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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과 대등했던 여성 "관객들 결말에 실망할까봐..."

[인터뷰] 뮤지컬 <루드윅> '마리' 역 배우 김려원

18.12.20 14:45최종업데이트18.12.2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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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려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보통 첫 공연 때는 반응이 바로 일어나지 않는 편인데, 관객분들께서 첫 공부터 기립해주셔서 울컥했어요."

2018년을 쉴새 없이 달려온 김려원은 뮤지컬 <루드윅>의 첫 공연 반응을 이야기하며 "모두 고생하며 만든 작품인 만큼 애착이 간다"고 했다. 뮤지컬 <루드윅>은 대학로 최고의 히트 콤비중 하나로 꼽히는 추정화 연출, 허수현 음악감독의 신작이다. '모차르트'에 비해 관객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소개됐던 '베토벤'을 소재로 해 그가 가진 거장이라는 칭호 이면에 숨겨진 꿈과 열정, 음악 속에서 고뇌하던 모습을 담아냈다. 허수현 음악감독의 장기를 살려 피아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음악은 개막 이후 꾸준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1월 30일에 만난 공연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JTN아트홀에서 뮤지컬 배우 김려원을 만났다. 김려원은 <루드윅>에서 실존하지 않았던 가상인물인 '마리' 역을 맡아 관객을 만나고 있다. 여성은 교육을 받기도 어려운 시절, 건축가의 꿈을 키워가며 베토벤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가는 인물인 마리는 주인공 못지 않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역할이다. 베토벤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등장해서 남성 이상의 열정과 노력으로 천재 베토벤을 일깨워준다. 그녀는 '베토벤과 대등한' 여성 인물이라는 중책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배우 김려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자기소개가 제일 부끄러운 것 같아요(웃음). 무슨 역이든 잘하고 싶은 뮤지컬 배우 김려원입니다."

- 무대에선 밝고 활발한 이미지를 많이 선보였는데 전혀 다른 느낌이네요.
"저 사실 엄청 떠는데 다들 당차보이나봐요. 어제(첫공연)도 우황청심환 먹었거든요. 혹시 몰라서 <젊음의 행진> 때 먹고 남은 거 챙겨갔는데 먹었어요. 극장이 작을수록 오히려 떨려요. 극장이 크면 뵈는 게 없잖아요(웃음)."

- <루드윅>이 어떤 작품이길래 그렇게 떨었는지 궁금합니다. 본인이 맡은 '마리' 역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맡은 '마리'는 가상의 인물이에요. '베토벤'과 '카를'은 실존인물이지만요. 그래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이 역할이 그들에게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게 해야되거든요. 추정화 연출님께서 힘을 많이 실어주셨어요. '루드윅'과 '마리'가 동등한 위치에 서길 원하셨어요.

원래 저는 '마리'의 역할을 조연 정도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연출님께 이야기를 들으니 마리의 역할이 크게 다가왔어요. 언니 동생들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고민이 컸죠. 극에서 출연하는 시간 자체는 길지 않지만, '한 방'이 있는 인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어제 첫 공연을 올렸다고 했어요. 관객들 반응은 어떤가요.
"공연장엔 여자 관객분들이 많잖아요. 관객들께서 '마리'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해주시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면 여성 캐릭터는 보조적인 역할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마리'는 그걸 넘어선 것 같아요. '마리' 자체도 건축가라는 꿈이 있고 이유가 있죠. 극에서 직접적으로 '마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진 않지만, '마리'의 서사를 고민하고 대본도 많이 수정하며 혼자 서있을 수 있는 여성이 되려고 했어요.

라이선스도 아니고, 저희가 만든 거니까 더 떨렸죠. 분량이 제한적인 만큼 말의 순서나 어미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니까 계속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쳤죠. 모두의 피와 땀이 들어있는 인물이에요. 제 생각에 '마리'는 할 말은 하는 여자에요. 좀 아쉬웠던 점은 극 끝에 수녀님이 되는 것을 보고 관객분들께서 '마리는 결국 꿈을 이루는 것에 실패했다'고 여기실지도 모른다는 점이에요. 당시 시대에는 여성이 그런 활동을 벌이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건축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이후의 세대를 생각하며 고등교육을 가르칠 수 있는 수녀가 되려고 한 것이거든요. 이것도 '수녀'가 가지는 이미지 때문인 것 같아서 아쉬워요."

