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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위험에도... 'PD수첩'이 실명보도 고수하는 까닭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543] 박건식 MBC < PD수첩 > CP

19.01.07 15:03최종업데이트19.01.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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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MBC 사장 교체 후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프로그램은 < PD수첩 >이다. < PD수첩 >은 과거 정부에서 행해진 방송 장악 관련 주제를 시작으로 검찰과 사법부, 종교 권력과 재벌 등 우리 사회 부정한 권력에 메스를 들이댔다.

그 결과 시청자들에게 < PD수첩 >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겁없이 뛰어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년 < PD수첩 >을 되돌아보고 올해 계획을 들어보고자 지난 2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박건식 CP를 만났다. 박 CP는 < PD수첩 >의 팩트체크 팀장으로 일하다 최근 < PD수첩 > 담당 부장이 됐다. 다음은 박 CP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박건식 MBC CP ⓒ 박건식 제공


- < PD수첩 > CP가 되신 지 한 달 좀 지나셨잖아요. 계속 < PD수첩 >에서 팩트체크 팀장으로 일했지만, CP는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내셨어요?
"2019년에는 어떤 기조나 내용으로 방송을 해야 할지, 그리고 포맷이나 형식은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해 회의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반기에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할지 등의 전략을 짜는 데 치중하느라 연말에 시간이 없습니다. 또, 프로그램과 관련돼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한 서면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 < PD수첩 >은 MBC를 넘어 대한민국 대표 탐사 프로그램이잖아요. 부담감도 클 것 같아요.
"부담감이 있지만,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죠. < PD수첩 >의 힘은 다른 프로그램이 미처 다루지 못하거나 않는 문제를 과감하게 접근할 때 생기는 거라고 보거든요. 예를 들면 지난해 <조선일보>를 상대해야 하는 고 장자연 사건이 있었고, 조계종·명성교회 등 거대 종교 권력이 있었고요. 국정원과 기무사령부, 검찰, 대법원 등의 권력기관과 포스코, 부영건설 등 대기업, 그리고 오현득 국기원장, 소리 공학자 배명진, 영화감독 김기덕 등 어느 하나 만만한 분야가 없었습니다. PD 개인으로서는 대단히 버겁고 부담스럽고 소송도 많지만, < PD수첩 >은 이런 거대 세력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잘 감시해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할 사명을 띠고 태어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2005년 5월 31일 < PD수첩 > 15주년 특집방송에서 당시 최승호 앵커는 '능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압력 때문에 피해간 적은 없다'라고 맺음말을 했습니다. 이 말이 황우석 제보자인 류영준 교수의 마음을 움직여서 < PD수첩 >에 황우석 연구 사기에 관한 제보를 하게 됩니다. 지금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PD들은 압력이나 두려움을 이기려는 부담감을 늘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담감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깨어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해는 < PD수첩 > 팩트 체크 팀장이다 이제 < PD수첩 > CP가 되셨잖아요. 하는 일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 PD수첩 >에 계속 같이 있었기 때문에 연속 선상에 있지만 팩트체크 팀장이 사실여부나 정확성, 오보를 막기 위해 치중한다면 < PD수첩 > 부장은 새로 기획을 많이 해서 취재 PD들에게 제시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일선 PD들은 취재하다 보면 바쁘거든요. 그러면 새로운 걸 돌아볼 여유가 잘 없어요.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게 < PD수첩 > 부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는 < PD수첩 >이 어떤 의미에서 행복한 한 해였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취잿거리가 많았거든요. 지난 기간 다루지 못한 적폐가 쌓여 있었어요. 대상을 정해서 돌진하면 됐던 해였습니다. 그러나 2019년은 달라진 것 같아요. 철저한 기획이 있어야 하고 정밀한 분석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문제를 치밀하게 고민해서 치열하게 다가가야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D수첩'은 기성 종교의 타락상에 주목했다. 공중파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기성 종교의 비리를 파헤친 건 이례적인 일이다. ⓒ MBC

