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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신해철이 남긴 말, 왜 사람들은 못 잊을까

영원한 '히어로' 신해철 4주기... 청춘 향한 그의 다독임을 기억하며

18.10.27 13:04최종업데이트18.10.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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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사망한 가수 신해철 ⓒ 연합뉴스


올해 설 연휴에 개봉한 영화 <골든슬럼버>는 결국 '청춘'의 이야기였다. 강동원이 분한 건우는 테러범으로 지목돼 영문도 모른 채 쫓기게 된다. 그 건우를 돕는 것도, 건우에게 힘이 되는 것도 바로 대학 시절 밴드부 친구들이자 그때의 추억이다.
 
영화를 만든 이들도 그랬던 것 같다. 노동석 감독은 "(신해철) 선배님 음악에 빚진 부분이 많다"고 했고, 배우 김의성 역시 "그와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그대에게>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그러한 청춘의 추억을 완성하는 곡이, 그리하여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바로 영화 속에서 주요 모티브로 쓰인 신해철의,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다.
 
신해철과 청춘, 청춘과 신해철. 개인적으로, 신해철이란 이름 세 글자는 '청춘'과 동의어로 다가온다. 그가 떠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신해철 스스로가 영원한 청춘이었고, 한편으론 청춘들의 대변자였으리라. 그리고 <그대에게>는 그에 합당한, 누구에게는 심금을 울리는 BGM일 테고('그대에게'는 신해철 4주기 추모 모임의 이름이기도 하다).
 
더 흥미로울지 모른다. (밴드로서는 20년 만에 대상을 수상해 밴드의 황금시대를 TV로 옮긴 '무한궤도'의)<그대에게>를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으로 '밀었던' 심사위원이 '가왕' 조용필이었다는 일화나 신해철이 (동네 친구들이었던)서울대, 연대, 서강대 학생으로 이뤄진 '무한궤도' 멤버들의 학력에 언론이 유독 집착했던 것을 싫어했다는 일화들을 추억하는 것이.
 
하지만 그때 그 시절 이야기로, 신해철의 '청춘' 시절을 길어 올리는 일은 지면 낭비일 것이다. 그러기엔 그 누구보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청춘'의 감각을 유지했던 이가 바로 '마왕' 신해철이었으니까. 그래서 이 나라 '청춘'에 대해 평생 그가 남긴 까칠한 시선과 사유, 통찰은 지금 돌아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정말 그랬다. 어찌 보면, 한국사회의 변화가 그리도 더디다는 반증이자, 마왕의 독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랄까.
 
신해철과 청춘, 그리고 기성세대   
 

▲ 1988년 MBC 대학가요제 신해철은 1988년 MBC 대학가요에서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 MBC


"류와 나의 가장 큰 공통점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이다. 나는 류가 말한 '권력을 가진 자에게 복수하는 것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초라한 기성세대가 정말 싫다. 기성세대로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나는 사춘기 3년을 살다 죽겠다. 무라카미 류, 이 책을 읽고 그가 너무나 마음에 들게 된 이유는 그 인생을 대하는 태도였다. 인생에서 행복의 포인트는 아주 사소한 데서 결정된다는 믿음이었다."
 
신해철은 1998년 출간된 <무라카미 류>라는 책에 이런 글을 남긴 바 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키미 류의 말을 빌려왔지만, 이 문장은 신해철의 사소한 듯 중요한 일면을 보여준다. 한국사회의 기성세대에 대한 철저한 불신, 그리고 '사소한 행복'을 믿는 진보주의자로서의 면모.
 
신해철이 이 글을 썼을 때가 20대라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돌아보니 더 놀라운 점이 그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끔찍이 싫어하는" 그 청춘의 상담자이자 대변자로 활약하기 시작한 것도 20대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상담 코너로 유명했던 라디오 <고스트네이션>에 앞서 MBC의 일일 라디오 프로그램 < FM 음악도시 >가 있었다. '아이돌' 급의 인기를 얻은 솔로 시절을 훌쩍 뛰어 넘어 '록'의 세계로 귀환했던 넥스트로 활동했던 1990년대 중반, 신해철은 몇 년간 (유희열에 앞서)< FM 음악도시 >를 진행하며 '시장'을 자처했더랬다.
 
유난히 중저음이 매력적이었던 그의 목소리는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까칠한 시선 역시 그대로였다. 때로는 푸근하고, 종종 옆집 오빠, 형 같았던 신해철의 면모는 역시나 토요일마다 진행됐던 전화 고민 상담 코너에서 빛을 발했던 것도 같다. 달변의 상담자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신해철이 이미 20대에 '고민 상담자'로서의 깊이를 자랑했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오기만 한다.
 
