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라는 이재록을 위해, 그들은 날 또 죽였다"

[피해자는 두 번 운다 ①] 만민중앙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의 토로... "맨정신으로 못 버텨"

등록 2018.11.12 12:10수정 2018.11.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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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심각한 2차 피해를 당한다. <오마이뉴스>는 어렵게 피해자들을 만나 그 실상을 들을 수 있었다. 수사·재판과정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2차 피해와 이를 막을 대안을 세 편에 걸쳐 다룬다. 이 기사는 그 첫번째로, 만민중앙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의 생생한 심경 토로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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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여러 신도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목사가 지난 5월 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록 목사는 등록된 신도만 13만 명으로 알려진 서울 구로구 만민중앙성결교회의 목사다. 신도들 사이에서는 '당회장님', '성령 하나님' 등으로 불렸다. 그런 그가 지난 4월, 여성 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왔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처음 입을 연 피해자는 한 명이었지만, 그 인터뷰를 보고 용기를 낸 피해자는 8명까지 늘었다. 이 목사는 결국 구속됐고, 오는 16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일곱 달에 가까운 시간을 피해자들은 어떻게 보냈을까? 이들은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일 오후 피해자 두 명을 만났다. 피해자 A씨와 B씨 모두 교회 신도들 사이에서 '모범적인 신도'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각각 중학교, 초등학교 때부터 만민교회에 다녔다. 자아 정체성이 확립될 시기에 접한 만민교회 문화는 화려했다. 특히 찬양공연을 하는 예능위원회와 '치유 이벤트'가 신도들을 끌어당겼다.

지극히 폐쇄적인 분위기... 첫 만남에서 무릎 꿇어

A씨는 가족이 다 힘들었을 시기에 찾아간 만민교회에서 '신'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성경 지식이나 배움 없이 저와 가족 모두 병 치유 체험을 하면서 나도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교회에 '올인'했다"라며 "매우 크고 화려한 공연팀에서 잠자는 4시간을 빼고 다 교회 안에서 보냈다"라고 설명했다. B씨는 교회에서 이벤트를 자주 보여줬다고 했다.

"지금 말하긴 부끄럽지만, 기도하면 바닷물이 마실 수 있는 '단물'이 되는 일이 있었어요. 전라남도 무안에 이재록이 태어난 곳이 있는데 기도한 물을 고장난 기계에 뿌리면(고쳐지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워낙 성도들이 많으니까 자기 체험을 치유로 간증하는 일이 많았고요. 우연한 일들이 다 이재록 공으로 돌아가고, 삶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까지 이재록과 연결됐다고 세뇌당하니까 오랜 기간 신격화가 이뤄졌죠."

만민교회는 화려하지만 폐쇄적이었다. 피해자들은 교회를 '군대'에 비유했다. 이들은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단절된 채 TV조차 보지 않았다. 교회에서는 자체적으로 만든 방송만 보게 했다. A씨는 "지금도 연예인들을 잘 모른다, 소위 '속세와 단절된 삶'으로 강하게 훈련받았다"라고 했다. 


이들은 스스로 '피해 3세대'라고 불렀다. 1990년대 발생한 피해 사례가 1세대, 2000년대는 2세대, 3세대는 주로 2009년부터 이 목사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3세대까지 이어져온 피해는 이후 법정에서 증언으로 드러났지만, 앞선 1세대, 2세대 시기 부적절한 행위는 폐쇄된 환경 속에 감춰졌다. 이탈자들은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오랫동안 세뇌당해온 이들은 피해를 당할 때도 피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신도들에게 '신'이었던 이 목사와의 개인 만남은 상상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A씨는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오랜 시간 피해를 입었어도 저한테 이재록은 신이었다, 일반 남녀관계가 아니었다"라며 "벗으라면 벗고 같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 목사는 신도들을 상대로 '자신의 행위는 곧 하나님의 행위'라고 믿게 해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항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성폭력을 저질렀다. 대상도 어릴 때부터 만민교회를 다니며 신격화 분위기에 익숙해진 20대 여성들이었다.