 
- < PD수첩 >은 MBC 정상화 이후 가장 호평받은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지난 1년 어떻게 평가하세요?
"정신이 없었어요. 2017년 파업 기간 동안 한쪽에서는 계속 < PD수첩 > 준비를 했었어요. 팀이 암묵적으로 꾸려져서 KBS, MBC 공영방송 정상화 문제를 준비해서 방송했고요. 사법부, 검찰, 국정원과 기무사 등 권력 기관, 그리고 대형 종교 문제, 고 장자연 사건이나 김학의 전 차관 문제 등 그동안 다룰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이 돌아보지 않았거나 미처 접근하지 않았던 사례들이었습니다. 두려워서 접근하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서 < PD수첩 >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과감하게 그냥 돌진했던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문제에서 PD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용감하게 접근했고 '그래도 < PD수첩 >이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겁 없이 뛰어들고 있구나'라는 진정성이 어느 정도 전달된 한 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템을 꼽으라면 어떤 것인가요?
"영화계 등 미투 사건을 다뤘는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영화 권력인 김기덕 감독 등의 문제를 방송했습니다만, 그보다 저희가 더 주력했던 건 2차 가해, 2차 피해의 문제였습니다. 미투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2차 피해를 받는 여성들의 문제를 두 차례 방송했습니다."

- 지난해 < PD수첩 >이 소송도 많이 당하셨잖아요.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소송이 들어오는데 기분 좋을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소송은 저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는 당당하게 대응하면 되고요. 하지만 취재 기간 중 가장 바쁠 때 소송이 많이 들어와요. 예를 들어 방송금지 가처분 소송은 방송 해당일이거나 방송 전날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PD가 가장 정신이 없을 때거든요. 소송이 들어오면 준비서면을 만들고 법정에도 출석해야 하다 보니, 방송 준비 시간을 현저히 빼앗기고요. 두 번째는 소송 과정에서 자칫하면 취재원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소송을 충실히 준비하면서도 취재원 보호를 신경 쓰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소송이 들어오면 힘들긴 하지만 이건 < PD수첩 >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인물을 익명이나 가명 처리하고, 영상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면 소송 비율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급적 이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PD수첩 >은 소송의 위험성이 높아지더라도 가급적이면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

- 왜 그런 거죠?
"그것이 책임을 바르게 지우는 길이니까요. 김학의 차관이라 하지 않고 모 공직자로 했다면 안전할 수는 있겠죠. 고 장자연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정오라고 하지 않고 모 언론관계자라고 하면 편하고 소송에서도 안전합니다. 당사자가 특정되지 않으니까 소송 대상 자체가 안 됩니다. 방용훈, 방정오라고 하지 않고, 모 호텔 대표, 모 언론 간부 인사로 표현하면 소송에서는 안전하겠지만, 그게 책임 있는 언론일까요? 책임이 있는 자에게 정확한 책임을 지우고 묻는 게 언론이 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 PD수첩 >은 실명 보도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실명 보도의 또 다른 장점은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취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명을 걸고 보도했을 때 조금이라도 틀린 부분이 있으면 엄청난 소송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걸 PD들이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명 보도는 < PD수첩 >이 나아가야 할 길이자 원칙으로 삼고 싶습니다. 실명 보도에 따른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건 < PD수첩 > 구성원이 견뎌야 할 몫입니다."
 

2018년 12월 11일 방송된 < PD수첩 > 연말특집 1부 '2018년 대한민국과 PD수첩 - 침묵을 깬 용기'편 중 한 장면 ⓒ MBC

 
- 지난달 30일, <뉴시스>가 장자연 사건을 다룬 < PD수첩 > 방송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여러 곳 있다고 보도했어요.
"<뉴시스> 보도는 검찰 과거사위의 발표 등으로 오보로 판명 났습니다. 저희는 <뉴시스>에 이미 오보에 대해 정정 보도를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언론중재위 정정 보도 신청, 민사소송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뉴시스>가 보도한 쟁점 중 하나는 장자연씨 어머니의 기일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2008년 10월 28일은 어머니 기일이 아닌데 < PD수첩 >이 오보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 PD수첩 >의 보도가 맞고, <뉴시스>가 오보를 낸 걸 공식 확인했습니다. <뉴시스>가 근거로 삼은 건 가족들 제적등본인데, 거기엔 장자연 모친의 사망일이 10월 28일과 다르게 기재 돼 있다고 합니다. <뉴시스>는 제적등본의 날짜가 실제 사망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듯합니다. 

