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의 참 '세련된' 기후변화 대응법

[농촌진흥청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이야기 3] 볼리비아 농업과학 학회 기후변화·지식토론 회의 현장 스케치

등록 2018.11.01 10:47수정 2018.11.0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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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노벨평화상 수상 기관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 IPCC

인류세의 서막 : 1.5℃ 지구온난화

인간의 지배가 시작되는 지질학적 시대 - '인류세(Anthropocene)'란 개념을 처음 대중에 소개한 노벨화학상 수상자 파울 요제프 크뤼천(Paul Jozef Crutzen)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배출물 때문에 세계 기후는 앞으로 다가올 수천 년 동안 자연적으로 변하는 기온과는 상당히 벗어난 기온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런 변화에 대비하고자 세계 과학ㆍ정책 전문가들은 1988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를 구성했다. 이들은 그간 축적된 기후변화(cimate change)의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1990년 1차 평가보고서에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2007년에는 그간 "인간이 야기한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 마련과 지식 대중화 그리고 대응책 제안에 대안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런 과학자 집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 온도는 지속 상승해왔다. 그리고 2014년, IPCC는 지구가 인류세에 돌입했음을 암시하는 5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IPCC 5차 보고서: "인류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데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제 48차 IPCC 총회 특별보고서(지구온도상승 1.5도씨 제한) ⓒ IPCC

2018년 10월 1일부터 인천 송도에서 제 48차 IPCC 총회가 개최됐다. 이번 총회 때 만장일치로 채택된 특별보고서에는 지구온도상승폭의 1.5℃ 제한 권고 및 온도 시나리오별 농업생산성 경제적 분석결과 등이 포함됐다.

과거 라젠드라 파차우리 전 IPCC 의장은 "지구온난화는 밀과 옥수수 생산량에 부정적 영향을 주며 이는 곡물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식량 확보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국가 간 분쟁위험이 높아지는 연쇄반응이 촉발될 수 있다"고 기후변화와 농업의 연관성을 주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특별보고서에 지구온도상승을 1.5℃로 제한할 경우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대륙에서 재배 및 수출하는 밀, 옥수수, 쌀 등의 주요 작물의 생산성이 2℃로 제한할 경우보다 무려 50% 이상 증가할 것이라 예측하였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지속가능성 그 자체인 농업분야에 확실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세계 과학자 집단이 내린 결론이었다.

볼리비아의 고민 : 기후변화와 농업    


비슷한 시기에 남미 볼리비아 산시몬 국립대학교(UMSS, 코차밤바 주 소재)에서도 농업과학(Ciencias Agrarias) 학회 및 기후변화ㆍ지식토론(Cambio Climatico y dialogo de saberes) 회의가 개최됐다.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개도국에서도 학자, 정치인, 농업종사자들은 머리를 맞대어 기후변화를 논하고 삶의 현장을 지켜낼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레이케 안데르센 소장(지속가능개발솔루션 센터)은 볼리비아 내 기후변화가 1) 강수량과 온도 변화 2) 작물 변화로 인한 적응(adaption) 변화 3) 이산화탄소 축적 4) 극한 상황 및 재난 유발 5) 사막화 현상 6) 관수용 수자원 활용가능성 감소를 야기하며 환경 저하를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농업과학 학회 및 기후변화ㆍ지식토론 회의(볼리비아 산시몬 국립대학교) ⓒ 김주영

이반 잠브라나(Ing. Ivan Zambrana) 어머니대지국(Madre Tierra) 국장은 지난 11년 동안 볼리비아 내 337개 지자체의 67%, 그 중 산타크루즈, 코차밤바, 따리하 주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2002~2012년 사이 337개 지자체의 9.2%(고원지대인 포토시 주 등)가 서리와 강설 피해를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 볼리비아가 자랑하는 6,088m의 와이나 포토시(Huayna Potosi), 5,421m 챠칼타야(Chacaltaya 등의 안데스 설산은 1980~2009년 사이에 37.4%의 빙하(119km2 면적에 해당)를 잃었고 이는 수자원 고갈로 이어지고 있다.  

