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 두고 '해외 유학'... 혹시 망설이고 있다면

[벌을 찾아 떠난 베트남 여행기 12] 달랏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 돌아본 여성의 삶과 꿈

등록 2019.01.14 13:27수정 2019.01.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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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겨울,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지내보겠다며 베트남의 달랏이란 곳으로 여행을 갔다. 달랏은 베트남의 남부지방에 있는 휴양도시로 유럽풍의 예쁜 집들이 호수를 가운데 두고 위치해 있다. 그림 속 풍경처럼 아름다운 도시다. 그래서 동양의 '작은 파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겨울 동안 선선한 달랏에서 지내보리라 생각하고 그곳으로 간 우리 부부는 며칠간 호텔에서 지내며 살 집을 구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집은 국립 달랏대학교 부근에 있었다.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 이승숙

  
달랏대학교에는 한국어학과가 있는데 베트남에서도 유명한 곳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달랏에 가게 되면 꼭 한국어학과를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달랏대학교의 한국어학과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지금으로 부터 십 년도 더 전인 2007년에 나는 중국 장쑤성(강소성)의 한 사범대학교 한국어학과의 강사로 초빙받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외국인을 가르치기 위한 한국어강사 자격증도 취득했기 때문에 필요 조건은 갖춘 상태였다.
  
가까운 친척이 그 학교의 한국어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어서 모든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얼마간의 월급에 교수 아파트까지 제공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못했다. 그때 만약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내 위상은 높아졌을 테고 중국어 또한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왜 그 좋은 기회를 잡지 않았던 걸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지금 같았으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갔을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기회는 또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 흘러간 물은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기회도 다시 오지 않았다. 몇 년 지나 내게 시간이 생겼을 때는 상황이 많이 변해 버렸고, 내가 가진 조건으로는 그런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했는데 '다음'이 또 있을 줄 알고 미루었다가 생긴 일이었다.

그때 내가 중국행을 포기했던 것은 남편 탓이 좀 있다. 그 당시에 남편은 아내 혼자 외국에서 생활한다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주부가 가족을 두고, 어떻게 혼자 외국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잠시 동안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서 적어도 일 년을 생활한다는데... 그는 도저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남편의 반응을 지레짐작한 나는 강력하게 내 의견을 내세워보지도 않고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베트남 국립달랏대학교에는 한국어학과가 있습니다. ⓒ 이승숙

 
더군다나 아이들도 한창 공부를 해야 할 나이였다. 큰 애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둘째는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그런 처지였으니 나는 차마 중국으로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가겠다는 마음조차 먹지 않았다. 그것이 자식을 위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십오 년도 더 전에 봤던 글이 떠오른다. <여성신문>에 연재가 되었던 여성학자 박혜란 선생의 중국 유학기였다. 박혜란 선생은 당신 자신의 이름으로도 당당히 불리는 사람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더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미뤄두었던 꿈을 찾아나선 엄마

박 선생은 대학교 아들 둘과 고등학생 아들 한명을 두고 중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중국의 연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본인도 배우기 위해 떠난 것이다. 그렇게 3년간 중국에서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어린 아이 둘을 키우는 젊은 엄마였는데, 박 선생의 글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당시, 대부분의 결혼한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더 이상 자신의 성장에 대한 기대와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박혜란 선생은 그런 여성들에게 길을 제시했다. 아내와 엄마라는 자리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보다 먼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달랏대학교의 한국어학과는 입학 성적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는 인기학과라고 합니다. ⓒ 이승숙

  
박혜란 선생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분명한 의지와 확고한 가치관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가족들의 이해와 성원이 있어서 중국 유학을 실행할 수 있었으리라. 지금도 주부의 유학은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삼십 년 전에야 오죽했겠는가. 박혜란 선생의 용기와 실천에 자극을 받은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으리라. 

몇 년 전, 남편이 잘 아는 분의 아내가 그림공부를 하러 프랑스로 갔다.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했지만 결혼과 함께 자신의 길을 미뤄두었던 분이었다. 막내가 대학에 합격하자 그 분도 자신이 꿈꾸던 길을 찾아 나섰다. 이십 년 이상 미뤄두었던 그림 공부를 하러 파리로 떠난 것이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남을 위한 삶

그 분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살림을 사는 주부가, 남편과 자녀를 두고 어떻게 자신만을 위할 수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온 그녀의 용기와 인내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가정을 가진 주부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바라보면 그녀의 프랑스 유학행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꿈을 가진 개인으로 볼 때 그것은 오히려 칭찬받고 응원을 받아 마땅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이 오십이 넘은 주부가 또 다른 나를 찾아 나선 그 길을 어찌 비난만 할 수 있으리오. 오히려 칭찬하고 응원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달랏대학교의 한국어학과 학생들. ⓒ 이승숙

   
현재에 안주하면 삶이 훨씬 더 편하고 쉬울 텐데, 그 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편의 아내, 자식의 엄마로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나 자신으로 서기 위해 힘든 길을 선택한 그 분의 용기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고 응원하고 싶었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결혼을 해서는 남편에게 기대는 것이 곧 여성의 미덕인 양 포장되기도 한다. 순하고 참한 아이, 현모양처 등등 여성에 대한 강요된 말들도 많다. 되도록 얌전하게, 남자의 말에 따르는 것이 여성이 취해야 할 도리라고 우리는 은연중에 배우고 체득했다.

나 자신으로 사는 게 가족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는 남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아내, 며느리, 엄마 등등, 그때그때 내가 선 자리에서 그 역할을 해낸다.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본 게 언제적인지 알 수도 없다. 아니, 나 자신으로 살아본 적이 있기는 했던가.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나는 내게 온 기회를 내버리고 방치했다. 그것이 어찌 중국행만이었을까. 남편과 자식 때문에 중국행을 포기했지만 사실은 내 탓이 더 크다. 내 의지가 강했더라면 나는 남편을 설득하고 아이들의 이해를 구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의 신뢰와 응원을 받으며 얼마든지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고 스스로 포기했다. 그래놓고는 늘 남 탓을 했다. 사실은 내 탓이 더 큰데 말이다.
 

달랏대학과 한국어학과 조교와 만나 한국어학과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들었다. ⓒ 이승숙

   
그후로 나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어리석음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다음에 하지 뭐' 또는 '내일 하면 되겠지' 하면서 일을 미루고는 했는데, '할 수 있으면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먹는다. 누가 내게 무엇인가를 제의했을 때 토를 달며 안 되는 쪽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쿨하게 받아들인다. "그러지요, 그렇게 합시다"하며 순순히 받는 내 자세는 사람들에게 내가 까다롭지 않고 편안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

베트남 달랏대학교의 한국어학과는 용기가 없어 가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길을 생각하게 한다. 남편과의 갈등을 피해서 스스로 내린 그 결정은 두고두고 내게 미련으로 남았지만 깨달음도 주었다.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교훈을 나는 얻었다.

'지금'에 충실한 삶, 행복으로 가는 길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은 행복을 내게 주었다. 내 곁에는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삶이리라.

달랏대학교 한국어학과를 둘러보며 지난 날들을 돌아보았다. 마음 한 편에 미련으로 남아있던 중국 사범대학교의 한국어학과 강사 자리도 이제는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길을 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매여 내 세월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잃은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말처럼 나 역시 '현재'에 충실하라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손해본 인생은 아니란 생각을 하며 오가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베트남여행 #달랏 #달랏대학교 #달랏대학교한국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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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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