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들어가 마음닦이 하던 옛스승

[꾸러미 읽기] '나는 오늘도 수련하러 갑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슈퍼내추럴'

등록 2018.11.13 08:39수정 2018.11.1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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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스토리닷

 
 ㄱ. 무술이 아닌 마음닦기

<나는 오늘도 수련하러 갑니다>
 김재덕 글
 김태훈 그림
 스토리닷
 2018.9.9.

 
매서운 골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골굴사는 골짜기가 깊어서 추운 겨울 방 안에 있다 보면 바람이 내 방의 창문에 닫기 전에 저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듯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14쪽)


수련할 때 품새를 연무하면서 완급, 호흡, 동작, 힘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깨어 있는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지금 내 모습에 깨어 있지 못하고 주변 환경, 보고 있는 사람이나 지나간 동작들에 마음이 떠 있으면 내 흐름을 잃게 된다. (24쪽)

이때는 내 안에서 당혹감과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지는데 그때 느낀 것은 내가 실천하지 않은 것들은 힘이 실리지 않아 나에게는 물론 상대에게도 공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112쪽)

언젠가 아버지께서 겉멋 들지 말고 내면을 다지는 수련, 수련자가 되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178쪽)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듭니다. 가만히 보면 아침저녁 흐름은 늘 똑같이 흐른다 할 만할 테지만 우리 삶에서 똑같은 날이란 하루도 없습니다. 달력에 적힌 글씨는 1월 1일이나 12월 31일이 똑같을 테지만 늘 해가 다르지요. 같은 봄이라 해도 해마다 다른 봄이에요. 같은 낮이어도 날마다 다른 낮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어날 수 있는 몸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간다고 할 만합니다. 하루하루 아침저녁 밤낮으로 차분한 몸이며 마음이 되도록, 즐거운 마음이며 몸이 되도록, 꿈꾸는 몸이며 마음이 되도록, 노래하는 마음이며 몸이 되도록 다스리고 갈고닦고 추스릅니다.

<나는 오늘도 수련하러 갑니다>(김재덕, 스토리닷, 2018)를 읽으면, 글쓴이가 걸어오는 배움길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글쓴이가 어떤 무술이나 수련길을 닦는 일기로 여길 수도 있고, 날마다 똑같아 보이는 몸가꾸기를 하지만 막상 날마다 똑같지 않은 몸가꾸기를 하는 줄 차츰 알아차리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숨을 쉬어도 똑같은 숨이 없습니다. 물을 마셔도 똑같은 물이 없습니다. 같은 지붕을 바라보며 사는 사이어도 날마다 다른 숨결입니다. 같은 마루를 걷고 같은 마당을 디뎌도 어제하고 오늘이, 아침하고 낮이, 아까하고 이제가 늘 다릅니다.

늘 다르기에 늘 새로울 수 있고, 늘 다르기에 늘 거듭날 수 있어요. 늘 다른 줄 안다면, 조금 앞서 어긋나거나 어설펐거나 엉성하거나 바보스러웠어도 이를 말끔히 털고서 신나게 다시 할 만합니다.

배우는 길이란 언제나 고이 흐르도록 살펴서 다스리는 삶길이지 싶습니다. 더 빈틈없는 몸짓을 선보이려는 뜻이 아닌, 몸짓 하나하나에 어떤 마음이 깃들어서 삶을 짓는지 돌아보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온삶을 이루는 걸음입니다.
 

겉그림 ⓒ 책과함께

 
 ㄴ. 스승이 된 스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책과함께
 2013.6.25.

 
그 '길'이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 이미 가라앉은 마음속에 있지 않은가? (39쪽)

스님으로서 받아야 할 존경을 받기가 하도 싫어서 그랬단다. 비천한 일을 찾아 도맡아 하고, 비천한 옷을 입고, 비천한 음식을 먹고, 막노동꾼으로 살고……. 그는 '권위'를 갖게 될 것 같아 늘 도망 다녔다. (63쪽)

그의 장기는 시 외에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었다. (79쪽)

손을 무릎에 얹어놓고 가만히 있으면서 계속 올라갈 수도 있다. 거리를 두지 않고, 그러고는 가지도 않고 계속 머물지도 않는 그 뭔가를 마음에 늘 간직하면 된다. 빛을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그 그림자다. (136쪽)

한국에서 제2의 카프카가 태어난다 해도 '명문대' 간판이 없는 한 그의 소설을 실어 줄 잡지조차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궁극의 지점, 즉 죽음의 문턱에 가면 이 모든 간판이 다 우습게 보이지 않겠는가? (167쪽)

한국말에 '중·스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불교라는 길을 가는 사람을 수수하게 가리킬 적에는 '중'이요, 중이라는 삶길을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가는구나 싶으면 '스님'이라 해요. '스님'은 때로는 달리 쓰기도 합니다. 슬기롭거나 사랑스러운 중뿐 아니라, 우리한테 삶길을 새롭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밝혀 주는 스승이 될 만한 분한테도 이 이름 스님을 씁니다.

한국말 '중·스님'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만, 다른 길을 새롭게 가면서 깊이 배우고 넓게 깨달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이러한 낱말에 담았지 싶어요. 불교라는 틀을 넘어 목사나 신부 같은 믿음길을 걷는 사람도 어느 모로 보면 '중·스님'일 수 있습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불교나 천주교나 개신교 같은 이름을 따지기보다는, 믿음길을 가니 다들 '중'이요, 믿음길이 깊거나 넓으니 모두 '스님'으로 여겨 버릇합니다. 아마 어려운 말이나 경전은 알 수 없지만, 됨됨이와 매무새와 몸짓과 말씨를 살펴서 서로 마주하려 했지 싶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책과함께, 2013)라는 책은 믿음길을 배움길로 삼아서 삶길로 다스리려 한 옛어른 가운데 불교라는 자리에서 슬기로운 말씀과 몸짓을 남긴 분들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어느 스님(또는 스승)은 말과 책을 남기고, 어느 스님(또는 스승)은 아이들하고 놀거나 흙일이나 막일을 하는 몸짓을 남겼다고 해요. 삶을 배우려고 삶길을 걷다가 깨달아 말이나 몸짓을 남깁니다. 삶길에 배운 아름다운 이야기를 수수한 살림살이에 녹여내어 여느 수수한 이웃한테 부드럽고 쉽게 들려줍니다.

