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상지원이 '퍼주기'? ODA 개념 모르는 소리"

경제개발 꿈꾸는 북한 "국제금융기구 가입 유도해 민관협력·민간투자 여건 조성해야"

등록 2018.11.05 13:44수정 2018.11.0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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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에서 본 평양 일출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였던 지난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고려호텔에서 바라본 일출 모습.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와 이에 따른 대북제재 완화 및 해제를 전제로 한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국제금융기구 가입은 북한 경제 개발 및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재원 마련의 선결 조건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언급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3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9월 25일 미국외교협회(CFR)에서 한 연설에서 '대북 제재 해제'를 전제로 "북한은 IMF(국제통화기금)나 세계은행(World Bank) 같은 여러 국제기구에 가입함으로써 개혁·개방으로 나설 뜻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의 능력만으로 북한의 경제 발전을 돕는 것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인프라를 지원하는 그런 국제적 펀드 같은 것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1997년에 IMF 가입을 비공식적으로 타진했으나 가입이 무산된 전력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IMF 가입은 국제 공적 재원, 민간 투자 재원 등의 조달에 전제조건이므로 꼭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향후 북한에 유·무상 차관, 지분 투자, 투자보증 등을 제공할 수 있는 국제금융기구는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세계은행그룹 산하의 국제금융공사(IFC·개발도상국의 민간기업 지원)와 국제투자보증기구(MIGA·개도국에 투자하는 민간기업의 정치적 위험에 보증 제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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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아침 남북정상회담 둘째날인 지난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주민들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기초 인프라 있어야 민간 투자 들어온다"

지난 10월 29일 장형수 한양대 경제금융대 학장은 "국제 민간 투자가 유입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는 기초 인프라가 우선적으로 건설돼야 한다"면서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과 이에 따른 자금 도입 등이 이뤄지기 전엔 대규모 민간자금 유입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장형수 교수에 따르면, 북한 경제 개발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금원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국제 민간 투자 재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같이 기초 인프라도 구축되지 않은 최빈국에 민간 투자나 상업차관이 들어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것은 비핵화 완료와 대북제재 해제 이후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북 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 이후 5~10년 사이의 중단기점 관점에서 볼 때 이 단계에서 투입 가능한 자금은 주로 '국제 공적 재원'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국제 공적 재원 중 오랫동안 회자돼 온 것이 바로 '대일 경제협력자금'(식민지배와 전쟁 강제동원에 대한 배상금)이다. 북한과 일본은 지난 2002년 평양선언 당시 북일수교 시 배상금 지원을 합의했는데, 그 규모가 1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남한이 대일배상금 8억 달러로 경제를 일으켰듯 이는 북한에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외에도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 가입국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공여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자금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ODA를 통해 도로·철도·항만·전력 등 기초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민관협력' 혹은 '민간투자'를 위한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장형수 교수는"기본적으로 북한 같은 최빈국엔 무상지원을 주축으로 공적 부문이 자금 지원을 해야 한다. 이것은 '퍼주기'가 아니라 일종의 관례고 국제규범이다. (북한 무상지원을 퍼주기라고 오해하는 것은) ODA 개념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며 "이후엔 가능한 민관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과도하게 투자해서 민간자본을 끌여들이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민간이 참여하려면 수익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관이 보증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공적 자본이 투자되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이어 "북한은 1인당 소득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국제개발협회(IDA·세계은행 소속)의 양허성 자금(무상 또는 초저금리 장기 차관) 외엔 지원받기가 어렵다"면서 "IDA는 가입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자금을 지원받는 데도 오래 걸려서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받을 수 있는 자금도 연간 2~4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그러면서 "그래도 가입이 중요하다. 저게 안 되면 민간 투자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자금 규모는 작지만 IMF와 세계은행 가입은 중요한 이슈가 된다"고 진단했다.  

베트남이 과거 현재 북한 수준의 열악한 대외신인도를 가졌을 때 IMF와 세계은행에 가입한 뒤 MIGA가 정치적 리스크에 대한 투자보증을 해주면서 경제 개발을 시작했다. 장 교수는 "북한 개방 초기엔 민간 투자는 잘되기 어렵기 때문에 대안으로 '민관협력'을 많이 말한다"며 "북 항만 개발사업을 예로 들면, IDA와 남한이 협조융자로 개발자금을 분담하고, MIGA가 보증하면 국제 민간상업은행의 융자도 들어올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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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평양에 도착한 지난 2018년 9월 18일, 거리를 지나다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연구자들은 '신탁기금' 형태 지지

북한 경제 개발 재원 조달 방식으로 크게 '북한(동북아)개발은행'(가칭) 설립과 '북한개발신탁기금(가칭)' 조성이 회자돼 왔다. 양자를 두고 수십 년째 전문가들이 논의해왔으나, 최근 남북경협 등 북한 개발 논의가 진전되면서 대부분 연구자들이 '신탁기금(Trust Fund)' 형태를 지지하고 있다.  

1일 기자와 통화한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반도 주변 강대국이 주도하는 국제개발은행이 이미 다 있다. 새로운 개발은행을 만들긴 어렵고, 기존 개발은행들을 북한개발에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존 개발은행들이 본격적으로 북한 개발에 참여하기 전인 과도기에 신탁기금 형태로 하다가 (북한이 개발은행 가입을 완료하면) 개발은행들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10월 30일 이야기 나눈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북한금융연구센터장도 국제사회가 공여하는 양자 간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한국이 주도해 한데 모으는 신탁기금 방안을 주장했다. 박해식 센터장은 "개발은행 설립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생각인 거 같고 은행은 지배구조를 만드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존에 있던 국제금융기구와도 역할이 겹친다"면서 "그보단 기금을 만들어서 민간자금을 유도하는 유인체계를 구축하고, 북한도 지분 투자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위험 분담(Risk Sharing)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전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 워크아웃>(2009)에서 "남한은 국제적으로 인프라를 개발해 본 경험이 많으므로 그 경험을 북한에 적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러한 프로젝트에서 주의할 점은 (인프라 개발이) 북한 정권의 군사력 강화에 이용돼서는 안 되며, 주민들을 도와주고 향후 북한 개발을 위한 조건을 마련토록 하는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 부문에서의 타협은 불가피하지만,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 개발이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한국이 국제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지난 10월 30일 원동욱 동아대 교수는 "우리의 경제역량만으로 북한을 개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중국이 북한 개발에 관여할 수 있게 우리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 교수는 "외국 자본 유입에 대한 법적·제도적 부분이 미비한 북 체제를 고려할 때 사회·정치적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국과의 경쟁구도에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남한과 중국 자본은 물론, 일본·미국·EU 자본 등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향후 중국이 북 개발을 주도할 가능성에 대해 해징(위험분산)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원 교수는 "남북을 관통하는 북한 구간의 종합적 인프라와 관련해 어느 한 나라가 전부 주도하는 방식으로 북한이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므로 서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갈 필요가 있다"며 "주변 이해당사국 사이에 협조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이후에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자금 조달에도 유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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