규의 시선으로 세조와의 관계를 풀어낸 역사 소설이다. <농다리>는 충북 진천에 있는 천 년 된 돌다리를 모티프로 하여 생명으로서의 강을 지키고자 하는 우노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김대갑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민족의 젖줄인 4대강 사업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부산의 다양한 장소들이 등장해서 부산 사람들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기도 한다. 청사포와 달맞이 고개를 배경으로 하는 <프러시안 블루>, 금정산성을 주 무대로 하는 <안개가 깊어지면 는개가 된다> 등. 이런 장소성을 기반으로 하여 그는 사진과 건축, 역사, 여행 등 풍성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가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은 <플래시촬영방법>이라는 단편소설이다. 그가 이 작품에서 강조하는 것은 '피사체의 본질'이며, 그건 다른 말로 세월호 사건의 본질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피사체가 강제로 빛을 받을 때 그 피사체의 본질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한 점이 나타난다"고 한 것, 주인공이 결말에 사진을 불태우고 플래시 촬영을 하면서 한 점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 이것들은 아직도 규명되지 못한 세월호 사건의 본질을 밝혀달라는 은유적인 외침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건 그의 작품 의도이며 이 의도를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읽은 작품 중에 가장 감명 깊게 본 작품은 오다야마 묘지였다. 이 작품은 재일조선인 문제와 분단문제를 아우르는 육중한 소재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의 혼란과 비극적 현실을 조총련 조선학교 출신의 두 무용수를 통해 적실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김대갑의 이번 소설집은 매우 흥미로운 서사를 담고 있다. 그의 소설은 장소성을 바탕으로 한 사물의 유래담 등을 통해 인간의 에토스를 소설의 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함께 동시대 청년들의 불안정한 현실 또한 놓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냉정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소설가가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김대갑의 이야기들은 차갑지 않다. 사진가는 대상과의 일치를 통해 결정적 순간을 찾아낸다. 소설가 또한 고유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장소와 사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자신의 서사를 찾아내는 것이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어렵사리 단편소설집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참으로 힘겹게 글을 썼다. 앞으로도 나의 삶은 글쓰기에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내 소설 속에서 죽어간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원고 뭉치에 불을 붙여 그 재를 막걸리와 함께 바다에 뿌렸다. 탁한 색깔 사이로 배 한 척이 푸른빛을 내며 포구를 벗어났다. 저 배는 프러시안 블루의 바다를 헤쳐 나갈 것이다. 나 역시 문향(文香)의 바다를 오래도록 헤쳐 나갈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김대갑 #지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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