훗날 신해철은 지승호 작가의 인터뷰집 <신해철의 쾌변독설>(2008)에서 "그 사람들보다 내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눈높이를 철저히 같은 위치에 맞출 것,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여긴 상담소지 재판소가 아니니까 그들의 잘잘못을 판단하려 들지 말 것"이라고 자신만의 상담의 원칙을 밝히기도 했다. 그가 왜 청춘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한국식 '꼰대'와는 다른 길을 갔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리라.
 
그렇게 청춘들과 호흡하고자 노력했던 신해철이 남긴, 1997년 9월 < FM 음악도시 >의 마지막 멘트 역시 인터넷 상에서 지금껏 회자되는 '명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신해철은 고작 우리 나이로 서른이었다.
 
"이 도시에서 우리 국가와 사회를 현재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있죠. 인생은 경쟁이다. 남을 밟고 기어 올라가라.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딴 놈들은 멀거니 쳐다볼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반납해라. 인생은 잘나가는 게 장땡이고. 자기가 만족하는 정도 보다는 남들이 부러워해야 성공이다. 이런 논리들이요.
 
우리는 분명히 그걸 거절했었습니다. 이곳은 우리들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구요. 현실적으론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랑 같은 사람들이 있다 라는 걸 확인한 이상. 언젠가는 경쟁, 지배, 이런 게 아니라 남들에 대한 배려,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 이런 걸로 가득한 도시가 분명히 현실로 나타날 거라고 믿어요.
 
잘나가서, 돈이 많아서,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거.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대통령도, 재벌도, 우리랑 비교할 필요가 없을 거구요. 여러분들이 그 안개꽃다발, 행복을 들고 있는 이상, 누구도 여러분들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에게는 언제나 승리자고 챔피언일 거거든요."


신해철의 독설, 신해철의 다독임   

어떤가. IMF가 도래하기 직전이던 20여 년 전, 서른 살의 신해철이 청춘들을, 동시대를 다독였던 낙관과 희망이. 마지막 방송의 달달함 속에서도 그는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결국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기성세대의 문제요,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청춘들을,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결국 아이들의 문제는 어른들의 문제죠. 어른들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전투적인 삶을 살고 있고, 그 방식을 어린 애들한테 강요하니까요. 저는 우리나라 애들 보면 끔찍하거든요. 과외를 몇 개씩이나 다니고, 어릴 때부터 성공을 위해 사육되어지고 있는 애들 말입니다.(중략)
 
공격적으로 사육 받은 애들이 그 공격적인 에너지가 여하한 형태로 비틀려서 튀어나오면 그게 걔네들 책임이겠냐는 말이죠. 만인에 의한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는 이런 사회를 만들어놨으니 애들이 당연히 폭력적이고, 거칠어지고, 그 애들을 또 때려서 갈치고 아직도 체벌을 하니까요."(<신해철의 쾌변독설> 중에서)


이 '어른들의 문제'가 폭발한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쪽이다. 각종 부정과 불법이, 무능한 권력과 천민자본주의적 행태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의 비극 아니겠는가.
 
체벌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투쟁'하는 삶을, 그런 현실에서 체득한 가치관이야말로 끔찍 그 자체 아니겠는가. 같은 책에서 신해철은 지속적으로 기성세대를 향한 질책과 이유 있는 독설을 이어나갔다. '꼰대'들이라면 뜨끔할 수밖에 없는. 이때가 2008년이었다.
 
"이렇게 엉망진창 앞도 없고 뒤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순서도 없고 양심도 없고 이런 세계를 만들어놓고 자꾸 자랑을 하니까 짜증이 나는 겁니다. 그나마 입을 닥치고 있으면 괜찮은데, 왜 자꾸 자기네가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구요.
 
좋은 세상의 근거는 항상 그거예요. 옛날에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 때는 얼마나 고생 했는 줄 아느냐 니 네는 행복한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이 돼지 새끼도 아니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태어나게 해놓고 자식들을 먹였다는 걸 가지고 목에 힘을 주니까, 뭐 어떻게 하라는 거냐구요."


물론 독설만이 신해철의 전부는 아니었다. 뒤늦게 영상을 보고선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마치 20년 전 < FM 음악도시 >가 부활한 듯한. 이래저래 가슴 아픈 해로 다가오는 2014년, JTBC <속사정쌀롱>에 방송된 신해철의 '기름'과 '주유' 비유로 승화된 '청년론'은 지금껏 회자되는 '명연설'이었다. 청년 세대는 물론 기성세대까지도 지난 젊은 날들을 돌아보며 공감과 위로를 받을 만한.
 