- <루드윅> 연습이 무척 바빴다고 들었습니다. 연습과정을 듣고 싶어요.
"최근 몇 주는 <루드윅>에 집중했어요. 보시는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배우들 입장에선 정말 배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극이거든요. 다들 연습할 때 정말 힘들어했어요. '이걸 몇회나 해야한다'면서요(웃음). 연습실에서부터 정말 치열했죠. 극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펑펑' 울거든요. 그리고 연습 초반에는 대본이 계속 바뀌었어요. 배우들도 계속 다양한 의견들을 내니까 소위 '멘붕'이 왔죠. 연출님조차 이렇게 될까? 어떻게 하지?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요. 그렇지만 다행인 건 연출님께서 이렇게 주고 받은 이야기를 토대로 밤을 새서 대본을 고쳐오셨어요. 작가와 연출이 따로였다면 불가능한 스케줄이었을 거에요."

- <블루레인>에 이어 추정화 연출과 함께하고 있어요. 어떤 연출가라고 생각하나요?
"추정화 연출님은 무척 확고한 면도 있는데 반면 배우 출신답게 열려있는 면도 있고,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세요. 그래서 매일매일 다른 대본이 만들어지면서도 순조롭게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블루레인> 때는 처음 뵙고 딤프(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스케줄이 빡빡하다보니 너무 열정적이셔서 저는 말도 못 꺼냈거든요(웃음). 그런데 <루드윅>하며 소통하시는 걸 보고 열려있는 분이구나 했어요."
 

배우 김려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 추정화 연출 작품에는 익숙한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는 편인데, 이제 배우 김려원도 그 대열에 합류한 게 아닐까 싶어요. 어떻게 처음 함께하게 됐는지도 궁금하네요.
"<블루레인>은 사실 작년에 하기로 했고 오디션을 봤는데 좀 흐지부지됐다가 올해 연락 받고 함께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론 연출님께서 저를 분에 넘치게 예뻐해주신다는 마음이 들 정도에요. 전 안 예쁜 것 같은데(웃음)… 그래서 너무 감사하죠. 연습하시면서도 제게 계속 '너무 예뻐', '넌 대체 부족한 게 뭐니?' 이러실 정도에요(웃음). 누가 보면 지능적 안티처럼 보일 정도에요. '너는 너무 잘될 것 같아', '나 모르는 척 하지마' 이러세요.

아무래도 여자 선배님들이 후배들을 많이 예뻐해주세요. 좀 미운짓을 해도 사랑스럽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블루레인> 때는 <이블데드>랑 <젊음의 행진> 때문에 진짜 너무 바빴거든요. 배우들이 모두 <블루레인> 말고도 하고 있는 작품이 있어서 연습도 정말 힘들게 했고요. 그래서 <루드윅> 때는 다른 스케줄이 좀 겹칠 수도 있다고 미리 말씀드렸는데 추정화 연출님께서 제가 꼭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해주셔서 합류하게 됐죠. 마침 다른 스케줄이 다 없어져서 잘됐죠(웃음)."

- 뮤지컬 <루드윅>은 그간 추정화 연출 작품의 스타일과 좀 다른 느낌이에요. <인터뷰> 이후 너무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들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루드윅>은 그런 표현이 절제되며 '힐링'에 초점을 둔 느낌이에요.
"베토벤에 관한 책도 보고 지금도 계속 정답을 찾아가고 있어요. '베토벤'과 조카 '카를'의 사이에 있던 역사적 사실을 베이스가 된 작품이거든요. '베토벤'은 조카를 후계자로 키우려고 했는데 '카를'은 음악을 원하지 않았고, 자살시도까지 했지만, 총이 지금처럼 짧은 게 아니라서 머리 위쪽으로 빗나가서 살았대요. 그걸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지만, 강한 표현보다는 꿈과 사랑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에요. 베토벤의 위인전이나 음악세계를 표현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루드윅>처럼 기분좋게 나올 수 있는 극들도 좀 더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그럼 '베토벤'이 아닌 뮤지컬 <루드윅>을 관객들이 봐야할 이유는 뭘까요?
"'베토벤'의 이야기를 다룬 정식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베토벤'을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의 인간적인 면, 꿈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좌절의 시기가 있을 거고 장애가 있을 텐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많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사랑은 받는 사람이 원하는대로 주는 게 사랑이란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직접 보러 오셔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예술은 개개인이 느끼는 점이 다르니까요."