깨달으려는 길이란 스스로 배우려는 길이면서, 스스로 기쁘게 배워서 이웃하고 널리 나누려는 길이겠지요. 그러니 깨달은 스님(또는 스승)은 아이들하고 해맑게 뛰놀 줄 아는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하고 놀 줄 아는 마음,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도록 이끌 줄 아는 몸짓, 스스로 아이로 살아가는 어른인 하루, 이러한 나날을 오늘 우리도 즐겁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겉그림 ⓒ 까치

 
 ㄷ. 숲내음을 마시고 숲소리 듣던 사람들

<슈퍼내추럴>
 그레이엄 핸콕
 박중서 옮김
 까치 2007.7.25.

 
내가 아야후아스카를 복용하고 본 환상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 표현하라면 그것들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60쪽)

오늘날 동굴미술을 연구하는 선사학자들 간에는 유력한 학술지의 지면을 서로 장악하려는 경쟁이 심하고, 상호간에 이른바 '근거 없는 반대'가 공공연히 일어나며, 현장 연구에서도 공동전선을 펴는 일은 거의 없고, 오히려 지연과 학연에 근거한 갈등이 번번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114쪽)

뛰어난 생물학 기술을 지닌 존재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들로서는 DNA만큼이나 적절한 정보 저장매체가 또 없었을 것이다. DNA는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에도 불구하고 불변한 채 남아 있고, 또한 그중 3퍼센트를 제외한 나머지 97퍼센트의 '정크 DNA'의 기능은 아직까지도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33쪽)

대부분의 종교에서 창시자가 겪었던 초자연적 체험과 계시는, 세월이 흐르면서 월급을 받는 성직자들의 관료주의로 완전히 대체되고 만다. (360쪽)

꽃내음에 푹 빠질 때가 있습니다. 짙은 꽃내음이 온몸을 사로잡아서 무척 즐겁거나 들뜨거나 맑은 마음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한창 꽃내음에 빠져들다가 이곳을 잊고서 꿈나라를 누빌 때가 있어요.

갖가지 풀하고 나무가 어우러진 깊은 숲에 깃들면 우리 몸을 어지럽히는 자잘한 소리가 확 사라지곤 합니다. 손전화가 터지지 않는 숲에서는 오직 숲소리가 우리 몸을 감도는데, 이 숲소리에 숲내음이 얼크러지면서 생각이 새롭게 열리거나 몸이 싱그럽게 트이곤 합니다.

이와 달리 아파트라든지 지하상가라든지 도시 한복판이나 한길 가장자리 같은 데에서는 몸이나 마음을 사로잡는 즐겁거나 포근하거나 향긋하거나 느긋하거나 아름다운 냄새나 기운을 느끼기 어렵구나 싶어요. 시멘트와 쇠붙이와 플라스틱이 가득한 곳에서는 생각도 마음도 새로 깨어나기 힘들지 싶습니다.

<슈퍼내추럴>(그레이엄 핸콕/박중서 옮김, 까치, 2007)은 옛살림하고 옛길을 캐내려고 하는 글쓴이가 중남미 아마존에서 마신 '아야후아스카' 이야기로 책머리를 엽니다. 이제는 사라진 옛살림 자취를 좇는 글쓴이는 고고미술학이나 고고인류학을 비롯한 모든 고고학에서 자리다툼이 불꽃을 튄다고, 옛사람 삶길을 좇아서 알아내기보다는 저마다 줄다리기를 하느라 애먼 품을 들인다는 이야기도 잇달아서 폅니다.

곰곰이 보면 이 책은 글쓴이가 두 가지를 깊이 살피려 합니다. 첫째, 오랜 문명을 지은 옛사람이 마셨다는 아야후아스카 같은 풀물이 우리 몸하고 마음을 어떻게 건드리거나 바꾸는가를 몸소 겪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려 합니다. 둘째, 오늘날 문명이 감추거나 잊거나 잃으면서 그만 옛살림을 읽는 자리에서도 깊은 눈썰미를 나란히 잊거나 잃는 나머지 옛살림을 제대로 못 읽지 않느냐고 하는 이야기를 짚으려고 해요.

요새는 크게 달라진 듯하지만, 예전에는 글이나 책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든, 목소리를 키우려는 사람이든, 길을 깨치거나 배움빛을 넓히려는 사람은 으레 서울(도시)을 떠나 깊은 멧골이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숲에 깃들어 숲소리하고 숲내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하던 옛사람 뜻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덧붙이는 글 종교와 믿음이라 할 적에, 믿음과 삶을 배우는 길이라 할 적에는 크게 다른 느낌입니다. 종교수행보다는 마음닦이로, 종교전파보다는 살림길을 배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을 살펴봅니다.

슈퍼내추럴 - 고대의 현자를 찾아서

그레이엄 핸콕 지음, 박중서 옮김,
까치, 2007


나는 오늘도 수련하러 갑니다

김재덕 지음, 김태훈 그림,
스토리닷, 2018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 한중일 승려들의 임종게

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지음,
책과함께, 2013


#꾸러미 읽기 #인문책 #책읽기 #삶읽기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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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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