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모두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방법

평등한 세상을 위한 여성들의 기록 '불편할 준비'를 읽고

등록 2018.12.30 12:07수정 2018.12.3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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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할 준비>(시사in 북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한 사회적 차별에 맞서며 평등 세상을 향해 나가는 여성들의 기록이다. 직장 내 성폭력에 침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긴 이은의 변호사,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이 설명하는 생리와 낙태죄,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박선민 국회 보좌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은유, 드라마를 통해 페미니즘의 역사를 짚어 본 오수경이 그들이다.
 

불편할 준비 페미니즘을 찾아가는 다섯 개의 지도 ⓒ 시사 in 북스


이은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자신이 당한 성희롱에 문제를 제기했다. 직장에서 오히려 왕따를 당하고 승진에 누락되면서 벼랑 끝에 선 마음으로 소송을 시작한다. 승소를 한 후 사표를 내고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된다.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고발한 당사자가 겪는 어려움은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일이다.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다양한 모습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주변인은 양비론과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사건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고 곁에서 함께 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투 이후의 싸움은 피해자 혼자 짊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럴 때 주변인으로서의 역할을 좀 더 강조하고 싶어요. 당사자가 되기보다 주변인이 될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요. 이런 일이 생겼을 때는 사람과 사건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에 대한 평가 같은 걸 보지 발고 그 사건 자체를 바라보시라.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미투' 시건이 터지면 주변에서 피해자를 멀리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 당사자와 밥 한끼 먹어주고, 단 10분이라도 그가 하는 얘기에 귀 기울여주는 게 당사자가 싸움을 버티게 하는 큰 힘이 된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스크린 너머 '미투'나 '위드 유'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세이브 투게더'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43쪽

요즘 '낙태죄 폐지' 여부에 대한 찬반 논쟁이 치열하다. 자궁에 착상 된 후 얼마가 지나면서부터 생명으로 인정해야 할지는 의학적, 과학적, 종교적 견해가 달라 논쟁의 쟁점이 되어 왔다.


종교계는 착상 순간부터 태아의 존재를 인정한다. 과학적으로는 10주까지, 의학적으로는 12주까지 생명권 논외 범위가 된다. 12주 이후는 태아 생명권을 인정해 임신 중단은 대부분 금지되어 있다.

'산부인과 사용설명서-생리에서 낙태죄까지'라는 강연을 진행한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재생산권에 대한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한 마디로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몸의 주인인 여성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재생산권 개념은 "누구나 자유롭고 책임있게 누구와 섹스를 하고 언제 임신, 출산할지를 계획하고, 임신을 지속할지 중지할지 결정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건강과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 권리, 성적 건강, 재생산 권리, 재생산 건강의 개념을 포함한 것이 재생산권이다.

재생산권 중에서 유독 임신의 지속 여부에 관해서는 여성 심신의 건강 여부와 상관없이 태아의 건강 여부만을 따져 낙태의 죄를 묻는 셈이다. '낙태죄 폐지'는 생명을 경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낙태죄를 폐지한 경우 낙태율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낙태를 합법화한 프랑스의 경우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고 낙태율이 낮다고 한다.

임신의 지속 여부를 법이 아닌, 여성 자신에게 맡겼을 때 오히려 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성이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자신 안에 자라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심사숙고하며 임신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으로 단속한다고 낙태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음성적인 불법 시술로 여성의 몸이 망가지고 생명을 잃기도 한다. 생명을 경시하지 않으면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법을 개정하는 절차를 통해 범죄자를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남성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동등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적 시각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 사회 기득권을 쥔 남성들에게는 도전으로 느껴지거나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절반의 여성만이 아니라,  힘겹게 버티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끝없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남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차라리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고 남녀가 편견 없이 손에 손을 잡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훨씬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몸과 마음과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 생물학적 성으로 차별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양성 모두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방법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자. 평평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겠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불편할 준비> 이은의. 윤정원. 박선민. 은유. 오수경/시사 in 북스/ 15,000

불편할 준비 - 페미니즘을 찾아가는 다섯 개의 지도

이은의,
시사IN북, 2018


#재생산권 #미투 #위드 유 #세이브 투게더 #낙태법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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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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