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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포기하고 싶었다"... 한국서 여성감독으로 산다는 것

[BIFF 현장] 아주담담 토크 '새로운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의 등장'

18.10.12 16:03최종업데이트18.10.1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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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포기하고 싶었지만, (영화를) 끝까지 완성해 다른 여성 감독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오는 13일까지 열리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 상영작 중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면 여성 감독, 여성 영화의 약진이다. BIFF 주요 경쟁 섹션인 뉴커런츠 한국영화 상영작 중 2편(<벌새>, <선희와 슬기>)이 여성 감독의 영화인 데 이어 최근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소개하는 '한국영화오늘-비전'의 상영작 중 절반(<영하의 바람><아워바디><영주><메기><보희와 녹양>)이 여성 감독의 영화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개하는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에도 세 명의 한국여성 영화 감독이 이름을 올리며 여성(감독)영화의 약진을 실감하게 한다.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 ⓒ 부산국제영화제

 
2000년대 들어 영화과에 진학하는 여성들이 늘어났고, 최근에는 영화과 재학 중인 여성들이 남성들의 수를 능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장편 영화를 제작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여성 영화인들을 찾기 어렵다. 여성 신진 감독들의 영화에 주목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BIFF의 변화와 선택이 반갑지만, 여성 감독들이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버블패밀리> 마민지 감독(왼쪽부터), <내가 모른 척한 것> 한혜성 감독, <디어 마이 지니어스> 구윤주 감독,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방문> 명소희 감독과 모더레이터 안보영 프로듀서가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아주담담 라운지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스몰토크 ‘새로운 한국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의 등장’에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이러한 기대와 우려를 반영하듯, 지난 8일 오후 2시 영화의전당 두레라움홀에서는 '새로운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의 등장'이라는 주제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진 여성 다큐감독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주담담토크가 개최되었다. 올해 BIFF 다큐멘터리 경쟁작인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방문> 명소희 감독, <내가 모른 척한 것> 한혜성 감독,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상영작 <디어 마이 지니어스> 구윤주 감독, 지난해 열린 제15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페스티벌 초이스(국제경쟁) 대상 수상작 <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이 패널로 참석하였다.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 ⓒ 부산국제영화제

   
새롭게 등장한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소개되었지만, 이날 아주담담에 패널로 참석한 감독들의 영화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쉽게 묶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 특히, <기억의 전쟁>을 연출한 이길보라 감독은 이번이 두 번째 영화이고, 2014년 제작한 첫 장편 <반짝이는 박수소리>로 국내외 영화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 유성호

 
<반짝이는 박수소리>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EIDF,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받긴 했지만, 그러한 이길 감독 또한 두번째 장편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 감독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길 감독처럼 두 번째 장편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첫번째 장편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여전히 녹록지 않아 보인다.
 

<방문> 명소희 감독. ⓒ 유성호


첫 촬영 이후 6년만에 첫 장편 <방문>을 완성한 명소희 감독은 감독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내는 것 또한 쉽지 않았지만,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영화를 끝까지 완성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버블 패밀리>로 주목받은 마민지 감독 또한 현재 두번째 장편을 기획 중이지만, 새로운 영화 기획 및 제작에 집중할 수 없는 다큐 감독들의 현실을 언급하며 많은 공감을 얻었다. 
 
여성, 특히 신진 여성 다큐 감독들의 영화를 설명할 때, 가장 주요하게 거론되는 특징은 '사적'이다. 올해 BIFF에서 소개된 여성 감독의 영화 중 <기억의 전쟁>을 제외하면 감독의 사적 경험, 관계를 다룬 공통점이 있다. 때로 신진 여성 다큐 감독의 영화는 '사적'만 다룬다는 편견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 부산에서 소개된 여성 다큐멘터리 영화만 보아도 감독의 사적 이야기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동시대 사회 문제를 참신한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감독의 고민이 엿보인다.   

<디어 마이 지니어스> 구윤주 감독. ⓒ 유성호

   구윤주 감독의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감독의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한국 교육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엿보이며, 외할머니, 어머니, 감독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미시사를 다룬 <방문>은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문화에서 차별받고 소외 당했던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 경험으로 이어진다. 한혜성 감독의 <내가 모르는 척한 것>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가지는 편견과 태도의 이중성을 솔직히 다루고자 하며, 12월 중순 개봉을 앞둔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는 부동산으로 몰락한 감독 가족의 미시사를 통해 부동산을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 사회의 이면을 고찰하는 영화다.
 

구윤주 감독의 <디어 마이 지니어스> ⓒ 부산국제영화제

 
<반짝이는 박수소리>에서 청각장애인인 부모와 수화언어와 음성언어의 세계를 오가며 자란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는 이길 감독은 "베트남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기억의 전쟁> 또한 월남전에 참전한 감독의 할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사적인 요소 대신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어렵게 첫 장편을 완성했다고 해도, 두번째 영화 그 이후에도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들도 이어졌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감독들의 공통 의견은 롤모델이 될 만한 여성 선배 감독이 적다는 것이다. 영화과에 진학하고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수는 계속 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 영화인들을 찾기 어려운 영화계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여성 감독들의 약진을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흐름으로 만들기 위해서 여성 감독들을 '여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만 묶으려고 하기 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식, 고민들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수반되어야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이번 포럼을 계기로 여성 다큐 감독들의 영화에 대한 보다 다양한 논의와 담론들이 이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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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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