이반 잠브라나 국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및 손실 규모에서 사회(교육, 보건, 주거), 도시 인프라(교통, 수도, 전력, 통신), 경제(농업, 축산업, 산업, 관광) 분야 중 특히 '농림ㆍ축산'이 전체 피해의 62%(한화 2천7백억 규모)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볼리비아 과수원예 종사자들은 시기 상관없이 과실 파리(mosca de la fruta)의 창궐로 매년 113만 불 정도를 손해를 보고 있고, 고원지대(altiplano) 감자의 60~70%와 커피의 50% 정도가 해충(plague of worms)과 강우량 감소로 큰 피해를 겪고 있다.
 

홍수로 피해 받은 볼리비아 가축들 ⓒ Madre Tierra

이곳 참가자들은 지구 반대편의 한국은 기후변화에 어떤 대응전략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고 볼리비아의 농업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길 바랐다. 주요 연사로 초청받은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권순종 소장은 지구온난화 시나리오에 따른 한국 농업 재배지 변화와 기후변화 적응작물 연구 현황 등을 소개하고 향후 기후변화 위기에 대비하여 한-볼 간 농업개발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한국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 일환으로 설립된 코피아(KOPIA) 볼리비아센터는 볼리비아 산시몬국립대학교와 그 동안 안데스 재래 감자 복원 프로젝트, 끼누아 수확 및 관리 방법 등의 협력연구와 농업기술 관련 세미나, 교육, 박람회 등을 공동 주최하며 긴밀한 학-연 관계를 맺어왔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전략을 주제로 발표 중인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권순종 소장 ⓒ 김주영

볼리비아 기후변화 대응전략 : '어머니 대지'와 '기후정의'    
  
이같이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볼리비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환경ㆍ개발법을 발효하여 현 난국을 타개하고자 노력 중이다. 2010년 제정된 어머니 대지 권리법(Ley de Derechos de la Madre Tierra)은 볼리비아 원주민들이 지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세계 최초로 지구를 어머니 대지(Madre Tierra)라 명명한 이 법의 주요 골자는 생태계 구성 요소와 생명의 재생 능력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인간은 행복한 삶을 위해 어머니 대지와 조화와 균형을 맞춰 개발(행복한 삶을 위한 통합개발; 법조항 300)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 원칙을 토대로 포괄적인 국가계획 시스템상에 기후변화와 위험관리(법조항 777)를 포함하여 온실가스 배출 저감, 에너지 절약, 저탄소 배출 에너지 개발 및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 등 어머니 대지와의 조화 속에 실현 가능한 목표가 설정됐다. 남미 국가 중 경제적으로 뒤처졌다고 알려진 볼리비아지만 기후변화 대응 기조만큼은 어느 나라보다 세련됐다.
 

2015년 파리협약에서 기후정의를 주장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 Madre Tierra

지구 표면온도는 1850년 이래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번 산시몬 학회의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에 따르면 1위 중국(25.4%), 2위 미국(14.4%)순으로 대부분 OECD에 속한 선진ㆍ개도국이 기후변화의 큰 지분이 차지하고 있다. 한편 농업ㆍ축산업 기반의 볼리비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0.11%에 불과하나 대한민국은 그 13배 이상(1.5%)의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내뿜고 있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외쳤다. 각국의 역사적 책임, 생태발자국, 인구수, 기술 및 개발 역량을 고려하여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그 주장에 한국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볼리비아 땅에서 기후변화는 실재였다. 이를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닌 정치와 결부된 개발 문제로 보는 그들 시각과 그들만의 대응전략을 들으며 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는 이미 인류세에 돌입했다. 온도상승폭 1.5℃ 제한의 지구 공동의 목표와 온난화에 맞서 농업을 지켜내기 위한 대한민국 기후변화 대응전략에 대해 우리 모두 고심해야할 때다.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농업과학 학회 / 기후변화ㆍ지식토론 회의> 참석 후 ⓒ 김주영

[참고자료]
1. IPCC. 2018. "GLOBAL WARMING OF 1.5 °C"
2. UMSS. 2018. 『산시몬대학교 농업과학 학회 / 기후변화ㆍ지식토론 회의 자료집』
3. 동아사이언스. 2018. "일문일답으로 요약한 IPCC 1.5도 특별보고서" 기사

[관련기사: 농촌진흥청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이야기]
1. 안데스 산맥의 정기를 받은 토착민과 동고동락하는 사연 http://omn.kr/u2ex
2. 남미 최초 원주민 출신 볼리비아 대통령 이야기 http://omn.kr/1acql
#농촌진흥청 #코피아 #IPCC #기후정의 #인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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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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