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유해진이 작사-작곡까지... 놀라운 그의 연기 디테일

[인터뷰] 영화 <말모이> 김판수 역 맡은 배우 유해진

18.12.22 09:40최종업데이트18.12.23 14:06
원고료로 응원
 

배우 유해진이 새해 초 <말모이>라는 영화로 관객들과 만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 시기로만 따지면 2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설정과 구성의 묘미가 돋보인 <완벽한 타인>에서 까칠한 가부장적 남편이었던 유해진이 내년 1월 개봉할 영화 <말모이>에선 한글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진 '보통 사람'으로 분했다.

'순두부, 목화솜, 탈지면 같은 영화' 유해진의 입에서 각종 비유가 튀어나왔다. 그만큼 착한 영화라는 뜻이었다. "버라이어티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자칫 지루할 수도 있고, 그런 게 좀 걱정이긴 했다"며 유해진은 "그럼에도 참신한 이야기였고, 이런 착한 영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의 힘

그가 맡은 김판수라는 인물을 놓고 보면 전작 <택시운전사> 속 만섭(송강호)과 닮아있다. <택시운전사>의 시나리오를 썼던 엄유나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고, 제작사 역시 <택시운전사>의 더 램프다. 만섭 캐릭터의 조력자였던 황태술(유해진)이 각성한 캐릭터가 <말모이> 속 판수라고 생각해도 무리 없을 정도. 1940년대 조선어학회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주요 캐릭터가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반영하고 있는 데 비해 판수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만큼 유해진의 해석이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말모이> 이야기를 제작사 대표님이 했다. 엄 감독님이 절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고 계시다라는 얘길 들었지. 고마운 일이지. 왜 그러셨을까 물으니 제가 말맛을 잘 살릴 것 같다더라. 한글에 대한 이야긴데 고마우면서도 부담이 없진 않았지. 말맛을 제가 잘 살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준비했다.

기본 골격이 <택시운전사>와 비슷하다는 것에 걱정은 전혀 없었다. 구성은 비슷한데 사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분들에겐 실제 역사를 환기시키고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지 않나. 그게 이 영화의 목적이기도 하다. 저도 영화 찍으면서 의식적으로 외래어를 조심하려 했다. 기자님들 세계에도 일본말이 많다고 들었다. 영화 쪽에도 많거든. 조금만 신경 쓰면 대체할 말을 찾을 수 있어서 촬영할 때 일부러라도 그런 말을 안 쓰려 했다."


이야기 초반 판수는 그저 먹고사는 문제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에 있었지만 그럴수록 판수는 더 능청맞게 처세하며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장. 그런 인물이 조선어학회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며 극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겨 있다. 유해진은 "글을 몰랐던 사람이 글을 알게 되고, 더구나 그걸 지키려 노력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부모로서도 한심한 인물이 이후에 진짜 좋은 아버지로 성장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야 했다"고 전했다. 
 

김판수(유해진 분). ⓒ 더 램프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숨은 디테일들

그래서 판수를 더욱 실재감 있게 표현해야 했다. "역사 속 인물이 아니기에 더 자유로운 면도 있었다"며 유해진은 "아들 학비를 갖고 술 사 먹고, 깽판을 치던 사람이 조선어학회에 들어가면서 성장하는 건데 사실 좀 더 강하고 독한 면으로 준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판수가 다른 학회 사람들같이 어떤 큰 사명감을 갖고 행동하진 않았을 것 같다"며 "한글에 눈 뜨게 되고, 아들 덕진과 딸 순희가 창씨개명 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아이들 이름만큼은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이 해석한 바를 소개했다.

보통 사람의 극적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위해 유해진이 준비한 건 디테일이었다. 평소 유해진은 한 장면을 찍더라도 현장에서 여러 테이크를 요청해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할 정도로 캐릭터를 세밀하게 준비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정답은 없으니까. 연기라는 게 정답은 없거든. 이런 거 혹은 저런 건 어때요? 하면서 제안하는 편이다. 그래야 편집실에서 선택하기 쉬울 수도 있으니. 연기라는 게 어쩌면 <말모이>처럼 정확한 말을 찾아가는 작업같기도 하다. 제게 연기를 알려주신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늘 하던 말씀이 있다. 배우는 무대에 서기 전까지 의심해야 한다고. 

작가와 감독의 시나리오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전 작업할 때 감독님께 왜냐고 많이 묻는다. 제가 알고 표현해야 관객분들도 알 거 아닌가. 모른 채 연기하면 관객은 반드시 눈치를 챈다. 항상 의심한다. 남에 대한 의심도 있지만 제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포함된다. 그래서 감독님들이 힘들어한다(웃음). 만날 왜냐고 물어보고 있으니. 근데 작품 이야기가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오래전부터 <말모이> 이야기를 제작사 대표님이 했다. 엄 감독님이 절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고 계시다라는 얘길 들었지. 고마운 일이지. 왜 그러셨을까 물으니 제가 말맛을 잘 살릴 것 같다더라. " ⓒ 롯데엔터테인먼트

 
<말모이>를 관람할 재미를 뺏지 않기 위해 유해진이 준비한 디테일을 지면에 다 공개할 순 없다. 영화 초반 판수의 차림새나 말투와 후반부의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는 걸 추천한다. 참고로 판수가 연필을 쥐는 모습은 김성수 영화 감독의 모습에서 따왔고, 툭툭 침을 뱉는 모습은 어렸을 때 자주 스쳤던 동네 아저씨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취한 채 흥얼거리는 노랫말 또한 영화를 위해 유해진이 직접 작사, 작곡한 결과물이었다.

"잘 보면 잠바... 잠바라고 하는 게 맞나? 자켓? 거기에 지퍼도 일부러 고장을 냈다. 노래 같은 경우는 당시 시대를 잘 드러낼 가사를 생각하면서 쓴 것이다. 옛날엔 소가 최고였거든. '노다지를 캐면 황소를 사고, 남은 것으로 술을 사 먹자~' 이런 가사였는데 써놓고 나서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웃음).

(혹자는 '촬영장에서 예민하다'고 하는 것에 대해) 물론 현장에서 즐겁게 하는데 그냥 흘러가게 두진 않는다. 촉을 세우는 편이다. 좋은 걸 고민하면서 끝까지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이상 뭐가 있을까 그 생각을 계속 하는 편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기자님도 원고 하나를 넘기기 직전에 날카로워지잖나. 저도 연기를 넘기기 전에 여러 차례 검토하고 수정하는 것이지(웃음)."


한글을 익히면서 그 정신에 눈을 뜬 판수처럼 실제 유해진 역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배우는 편일까. "특별한 경험으로 단번에가 아닌 서서히 바뀌는 것 같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나이 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이를테면 생각 없이 흥얼거리는 노래 가사가 새롭게 들리거나, 흘려보낸 일들을 다시 생각하는 일이 있다. 사람을 보는 시각도 변하는 것 같다. 친구들을 볼 때도 대수롭지 않게 그냥 곁에 있는 이들이라 생각했는데 조금은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음...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요즘 한다."

새해를 여는 영화가 <말모이>라는 것에 유해진 역시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어 보였다. "1년으로 치면 아침에 해당하는 시기엔데 순하고 든든한 걸 먹고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라며 은근하게 영화의 관람을 권했다. 
유해진 말모이 윤계상 조선어학회 일제강점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