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댓글=손자병법" 판사, 미리 '무죄 결론' 내렸나

검찰, 공판 전 작성된 '판결문 초안' 발견... 김시철 부장판사 "통상 업무" 해명

등록 2018.11.13 16:59수정 2018.11.1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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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으로 풀려난 원세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2015년 10월 6일 오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수감된지 24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2심 실형선고로 구속 되었다. ⓒ 이희훈

 
[기사 보강 : 13일 오후 5시 42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파기환송심 첫 재판장 김시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재판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무죄판결문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통상적인 업무였다"고 해명했지만, '손자병법'을 운운하는 등 편파적 재판 진행으로 비판받았던 터라 논란이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김 부장판사는 2015년 7월 21일 이 사건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 뒤 2017년 2월 전보하기 전까지 이 사건 파기환송심을 심리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이 김 부장판사의 이메일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그가 2015년 11월 16일 자신의 재판부 소속 재판연구원 A씨에게 '원 전 원장의 국가정보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모두 무죄'란 취지의 판결문 초안이 첨부된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김 부장판사가 보낸 이 파일에는 ▲ 피고인(원 전 원장)의 발언이 담긴 전부서장 회의록을 보고 국정원 직원들이 행위(댓글 작성)를 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 이에 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도 없다 ▲ 형사 처벌할 근거가 없다 ▲ 피고인들에게 국정원법, 공직선거법 두 혐의 모두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외에도 검사 측 주장, 변호인단 주장 등이 담겨 판결문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첫 공판이 열리기도 전에 사실상 무죄 판결문 초안이 나왔다는 점이다. 이 문서가 오고간 시기는 이 사건의 첫 공판준비기일(2015년 7월 21일)보다는 이후이지만 아직 1차 공판(2015년 11월 27일)은 열리기 전이다.

첫 공판도 열리지 않았는데...

대개 주심 판사가 작성하는 판결문 초안을 재판장이 작성한 점도 이례적이다. 이 사건 주심이었던 최아무개 판사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김 부장판사가 일방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라며 "그와의 갈등으로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실에 연락을 취해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라고 진술했다. 실제로 최 판사는 2016년 2월 금융정보분석원으로 파견됐다. 검찰은 당시 재판연구관이었던 A씨를 소환해 김 부장판사의 지시 여부를 확인했으며 행정처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추가로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이 김시철 부장판사에게 주목한 이유는 이 재판이 박근혜 정부의 '관심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원 전 원장 재판에 관심을 두고 양승태 대법원에 접촉한 정황은 앞서 법원 내부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꾸려진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판사 인사개입 문건을 조사하던 중 대법원이 원 전 원장 댓글 판결과 '상고법원'을 거래하려고 시도한 정황을 발견했다.

원 전 원장의 항소심 선고 다음 날인 2015년 2월 10일 작성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에 따르면, 청와대가 행정처에 원 전 원장의 항소심 판결 결과를 문의했고, 행정처는 "재판부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라고 대응했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공직선거법이 항소심에서 뒤집힐까 염려하고 있었다. 그 경우 부정선거라는 비판으로 정권 정통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은 항소심에서 국정원법 위반에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법정구속됐다.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은 선고 결과에 큰 불만을 표시하며 행정처에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한다"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실제 행정처는 항소심에 문제가 있으며 발상을 전환해 정권으로부터 '주도권'을 갖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상고심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회부돼 2015년 7월 16일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됐다. 김 부장판사는 증거와 쟁점을 정리하는 공판준비기일에서조차 "1·2심 판결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이전 판결이) 맞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1·2심 재판부 모두 유죄로 판단한 국정원법 위반마저 무죄로 볼 수 있다는 심증을 드러냈던 것이다.

소문 무성했던 그 재판... "통상적으로 진행"

당시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상고법원 문제를 고려해 여야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관련 기사: '찜찜한 보석' 결정 원세훈... 항간의 추측, 사실일까) 결국 김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의 보석까지 허가해줬고, 이후 1년 7개월 동안 재판을 끌다 결론을 내지 않고 다른 재판부로 옮겼다.

한편 김 부장판사는 13일 법원내부전산망(코트넷)에 글을 올려 "원 전 원장 사건의 파기환송 뒤 통상적인 업무방식에 따라 우선 기존 증거자료와 쟁점 등을 파악한 다음, 이를 토대로 추가 심리를 진행한 것"이라며 "재판부 외부의 직권남용 의혹 행위가 제가 담당한 해당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친 적이 전혀 없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 논의과정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부 내부 논의과정 등 구체적 내용은 법원조직법 등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라며 "다만 여러 관점을 비교·검토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관련 쟁점에 대하여 심리하는 것도 통상적인 업무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검찰의 이메일 압수수색이 위법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관련 기사 : 사법농단 연루 의혹 부장판사, 동료들 상대 '자기변호').
#원세훈 #김시철 #우병우 #양승태 #임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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