"'젊은 사람들이 직장이 없어서 난리라고 얘기하면서도 막상 힘든 일은 하지 않는다' 라든가 이렇게 비판적인 얘기들을 하잖아요. 요즘 사람들은 정신력이 약하다든가 그런 식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예를 들어서 (사연 속) 이 (청년) 친구 같은 경우 나가서 (무슨 일을 해도) 40만 원 정도 벌 수 있겠죠.
 
근데, 내가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한 달 뒤든 1년 뒤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내가 오늘 땀을 흘리는 거하고, 아무것도 디자인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늘 하루 힘든 일 하는 거 하는 건 정말 달라요. (알바) 그거라도 해라…. 지금 그 상황에서 할 수는 있겠죠. 사람이 그걸 몸이 힘들어서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미래가) 보이지가 않으니까 못 하는 거지(중략).
 
우리가 운전하고 가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차가) 섰을 때, 보험사 직원이 나와서 최소한 주유소까지 갈 수 있는 기름은 넣어 주듯이, 그런 과정에 있는 사람이 최악의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게 복지잖아요. 그런 주변 환경이나 사회적인 여건도 충분치 않는데, 오늘 하루 당장이라도 뭐라도 해야 될 거 아니냐고 몰아세우기엔, (청년이나 청년 백수들) 그들이 (무조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얘기해서도 안 된다는 거죠."

 
잊을 수 없는 히어로 신해철의 '히어로'론 
 

▲ 고 신해철, 영원히 잠들다! 5일 오후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고 신해철의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한 해 전 가을이었을 거다. 한 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에게 나도 모르게 독설을 내뱉었을 때가. 술자리에서 만난 그 감독은 조심스레 신해철과 관련된 다큐를 준비 중이라고 고백했다. 신해철이란 말에 화들짝 놀랐던 것도 같다. 그리고 노파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리고는 열심히 작품 구상을 설명하는 그 감독에게 "왜 하필 신해철이냐", "제대로 만들 수 있겠느냐"고 독설 비슷한 말을 내뱉었던 것 같다. 훗날 그 감독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작품 설명을 들었다. 응원을 보낸 것은 물론이었다. 그럼에도 그 독설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왜 '신해철'이란 이름 세 글자에 즉각 반응했는지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것은 동시대를 함께 살았고, 그의 성찰과 사유에 공감하고, 그의 음악에 환호하고 또 위로를 받았던 이들 모두가 지닌 어떤 경외감 때문이었으리라(그래서 더더욱 잘 만들어진 '신해철 영화'를 보고 싶은 열망과 응원이 더 커 가는 중이다). 신해철 만큼 음악은 물론 삶의 철학마저도 자기 동일성을, 변치 않는 가치를 추구하고 견지했던 스타가, 음악인이, 동시대인이 어디 흔한가 말이다.
 
4년 전 부고를 썼다. 이후 다시 신해철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아픔이면서 어떤 반성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 만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 자신이 나쁜 근성에 물들지 않았는지, 내가 '청춘'의 시간에 열광했던 '히어로'를 내다 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변해가지는 않았는지 하는 자성 말이다. 그렇게 그의 4주기가 찾아 왔다. 누구에게는 분명 '히어로'였을 신해철의 '히어로'론을 되새기며, 청춘을 향한 다독임을 기억하며.
 
"우리나라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근성 중의 하나가 자기 히어로를 중간에 내다 버리는 건데요. 자기 히어로를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를 버리는 거거든요. 10대 시절과 20대 초반까지 자기가 열광했던 히어로는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짓는 정체성이 되어버려요.
 
그런데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보수 기득권층에 영합되어버리는 순간 자기 히어로도 같이 버린단 말입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자기 히어로를 끝까지 안 버리고 지키는 대표적인 나라들이 영국, 일본인데요(중략). 그 나라 팬들이 그런 특질을 강하게 나타내죠. 우리나라 팬들은 20대 후반만 되면 '내가 10대 때 XXX이 좋았었는데, 그땐 미쳤었지'라고 합니다. 그건 자신에 대한 모욕이 되는 거잖아요. 별로 멋있어 보이지도 않구요.
 
제가 볼 때 우리나라 대중들은 여자는 결혼 적령기가 다가오면 - 결혼적령기라는 단어 자체를 부인하지만 - 남자는 군대 갔다 오면 일제히 보수 기득권층을 향해서 맹렬히 돌진하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사랑해왔던 모든 것을 내던져야만 거기에 골인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신해철의 쾌변독설> 중에서)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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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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