장자연 유족이나 검사에게 확인 과정을 거친 뒤에, 기일이 < PD수첩 > 방송에 나온 날짜와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면 그 다음은 < PD수첩 >에 연락해서 확인하는 게 순서잖아요. 하지만 저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뉴시스> 기자는 장자연씨 유족이나 검사 중 어디에도 확인하지 않았어요. 제적등본 하나만 보고 저희 프로그램을 오보라고 단정했습니다.

<뉴시스>도 데스크, 부장이 있고 편집국장이 있을 텐데 왜 이런 기사를 용인했는지 의문이에요. 확인과정도 없이 < PD수첩 >이 오보했다고 단정적으로 쓰는 것도 상식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언론사가 의심을 품는 건 당연합니다. 그걸 뭐라 할 수는 없죠. 다만 의심이 들면 확인 과정을 거쳐야죠."

- 아쉬운 점도 있을 거 같아요.
"인력, 여건이 충분치 않아 제보 온 내용을 바탕으로 대응해 나가고, 깊이 있는 중장기적 기획을 많이 못 한 것 같아요. 2019년 한 해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당면 가치나 방향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한두 개 정도 발굴 기획해 보고 싶습니다."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13일 사립유치원의 비리 백태를 고발했다. ⓒ MBC


- 2019년 < PD수첩 >은 8일부터 시작하잖아요. 올해 계획이 궁금해요.
"2019년은 2018년의 연속 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권력이라 하면 종교 권력, 언론 권력, 사학재단 권력, 대기업 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또 이러한 권력이 갑질로 나타날 수 있고 횡포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 PD수첩 >은 약자를 대변해서 권력 감시하는 게 존재 이유이자 본분인 것 같아요. PD들 개인들은 힘이 약하지만, 전체가 모여 지혜를 모으고 전문성을 개발하면 국민을 대신해서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 알 권리를 높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해 저희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의료와 건강, 경제 분야 등이었는데, 2019년에는 이 분야에도 신경을 많이 쓸 계획입니다."

-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국회 취재할 때 가장 힘들었어요. PD들이 상임위 취재를 위해 들어가려면 며칠 전부터 취재 협조 공문을 보내고 해당 상임위원장의 허락을 얻어야 해요. 저희는 출입처가 없어서 기자들처럼 정보가 빠른데도 아니죠. 이슈가 터져서 긴급 상임위가 열린다면 당일 급하게 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사전에 공문을 보내지 않아서 본관에 들어갈 수가 없대요.

더욱 황당한 것은 기자는 바로 되는데, PD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근거는 '국회 출입 기자 등록 등에 대한 내규'인데, 여기에 적힌 글자가 '기자'예요. 그런데, 이 내규의 '기자'라는 글자는 PD나 기자를 총괄하는 저널리스트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담당자에게 '기자'에 대한 정의조항이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해요. 그러면서 담당자는 내규 조항을 판단할 수 없으니 '기자'라고 적힌 글자대로만 판단하겠대요, 명함에 기자로 적혀 있으면 기자로 판단하고, PD로 적혀 있으면 기자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겁니다. 기자로 인정받으려면 기자로 명함을 바꿔 오래요. < PD수첩 >이 국회 상임위를 취재해 정책 보도를 하려고 해도 PD라는 이유로 접근 자체가 안 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도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고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국민을 대변하는 기관인 국회가 전향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건식 PD수첩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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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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