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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긍정적으로 그린 이유는..." 일본 감독의 엄청난 경험

[인터뷰] '미래의 미라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 "일본 전쟁 장면 처음 넣어"

18.12.31 18:47최종업데이트18.12.3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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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미래의 미라이>를 연출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 영화는 오는 1월 16일 개봉한다. ⓒ 얼리버드픽쳐스

 
국내 팬들에겐 애니메이션 영화 <늑대아이> 등으로 잘 알려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말 그대로 가족과 공동체주의자라 할 수 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일상에 판타지 요소를 넣어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온 그가 신작 <미래의 미라이>로 새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4살이 된 쿤(키미시라이시 모카)은 여동생 미라이(쿠로키 하루)가 태어나면서 심통을 부린다. 엄마(아소 쿠미코)와 아빠(호시노 겐)의 사랑을 동생이 독차지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미운 4살 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미래로부터 동생 미라이가 다가오며 새로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미라이의 안내로 쿤은 엄마 아빠의 청년과 유년 시절, 나아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의 청년 때 모습을 만나게 된다.

달라지는 가족의 형태, 잘 바라보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고, 여러 세계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미래의 미라이>를 두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작품 구상 당시 세 살이었던 큰아들이 여동생이 태어난 것에 질투하는 모습에 영감을 얻었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언론 시사 직후인 지난 29일 서울의 모처에서 감독을 직접 만났다.

"일상 속에 굉장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며 감독이 운을 뗐다. 그의 말처럼 전작들이 대부분이 강한 일상성을 갖고 있다. <썸머 워즈>는 실제 외할머니의 모습이, <늑대아이> 땐 주변에 살던 신혼부부의 모습이 반영돼 있다고 한다. <미래의 미라이>엔 자신의 아내, 자녀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연까지 녹아 있다. 이 정도면 다른 수식어로 그를 '일상의 연금술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젊었을 땐 외국의 영화나, 그림 등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제 가족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많은 걸 느낀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무지하고 어른들에게 잘 교육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어른이 아이에게 배우는 면이 많다. 4살이었던 아이와 생활하며 작품을 준비해왔는데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그 시절을 한 번 더 사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막연했던 기억이 선명해지더라."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의 한 장면. ⓒ 얼리버드픽쳐스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의 한 장면. ⓒ 얼리버드픽쳐스

 
작품에서 감독은 계단식 복층 구조의 집, 아담한 마당과 큰 나무 한 그루 등을 설정해 일종의 상징들을 심어놓았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게 계단이고, 나무 역시 쿤 가족의 역사를 함축하는 중요한 대상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아마 눈썰미 있는 관객은 초반엔 쿤이 집안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다가 후반부엔 제법 잘 오르내리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라며 "쿤에겐 집 자체가 하나의 세상인데 온 세상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소소한 힌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감독에게 왜 가족과 공동체를 꾸준히 묘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2월 17일 열린 언론 시사회에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가족의 형태가 변하고 있는 만큼 그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단 <미래의 미라이>만 놓고 보면 가족과 육아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감독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 대답에 대해 좀 더 설명을 요구했다. 

"육아와 출산을 왜 그렇게 (긍정적으로) 그렸냐 물으신다면 지금의 세상이 정반대기 때문이라 말씀드리고 싶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한 명만 낳거나 출산율 자체가 매우 낮아지고 있다. 결혼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혼인 신고를 안 하고 사는 커플도 많고, 혼자 사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 추세를 전 반대로 바라보는 자세를 가지려 했다. <썸머 워즈> 때도 그랬다. 현대 사회는 계속 변하고 있는데 같이 가족과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보자는 취지였다.  

<미래의 미라이>에 나오는 대사들 중 제가 실제로 듣고 한 말이 많다. 아빠 역의 호시노 겐씨가 연기에 대해 물었을 때 실제로 난 그때 이렇게 했다는 식으로 말해주곤 했다. 영화에선 아이 뿐만 아니라 아빠의 성장도 자세히 드러난다. 제가 아이를 돌보게 됐을 때 아내를 계속 쳐다보곤 했다. 아내는 '날 보지 말고 아이를 보세요'라고 하더라. 그땐 그 말의 의미를 전혀 몰랐다. 의무감에 아내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한 건데 육아는 돕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 제겐 엄청나게 큰 변화였다."

