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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 전체 떼죽음... 마을은 지도상에서 사라졌지만

초상도 치를 수 없었던 민간인 학살, 종교를 대신해 원혼 위로해준 무속인들

18.10.11 15:56최종업데이트18.10.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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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손 the guest>. ⓒ OCN

 
OCN 수목 드라마 <손 the guest>의 택시운전사 윤화평(김동욱 분)은 어린 시절 귀신에 빙의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과거를 잘 알아맞힌다. 겉보기엔 택시 운전사이지만, 그의 주업은 사실은 다른 것이다. 귀신에 빙의된 사람들이 저지르는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일이다. 이 일을 하면서, 필요할 때면 경찰에 제보도 한다.
 
윤화평이 제보하는 내용은 모두 다 사실이지만, 경찰은 그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엄마의 피살 현장에서 우연히 윤화평을 만난 적 있는 경찰 강길영(정은채 분)만큼은 제보를 검증이라도 해보지만, 다른 경찰들은 아예 거들떠보려고도 않는다.
 
이런 드라마 장면은 무속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조선 중기인 16세기에 유교 생활화 운동과 함께 기운이 꺾였지만 여전히 대중의 일상을 상당부분 지배해온 무속은 19세기 후반부터 서구문명의 유입과 함께 기운이 현저히 꺾였다. 그래서 <손> 장면처럼, 우리 사회에서 공신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사회지도층이나 지식인들 혹은 뉴스매체들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무속을 꺼려하는 속에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십자가 즐비한 서울 시내에서도, 하얀 깃발 펄럭이는 무녀 집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역사가 오래돼서 생명력이 질긴 측면도 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것이 있다. 무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요인이 한국 근현대사에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은근히, 서서히 무속이 살아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19세기 초반부터 한반도에서는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홍경래의 난'으로 시작해서, 진주민란, 임오군란, 동학혁명으로 이어지는 대중의 정치적 도전은, 국가권력을 서민친화적 존재로 바꾸기 위한 운동이었다. 국가권력이 기득권층한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현실을 막기 위한 운동이라는 측면도 있었다.
 
이런 정치운동은 일제강점기에는 민족독립 열망과 결합돼 3·1운동으로 분출됐고, 해방 뒤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으며, 한국전쟁 이후의 보수정권 하에서는 4·19 혁명, 광주항쟁, 6월항쟁으로 연결되다가 최근에는 촛불혁명으로 폭발했다.
 
이런 속에서 억울하게 죽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홍경래의 난 때도 그렇고, 일제강점기 때도 그렇고, 미군정 때도, 보수 정권 때도 그렇고. 불의한 정치권력에 맞서 저항한 사람들은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후에 제대로 장례도 치러지기 힘들었다.
 
대중이 항의운동을 일으킨 경우가 아닌, 그 반대의 경우에는 훨씬 더했다. 식민 당국이나 미군정 혹은 보수정권이 민간인을 상대로 선제적 학살극을 벌인 때에는, 억울한 희생자들이 훨씬 더 많았을 뿐 아니라 장례도 치러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희생자들이 불령선인(일제 때)이니 빨갱이니 하는 누명을 썼기 때문에, 유족들이 함부로 장례를 치르거나 제사를 지낼 수 없었던 것이다.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 다큐 영화 <해원> 스틸컷. ⓒ 레드무비

  
해방 뒤부터 한국전쟁 때까지만 놓고 봐도, 보도연맹 사건이나 노근리 학살 희생자를 포함해 대략 100만 명이 학살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의 시신은 제대로 묻히지도 못했다. 국가통계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1949년 당시 남한 인구는 2019만이었다. 억울하게 죽거나 장례가 치러지지 않은 희생자가 그 짧은 기간에 전체 인구의 5% 가까이 양산됐던 것이다.
 
장례는 죽은 자보다 산 자를 위한 의식이다. 산 자의 마음에서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절차다. 그런 절차를 거쳐 죽은 자를 조상 내지는 선조로 마음 속에 안착시켜야 인간의 마음이 편해진다. 절차를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산 자의 마음은 편치 않다. 이로 인한 불편함이 지나치다 보면, 하는 일마다 꼬일 수도 있다.
 