미투로 어렵게 고백... 하지만 쏟아진 손가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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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이재록 관련 보도 ⓒ JTBC

 
A씨가 교회 윗선의 이중적 행태에 회의를 느껴 먼저 교회를 빠져나왔고, 2018년 초 미투(Me too) 흐름이 일어나 어렵게 입을 열었다. A씨는 "힘들게 찾은 내 삶을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러나 저 말고도 피해자가 정말 많았다"라며 "미투로 인해, 죽기 전에 이 세상에서 내가 겪은 삶을 얘기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B씨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미투에 동참했다. 이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함께 나섰다. 가정을 꾸린 피해자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피해자도 쉽지 않은 결정으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어렵게 입을 뗀 이들에게 2차 피해는 가차 없이 일어났다. 경찰 수사단계부터 만민교회 부목사 중 한 명은 피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문란한 사람'으로 몰고갔다. A씨는 이를 '매도'라고 단언했다.  A씨는 "정말 거짓말을 진짜보다 더 잘하더라"라며 "성관계 동영상이 있다는 둥 교회에 돈을 요구했다는 둥 (부목사가 얘기한) 녹음파일이 돌아다녔다, 계속 매도당했다"라고 말했다.

B씨는 "같이 활동한 팀원들이 어머니에게 '딸 단도리나 잘하라'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저에게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아라'는 연락이 왔다"라며 "교회에서 저에 대한 소문을 계속 퍼뜨리니까 가족들이 힘들어했다, 낙태설이 돌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구속된 이 목사를 형사재판에 넘기고 지난 6월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지만 2차 피해는 여전했다. 피해자들은 검찰에서 진술을 부동의하는 이 목사로 인해 모두 법정에 증인으로 서야했다.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법정에서 또 다시 반복해야 했다.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한 법원 직원이 피해자들의 실명을 만민교회 신도 C씨에게 유출했다.

그리고 이 명단은 만민교회 교인들의 카카오톡 단체채팅방 등 SNS에 '거짓고소녀명단'으로 게시됐다(관련 기사: 성폭력 피해자 실명 유출, 알고 보니 법원직원 소행).

화병 생기는 재판 과정

A씨는 이때 처음으로 후회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저 같은 경우에는 교회를 나오고도 미행이 따라 붙었다, 말 그대로 저희 인생이 달린 문제였다"라며 "어떻게 법원이라는 곳이 이런지 너무 억울했다, 고소를 괜히 한 건지 처음으로 너무나도 후회했다"라고 말했다.

"그 사람(법원 직원)은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유출한 거잖아요. 저희는 어떻게 죽을만큼 버티고 있었는데... 아직 교회에서 나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피해자 부모님이 고소인인 걸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 남편이 모르는 경우도 있었어요. 고소한 걸 후회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죽고 싶다고 하는 피해자도 있었죠.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고, 저희만 아는 아픔의 시간이었어요. "

B씨는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일반 사회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화가 났다"라며 "하다못해 피트니스센터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도 제 꼬리표가 보일까봐 겁났다, 불안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SNS 방에 있던 사람들이 또 말로 전달하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대부분의 신도가 다 알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진실을 털어놓으면 후련해질 거라 서로를 다독였다고 했다. 그러나 살면서 처음으로 서본 법정도 녹록지 않았다. A씨는 모르는 사람 앞에서 피해사실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사건 본질과 관계없는 질문들이 특히 버거웠다고 했다.

"판사한테 힘든 기억을 다시 떠올려서 얘기해야 하는데 상대 쪽 변호인 때문에 너무 억울했어요. 만민교회는 건전한 이성교제도 '죄악'으로 다뤄요. 중학교 때 남자친구와 놀이공원에 놀러 간 일, 이성인 짝꿍과 대화한 일 등 사소한 사실을 '회개 편지'에 적었는데 상대 변호인이 '너는 이미 그때 남자를 겪어보지 않았느냐'라면서 쏘아붙이는 거예요. 피해를 당해서 고소했는데 내 사생활을 여기서 왜 해명해야 되는 건지... 그때 (남자친구) 손잡아서 죄송하다고 해야 했던 건지,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다른 날 증인으로 나왔던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B씨는 "이 목사 측이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남자친구 이름을 얘기하면서 무슨 사이였냐고 묻더라"라며 "이 사건과 아예 관련이 없는데다 피해연도와도 동떨어진 시기에 있던 일이다, 제 삶에 대한 재판인가 의구심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 목사의 변호인은 양심선언을 했던 한 부목사와 피해자들이 무슨 관계였는지, 부목사와 둘이 만난 적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또 피해자들은 "(이 목사와) 같이 벗었으면 잘 알지 않냐, 몸을 그려봐라, 신체 사이즈를 대봐라"라는 질문을 들었으며 수치스러웠다고 했다. 비공개 증인신문이 끝나고, 변호인단의 대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실명이 유출되기도 했다.