- 조금 민감한 주제를 이야기해보죠. 앞서도 계속 '마리'의 능동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대학로에서는 최근 대부분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나 표현에 있어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있었거든요. <루드윅>은 그것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로 봐도 좋을까요?
"최근에는 주도적인 면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들에 대한 반응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품들이요. 모두가 느꼈던 것 같아요. 여성 인물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공연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요. <루드윅>의 '마리'도 분명히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주인공과 주요 서사가 있다면 조연들에게 보조적인 역할이 주어지는 것도 당연한 건데 그런 역할을 상대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처한 여성들이 맡게 되기 때문에 더 아쉽거나 서운해하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부딪히는 과도기가 아닐까요?"
 

배우 김려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 그럼 다시 배우 김려원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올해는 김려원의 해라고 할 수 있겠어요(웃음). <젊음의 행진>, <이블데드>, <블루레인>, <오디너리데이즈>, <루드윅>까지 다섯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올해 어쩌다보니 다섯작품이나 했어요. <젊음의 행진>에선 처음으로 '영심이'도 했고요. <이블데드>에서는 '애니'와 '쉐릴' 1인 2역도 했죠. 관객분들께서 둘이 동일인물이라는 걸 못 알아보시면 아주 큰 행복이에요(웃음). <오디너리데이즈>는 괴짜 대학원생. <블루레인>에서는 우울함을 담은 역할이었고 <루드윅>의 '마리'는 당차고 꿈꾸는 여성이죠.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게 기뻐요. 앞으로도 계속 주어지는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해내고 싶은 사람이 될 거에요. 키가 좀 커서 작고 소중한 역할은 못 하겠지만요(웃음).

사실 작년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진지한 역을 맡았을 때 어색해하는 관객분들도 계셨어요. <이블데드>나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밝고 재밌는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하지만 올해는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그런 이야기도 좀 들어간 것 같아요."

- SNS를 보면 동생 자랑을 많이 하더군요. 자매가 배우로 활동하는데서 오는 좋은 점이 있나요. (*김려원의 동생 김려은 역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너무 좋고 애틋해요. 려은이는 제 선생님이자 가끔 매니저도 돼요. 어제 첫공도 모니터 와서 이런저런 점을 이야기해줬어요. 제가 어떤 오디션 볼 때도 집에서 미리 보여주곤 해요. 그뿐만 아니라 공연 연습 때도 와서 이 부분이 좋았고 저 부분은 어땠고 이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무척 디테일하게 대본을 봐줘요.

<루드윅>도 어제 보더니 연습 때보다 많이 정리됐다고 해주더라구요(웃음). 다른 사람들이 말하면 상처받을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동생은 제가 잘되길 2000% 바라는 사람이니까 기쁘게 듣고 있어요. 진짜 매니저처럼 운전도 해주고 일을 봐주고 그럴 땐 약간씩 수고비도 지불하고 있어요(웃음). 그런데 그걸 당연하게 받지 않고 늘 고마워해줘서 제가 더 고맙죠."

- 마지막으로 배우 김려원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저는 계속 크고 작은 걸 가리지 않고 공연을 통해 관객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에요. 자주 만났으면 좋겠어요. 사실 너무 자주 와주시고 선물도 주시면 제가 오히려 미안하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요(웃음). 관객분들이 삶의 활력소가 되니까 걱정말라고 하시네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려원 뮤지컬 인터뷰 루드윅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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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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