19세기 초반 이래로 2백년간, 한국 사회가 늘 불안했던 원인 중 하나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한 상(喪)이 제대로 치러지지 않다 보니, 산 자들의 마음이 동요하고 사회가 항시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조상이나 선조로 대우받지 못한 억울한 희생자들이 유령이 되어 떠돌며 이 나라를 괴롭히는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손>의 귀신들은 일정 범위의 사람들을 살해하는 선에서 소동을 일으키지만, 한국 근현대사 차원에서 보면 억울한 유령들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불안정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영진 전남대 연구교수의 '근대성과 유령 - 근현대 동아시아의 죽음의 정치를 넘어서기'에 이런 대목들이 있다.
 
"엄청난 폭력과 학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례없이 발생한 무수한 죽음들에 대한 정상적인 상(喪)을 치를 여유를 주지 않았다."

"각지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적 학살은 한 가족, 한 마을 전체를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하면서, 선조가 될 수 없는 무수한 타자들 즉 유령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죽음, 학살의 기억을 망각한(망각당한) 채 근대화라는 지상명제에 매진해온 사회의 심층에는, 현재까지도 정상적인 喪의 작업을 마치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깊은 울(鬱) 혹은 멜랑콜리(우울감·비애감)가 침잠해 있다."

- 2016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아세아연구>에 실린 논문.
 
억울한 희생자들이 제대로 묻히지 않는 일이 많아 사회적으로 비애감이 상존하는 상황. 이런 속에서 어느 정도나마 역할을 수행한 게 바로 한국 무속이다. 유교·불교·기독교 등이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한 역할을 무속이 해냈던 것이다. 굿을 통해 억울한 희생자들의 해원(解寃)을 추구해온 한국 무속이 우리 사회의 가려진 상처를 치유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던 것이다. 위 논문에 나오는 또 다른 대목이다.
 
"한국 사회의 기성 종교는 자신들의 임무를 철저히 외면해왔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기독교는 체제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의 죽음을 도외시했고, 불교 역시 자신의 본연의 역할을 방기해왔다.
 
유교적 가족 제사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한국전쟁기에 벌어진 제노사이드적 학살은 제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그 최소 요건인 '살아남은 후손'이라는 존재를 제거해버리는 것이 다반사였고, 설령 후손이 있더라도 빨갱이라는 천형의 낙인이 찍힌 집안은 마음 편히 제사를 지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주류 종교들이 원혼들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무속이 그들에 대한 위로에 나섰다. "금기를 깨고 빈자리를 메워준 것이 샤머니즘의 세계 즉 무속이었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19세기말에 찍힌 한국의 무당굿. 서울 성균관대 퇴계인문관 복도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무속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귀신에 대한 무속의 개방성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유교에서는 자기 집안 조상이나 공자·맹자 같은 성현에 대한 제사를 기본으로 한다. 원혼이나 악귀를 제사지내거나 위로하는 관념이 유교에서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기독교에도 그런 관념은 있지만, 무속에 비하면 덜 발달한 편이다.
 
무당굿에서 드러나듯이, 무당은 좋은 귀신이든 억울한 귀신이든 나쁜 귀신이든 가리지 않고 상대한다. 그들을 불러내 위로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호통 치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하면서, 그들이 산 자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려 한다. 이런 특성을 지녔기에 억울한 근현대사의 원혼들을 위로하는 일을 자연스레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금년 5월 10일 개봉된 구자환 감독의 다큐 영화 <해원>에서는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벌어지는 살풀이춤과 노래를 많이 보여줬다. 유족이나 지역 주민들이 그런 위령제를 통해 해원을 시도하는 모습들을 화면에 자주 드러냈다. 이런 장면은 유교·기독교·불교보다는 무속과 훨씬 친숙하다. 이 방면에 대한 무속의 기여도가 결코 간과돼서는 안된다.
 
19세기 후반부터 서구문명이 밀려들어오고 1880년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서구화를 장려했으므로, 정상적이었다면 한국 무속은 종전보다 훨씬 더 약화됐어야 한다. 물론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무속은 여전히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국가권력과 기성 종교로부터 외면당한 근현대사의 원혼들을 무속이 위로해주려 하고 이를 통해 산 자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편안히 해준 데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손 the guest>에서 나타나듯이 무속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지배적 대세를 차지하는 이 사회에서, 무속이 민중의 버림을 받지 않고 버텨나가는 데는 그 점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손 THE GUEST 무당굿 무속 샤머니즘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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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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