A씨는 "법조인에 대해 너무 충격받았다, 말꼬리를 잡고 비웃고 말을 끊었다, 피해자라는 이유로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 모든 걸 겪어야 했다"라며 "재판 과정이 이렇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피해자가 고소를 할까, 입 다물고 사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B씨는 "증언하고 전혀 후련하지 않았다, 상대편 변호인으로부터 인격모독을 받은 느낌이었다"라며 "화병이 생겨서 나왔다"라고 했다.

교회 측 증인으로 나온 같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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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지역에 밀집해 있는 교회 십자가 첨탑. ⓒ 권우성

 
교회 쪽도 지속적인 방해를 해왔다. 피해자 쪽 진술 신빙성을 낮추기 위해 법정에 나온 이 목사 측 증인들은 피해자들의 행실을 탓했다. 그 중에는 이 목사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도 있었다. A씨는 같은 피해자였던 친구의 증언에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폭행 피해로 인해 그 친구(이 목사 피해자인 증인)가 소개해준 산부인과에 갔어요. 그 친구도 같은 날짜에 갔어요. 그랬던 친구가 법정에서 '저 때문에 남자를 알게 됐다'며 그 당시 (남자친구가 없었는데) '둘 다 남자친구가 있었다'(남자친구와 관계 때문에 산부인과를 갔다는 의미)고 거짓말로 덮어씌우더라고요. 저를 교회 안에서 문란한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정말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죠."

B씨는 그 증언을 듣고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다. B씨는 "재판이고 뭐고 그냥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었다"라며 "나름 용기를 내서 진실을 외쳤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묻히면 어떡하나 너무 무서웠다"라고 했다.

피해자 쪽 증인이 재판에 나오는 날이면 법원 주위에 소위 '안전팀'이라는 신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A씨는 "저희 측 증인들이 나올 때는 법원 앞에서 이재록의 경호원들이 입구에 서서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더라"라며 "그들이 그 사람이 증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위협이 됐다, 저희는 매번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피해자가 증언할 때 다른 방에서 머물렀지만, 변호인을 통해 피해자에게 자신의 말을 전했다. A씨는 황당했다.

"이재록이 옆방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마주치진 않았는데 증언을 다 하니까 변호사가 마지막에 이재록이 우리한테 전해주는 말이라고 하면서 머뭇거리더라고요. 그러다 하는 말이 '나는 너희들을 용서하니까 지금이라도 회개하라'는 거였어요. 끝까지 이런 컨셉이구나, 정말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더라고요."

법정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들 피해자들이 겪은 신변 노출과 조리돌림, 사건과 관계 없는 과거 사생활 공격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전형적인 2차 피해다. 거기에 이들은 가장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가해자를 통한 2차 피해까지 겪었다. 그것도 법정에서.

이 목사 재판은 지난 6월부터 준비기일을 포함해 20차례가 넘는 공판이 이어졌고, 검찰은 지난 1일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을 신적인 존재로 믿고 자란 신도들을 철저히 유린하고 농락한 사건이다, 범행 수법이 엽기적인데도 일말의 뉘우침이 없다"며 목회 활동도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목사는 "눈도 실명되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며 선처를 요청한 상태다.

A씨는 "현실을 많이 깨달았다, 단순히 고소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 생기는 2차 피해가 정말 힘들었다"라며 "본질과 상관없이 매도당하는 질문들, 성폭력 사건이라 여러 면에서 어려웠다"라고 털어놨다.

B씨는 "교회에 나와서 제 삶을 찾는 것도 큰일이었는데 재판으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라며 "그동안 상처도 받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었다, 1심이 끝나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목사의 1심 선고는 오는 16일 오후 2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이재록 #상습준강간 #만민중앙교회 #만민 #2차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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