 

"육아와 출산을 왜 그렇게 (긍정적으로) 그렸냐 물으신다면 지금의 세상이 정반대기 때문이라 말씀드리고 싶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한 명만 낳거나 출산율 자체가 매우 낮아지고 있다. 결혼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혼인 신고를 안 하고 사는 커플도 많고, 혼자 사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 추세를 전 반대로 바라보는 자세를 가지려 했다." ⓒ 얼리버드픽쳐스

 
작지만 귀한 존재들

아이의 시선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어른. 감독이 <미래의 미라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또 하나의 주제였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어린아이가 주인공이고, 이 세상 한구석에 있는 아주 작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주제 자체는 제 작품 중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며 "한 인간의 인생은 홀로 떨어진 게 아닌 여러 사람들과 이어져 있고, 한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현재와 미래, 내 부모와 내 부모의 부모 모습을 통해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이 반드시 어릴 필요는 없었다. 감독은 4살 쿤의 목소리 연기자 오디션 일화를 전했다. "실제 4살짜리가 오진 않았지만, 6살 어린이부터 50대 여성까지 오디션을 보러 오셨다"며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단순히 아이 역할이 아니라 가족의 역사를 알게 되고 본인에 대해 깨닫는 이야기인 만큼 어린아이에 가까운 목소리이기보다는 누구에게라도 공통으로 울림을 주는 목소리로 하고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쿤 역의 키미시라이시 모카는 17세의 배우. 감독은 "영화 초반부엔 어느 정도 위화감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로 데뷔 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일본과 전 세계 관객들에게 자신의 독창성과 일관된 주제의식을 전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처음은 어땠을까. <미래의 미라이>에 자전적 요소가 있고, 그 안에서 쿤이 처음 자전거를 타며 이리저리 넘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만큼 감독이 처음 애니메이션계에 입문했을 당시를 물었다.

"애니메이션 산업에 입문한 건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다.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매우 가혹하다는 얘길 들어서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는 알고 있었다. 토호라는 일본 내 대형 회사에 입사했는데 역시 소문대로였다. 월급은 적고, 미래가 보장되는 건 없었다. 심지어 (나는) 여러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도 못했다. 그림을 잘 못 그렸거든.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가 1991년이었다. 근데 마침 디즈니에서 <미녀와 야수>를 발표했다. 보고 나서 충격이었지. 애니메이션이 이렇게까지 멋진 거라면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한 인간의 인생은 홀로 떨어진 게 아닌 여러 사람들과 이어져 있고, 한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현재와 미래, 내 부모와 내 부모의 부모 모습을 통해 보이고 싶었다." ⓒ 얼리버드픽쳐스

 
<미래의 미라이>에 왜 전쟁이 담겼을까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말하는 이 작품에 2차 세계대전 일부가 묘사돼 있다. 쿤의 증조할아버지를 군인이자, 군수업체에서 일한 청년으로 설정한 것. 전범국인 일본의 역사를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다소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설정이다. 한 가족의 역사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분명 전쟁의 피해자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꽤 긴 시간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그 질문은 한국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볼 것을 알고 그런 설정을 넣었냐는 뜻이라면 당연히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영화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쟁영화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전쟁을 위한 전쟁 묘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단 한 번도 제 작품에 전쟁 장면을 넣은 적이 없다. 

2차대전이 끝나고 73년이 지났다. 세계가 모두 휘말린 전쟁이다. 가족 중 누군가는 전쟁을 경험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제 윗세대까지 그려내기 위해 그런 설정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모습이나 살상 장면이 아닌 우리 가족 중 전쟁을 겪은 분이 실제로 있고 가족의 역사로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 묘사할까 생각하다가 지금 영화처럼 넣게 됐다." 


이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영화에 전쟁 당시 모습이 4신 정도 나오는데 승리자,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시점이 아닌 서민의 눈으로 본 관점"이라며 "한국이나 중국 관객분들이 그렇게 봐주실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의 모델이 된 제 아버지 등이 전쟁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고 하고 싶진 않다"고 덧붙였다.

"그런 시대가 우리 가족에게도 있다는 점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든 대화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사람에 따라서 함께 악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로 그런 가능성에 기대보고 싶었다. 첨언하자면 영화에 담은 상황은 1946년 요코하마다. 연합군이 일본을 지배하면서 군수산업을 해체하고 비행기 등의 제작을 금지시켰는데 유일하게 허가한 게 오토바이였다. 그래서 일본 전역의 군수 공장이 오토바이 회사로 변하게 됐다. 그중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혼다나 야마하, 스즈키 같은 곳이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영화에서 왜 쿤의 증조할아버지가 다리를 절게 됐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고, 그게 이 가족의 역사에선 중요했기에 그려낼 수밖에 없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런 역사를 넘어 증조할머니를 만나게 됐고, 쿤이 태어나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 말미 감독은 기자에게 "그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며 "중요한 질문이었고, 필요한 이야기였다"고 속마음을 표현했다. 

개봉 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차기작 구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간 3년 단위로 작품을 발표한 만큼 오는 2021년 그의 신작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는 "정말로 2021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미래의 미라이>와는 정반대 분위기의 작품이 나올 것"이라 말했다.
 

"가족 중 누군가는 전쟁을 경험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제 윗세대까지 그려내기 위해 그런 설정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모습이나 살상 장면이 아닌 우리 가족 중 전쟁을 겪은 분이 실제로 있고 가족의 역사로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 묘사할까 생각하다가 지금 영화처럼 넣게 됐다." ⓒ 얼리버드픽쳐스

 
호소다 마모루 미래의 미라이 늑대아이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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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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