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시위보도, '노란조끼'로 드러나다

민언련 방송 모니터 보고서

등록 2018.12.07 17:16수정 2018.12.0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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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7일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가 3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와 권위주의적 태도에 대한 불신이 쌓여온 상황에서 최근 유류세 인상 발표가 불씨를 댕기면서 시작된 것인데요.

시위가 격해지면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문화재가 파손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프랑스 내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시민들이 시위대에 우호적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결국 유류세 인상은 연기되었는데요. 당사자인 프랑스 시민이 지지하는 이 '노란조끼' 시위를 대한민국의 언론이 폭동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쟁터' '아수라장' 운운하며 시위 폭력성 부각시킨 TV조선

TV조선 <불타고 깨지고…파리는 지금 전쟁 중>(12/3 임유진 기자)는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유명 관광지 파리가 전쟁터로 변해버렸습니다" "샹젤리제는 전쟁터가 돼버렸습니다" "샹젤리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돼버렸습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화면에서도 파괴된 문화재, 불타는 차량, 습격 받은 상점 등을 차례로 보여줬습니다. 시위의 폭력성만을 부각하고 시민들을 폭도로 묘사해 시위의 정당성을 떨어뜨리려는 후진적 시위보도 공식을 프랑스에 적용한 것입니다.
 

‘아수라장’ ‘전쟁터’라며 시위현장 전달한 TV조선 <뉴스9>(12/3) ⓒ TV조선

 
TV조선은 이 보도를 포함해 3일과 5일에 각각 2꼭지와 1꼭지씩을 보도해서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에 가장 관심 많은 언론사로 꼽을 수 있습니다.

'폭력시위에 개혁 좌초했다'며 마크롱 동정한 채널A

채널A <파리 초토화…폭력시위에 항복>(12/5 김윤정 기자)도 마찬가지로 폭력시위 프레임을 사용했습니다. "만 40세인 젊은 대통령 마크롱이 프랑스 파리를 뒤덮은 폭력 시위 앞에 굴복했습니다"라는 김승련 앵커의 멘트로 시작된 이 보도는 "역대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마크롱 정부의 개혁이 좌초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끝맺었습니다. 폭력적인 시위대 때문에 개혁적이고 젊은 대통령의 정책이 좌초됐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실일까요?
 

마크롱식 개혁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는 채널A <뉴스A>(12/5) ⓒ 채널A

 
우선 마크롱 대통령이 '굴복'했다는 대상은 폭력시위가 아닌, 국민의 싸늘한 시선이었습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중 80%가 '노란조끼' 시위를 지지했으며, 반면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11월 지지율이 25%로 사상최저였습니다.


처음엔 마크롱 대통령도 폭력시위에 불관용 원칙을 천명했지만 노란조끼 시위대를 향한 국민 지지가 몇 주째 가라앉지 않자 국민의 뜻에 '굴복'한 것이었습니다. 대다수 시민들이 마크롱식 개혁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해당 보도에 일언반구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마크롱식 개혁'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프랑스 시민들이 정합니다. 대다수 시민들의 삶을 박탈시킨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닌 정부의 폭력입니다. 남의 나라 정책을 한국 기득권의 입장에서 호평하고 그것을 반대하는 프랑스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가는 채널A의 보도는 유감스럽습니다.

프랑스 정부 입장만 전했다가 다음날 개선한 MBC

MBC는 하루 간격으로 나쁜 보도와 좋은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먼저 3일자 보도인 MBC <'폭력 시위'에 얼룩진 '똘레랑스'…"개선문도 훼손">(12/3 박선하 기자)는 프랑스 정부 입장에 충실했습니다. 이재은 앵커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라며 시작한 보도는 시위대에 대한 악평들을 전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리포트에서 인용한 주장들은 편파적이었습니다. "외신들은 지난 2005년 이민자 청년들의 3주간 소요사태 이후 최악의 시위라고 평가했습니다"라든지, "당초 유류세 폭등에 항의하는 중산층들의 시위로 출발했지만, 일부 급진세력들이 가세하면서 폭력사태로 변질됐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주장입니다" 등 시위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주장들을 일방적으로 전했습니다.

시위대 측 주장으로는 "국회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이웃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죠"라는 한 남성의 표면적 의견을 전할 뿐이었습니다. 시위가 촉발된 배경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거나, 시위에 대한 프랑스 시민 일반의 입장을 전하려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프랑스 정부 측 대변인 역할 수행한 MBC <뉴스데스크>(12/4) ⓒ MBC

 
해당 보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온 것이었을까요, 다음날 보도 MBC <부유세 없애고 해고는 쉽게…"부자만의 대통령" 폭발>(12/4 한동수 기자)에서는 시민들이 시위를 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전했습니다.
 

시위 촉발 원인 분석한 MBC <뉴스데스크>(12/5) ⓒ MBC

 
마크롱 정부의 친기업 정책들이 시민들 불만을 누적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크롱 정부의 '불통'에 대한 비판도 전했습니다. 마크롱 정부가 노란조끼 시위를 "소득불균형, 높은 실업률 등 내재된 갈등 요인은 무시한 채 급진 세력들의 과격 시위로만 몰아"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전 자사의 보도도 마크롱 정부와 비슷한 시각으로 시위를 그렸습니다.

시민 입장에서 전한 JTBC

정부가 아닌 시민을 대변한 보도는 JTBC였습니다. JTBC <'노란 조끼' 시위, 서민층의 또 다른 '외침'으로...>(12/4 김성탁 기자)에서는 "정부는 일부 급진세력이 시위를 주도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대다수 노란 조끼 시위자는 양극화로 인한 생계난을 호소합니다"라며 시민들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22년간 일했지만 월급이 1400유로(약 176만원)에 그쳤다는 한 철강노동자의 말에 의하면, 서민들의 생활이 이러한데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이 50만 유로(약 6억3천만 원)를 들여 엘리제궁의 연회실을 새로 꾸민 것에 분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시민 입장에서 시위 원인 전한 JTBC <뉴스룸>(12/4) ⓒ JTBC

 
다음날 보도인 JTBC <'노란 조끼' 분노에…마크롱, 유류세 인상 연기>(12/5 김성탁 기자)에서는 소셜미디어 상에서 반정부 여론이 퍼져나간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 분석했습니다. 프랑스 시민 70%가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유일하게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번 프랑스 시위는 남의 나라 일이지만 우리의 일이기도 합니다. 언론이 '노란조끼 시위대'를 바라보는 방식은 우리 언론들이 3년 전 민중총궐기 대회, 재작년과 작년 촛불혁명, 올해 광화문, 여의도, 혜화역 등지에 저마다의 이유로 모인 시민들을 바라보는 방식과 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손상된 차벽과 각목에 맞은 의경들, 교통 혼잡을 걱정하는 척 정작 시위대의 절박한 목소리는 묵살했던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보도가 겹쳐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프랑스 시민들이 괜찮다는데 한국 언론이 그들의 시위를 폭력적이라며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입니다. 프랑스의 시위 문화는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국왕의 목을 쳐내고 스스로 민주화를 이룬 프랑스 시민들의 저력이 두려운 나머지 지구 반대편 프랑스 정부의 입장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한 기자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도 실립니다.
#노란조끼 #프랑스 #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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